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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잡러지영 Nov 14. 2021

할머니의 아랫목

같이 잠들던 밤


할머니 옆자리는 언제나 내 차지였다.

그리고 내 옆으로 동생, 엄마, 아빠가 주르륵 누워 함께 잠을 자던 시절이 있었다.


어려선 유치원에 태워다 주던 기사님도 있었는데, 어린 나와 동생은 IMF가 뭔지도 모른 채 온몸으로 그 시기를 받아냈다. 모르니까 좋았다. 작지만 따뜻한 할머니 집이 좋았다. 한 방에서 다 같이 잘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문 앞에 버티고 자는 아빠가 추운 줄도 모르고 마냥 든든했던 때였다.


할머니 자리는 언제나 옥장판이 틀어져 있었다. 게다가 방바닥 자체가 뜨끈했는데, 그건 오직 할머니가 누운 곳에만 해당되는 얘기였다. 8살까진  좋게 좋은 집에서 자라왔던 나에겐 이해가  되는 일이었다. 집에  바람이 들치고 방구석 한켠만 따뜻하다니. 엄마는 아랫목원래 제일 따뜻하다고 말해줬다.


-온 집을 아랫목으로 만들면 되잖아?

속도 없이 히히 웃으며, 따스운 아랫목에 발 슬쩍 넣고 잠들곤 했다.

옥장판 위의 오래된 살결에 작은 손발을 비벼대다가, 할머니 큰 손이 내 등을 토닥토닥.


겨울이 오면, 오래된 할머니 냄새를 품고 잠들던 날들이 그리워진다.


잃을게 더는 없던, 막내딸 가족을 보듬은 그 밤들.

조그마한 나와 동생은

아직 여린 어른들이 시린 외풍을 막아내느라 고된 줄도 모르고, 그들의 큰 품 아래서 무럭무럭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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