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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날 Oct 24. 2024

나의 열두 번째 나이테  

Prolog 

첫째 아이가 배 속에 찾아오고

첫 돌을 맞이하고

그렇게 한해씩 살아오며, 나에게는 열한 개의 엄마 나이테가 생겼다. 그리고 올해는 열두 번째 나이테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어느 나이테는 '불안'이라고 이름 지을 수 있고, 어느 해에 생긴 나이테는 '불만'이라는 이름이 알맞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 키우고 있는 '엄마 나무'가 병들어 휘청이는 것은 아니다. 불안, 불만이 점철되었던 그 해에도 우리의 시간은 나에게 단단한 나이테가 되어주었고, 그렇게 나는 엄마로서, 여성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성장했다.


나는 본디 불안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아가이던 시절에는 대부분의 시간이 불안했다. 나는 미련이 많은 사람이기도 해서, 소중한 그 시절의 모든 것들을 손에 쥐고 싶어서 미련스럽게 발버둥 치기도 했다. 욕심이 많기도 해서, 나의 어느 허점도 허락하지 않겠다며 악다구리를 부린 해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나이테가 이렇게 다 힘겹지만은 않았다. 그 사이사이에 우리는 친밀을 나눴고, 신뢰를 다졌다.


우울, 불만, 미움, 불안, 신뢰, 두려움, 슬픔, 친밀, 용기, 좌절, 고독, 격려

엄마가 되어 지금까지 만들어진, 만들고 있는 나의 나이테에 이름을 붙여보았다. 일상을 살며 누구나 느끼는 평범한 감정들이지만, 그 안에서 보석을 찾아내기 위해 내가 애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은 그게 '우리의 역사'이고 '아이의 유년시절'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주고 싶고, 줄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추억'이라서..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고, 생각이라기보다 감각에 가까워서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엄마인 내가내 감정에 압도되어 있으면,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더라도 나에게는 그것이 바로 들리지 않던 적이 많았다. 그런 시간이 쌓일수록 아이들은 엄마를 더 갈구하게 되거나, 자기도 모르게 엄마가 아닌 다른 대안을 찾거나, 아프거나, 멍해지거나, 난폭해졌다. 엄마에게는 '이게 아니다'라는 촉수가 있어서, 그 상황을 헤쳐 나오기 위해 내가 노력한 것은 결국 '내가 나의 감정과 잘 만나는 것'이었다.


내가 우울한 것을 알고 나니, 아이의 우울이 보였고. 내가 불만에 차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아이의 불만이 보였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만나고 만나오다 보니, 내가 용기를 내니 아이가 용기를 내는 때도 있었다. 내가 나 자신과 친밀해지니, 아이도 아이 자신과 친밀해지는 시간도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이제 첫째는 십 대가 되어서, 매일 매 순간 엄마로부터 독립을 시도한다. 그래서 나의 감정이 너의 감정, 혹은 나의 치유가 너의 치유와 같이 서로의 연결이 긴밀하진 않은 것 같다. 그러니, 그러므로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나이테는 '격려'가 맞다. 우리는 요즘 서로의 하루를 적당한 거리에서 격려해 주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좋은 하루 보내고 와라" 쯤으로.


너의 꿈이 나의 꿈은 아니고

너의 이상형이 나의 이상형은 아니고

너의 상처가 나의 상처는 아니지.. 만, 네가 슬플 때 나에게 위로를 청하면 좋겠어.

네가 바라는 것을 나에게 편하게 얘기하면 좋겠어. 비록 엄마에게 거절될 것을 예상하더라도.

이렇게 나의 열두 번째 나이테를 쌓아가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나 자신에 대한 감각'을 깨워본다. 내가 바라는 것과 나의 꿈, 나의 감정을 느끼고 이해해 본다.


내가 나와 친해지고, 내가 나를 격려해 주는 온화한 시간이 우리의 관계를 친밀하게 해 줄 것이라고 믿으며, 나는 오늘 또다시 시작된 평범한 일상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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