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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잡러지영 Dec 04. 2021

3. 또다시 서울로

퇴사 여행, 강릉에서 쓴 일기


그렇게 2021년 2월말, 회사를 그만두었다. 결정이 어려웠지, 과정은 물 흘러가듯 잘 흘러갔다. 코로나라서도 있고, 당시 재택근무 베이스라서인지 별다른 환송회 없이 슬랙으로 조용하고 잔잔하게 마무리했다. (아 물론 마지막 날까지 지방 촬영장에 나갔던 이유도 있다.)


원래 환영은 뜨겁고 이별은 차갑고 뭐 그런 것이니.


그렇게 나의 첫 영상회사와 안녕했다. 작은 회사였지만, 회사 동료들은 다 너무 좋은 사람들이라 각자의 작은 선물과 말들을 건넸다. 또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꾸준히 연락하고 지낸다. 좋은 사람들과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퇴사하고, 강릉으로 떠나갔다. 강릉에 온 지 9일째던가, 이 글은 그 정도 되었을 때 썼던 일기이다.


'여행을 왜 갔니'에 대해 멋진 이유가 있어야 할 것 같긴 한데, 사실 그런 건 없었다. 그리고 왜 강릉 이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여행을 가고 싶었고, 일상에서 떨어져 나올 계기가 필요했고, 동해 바다가 보고 싶었다. 10일 정도는 푹 쉬는 게 목적이었는데, 완전히 쉬진 못했다. 당시 쓰던 영어교재 1차 본을 마무리했어야 했고, 새 학기 준비도 해야 했다. 동시에 과제에 시험에 바쁘기도 했다. 집필자로서, 교수자로서, 학생으로서의 일상을 병행하고 있으니 시간이 엄청 빨리 흘러갔다.


그래도 바다는 너무 좋고, 일 하나가 준 것도 너무 좋은데, 내가 이 여행에서 무엇을 얻어가려는 걸까 싶을 무렵, 학교 게시판에 한 학생분의 글이 올라왔다. 개강 인사를 올린 즈음이었다. 요는 나의 수업과 함께할 학기가 설레고 기대된다는 말이었는데, 그 몇 줄을 몇번이고 곱씹어 읽으며 울었다. 4년 전 카메라 앞에 처음 서서 강의하던 날, 그리고 작년 봄 직함을 달고 학교로 가던 날, 그 설렘과 무게에 열심히 준비하고 떨려하며 강단에 섰던 날들이 떠올랐다. 최고는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했던 날들. 마음 한쪽 구석에 묻어두었던 힘이 솟아났다.


일을 하면서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었다. 잘하든 못하든 나쁜 말은 어디서든 듣기 마련이었고, 잘하면 그다음은 더 잘 해내야 했다. 내 편이라 믿고 붙잡은 손이 날카로운 집게 발일 수도 있음을 온몸으로 알아갔다. 부상난 몸으로 여러 일을 수습하느라 주변을 둘러보지 못했고, 삶에 감사하는 일이 많이 줄었었다. 엄마 아빠의 곁을 떠나 11년을 지내온 서울은 너무 치열했고 버거웠다. 그래서 종국엔 혼자서 조용히 하는 일이 적성에 맞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그 여행 동안 가장 많이 배운 건, 주변에 감사한 사람이 너무 많다는 거였다. 내가 어떤 선택을 내리든 존중해주는 소중한 가족이 있고, 무슨 일이든 멋지다고 응원해주는 친구들이 있었고, 부족한 강의에도 좋은 점을 밝혀주는 학생분들이 있더라.


그래서 마음을 바꿔 먹었다.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나아갈 방법을 찾아야, 나도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내년엔 또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나아가겠지만, 쉬는 법도 배워야지 다짐했다. 그리고 남는 시간과 에너지로 주변도 살피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일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서울로 돌아올 용기가 생겼다. 따뜻하고 사랑 넘치는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다짐하며 온점을 찍었다.


나는 한뼘 더 선명해진 나이테로 돌아왔고, 서울은 그사이 온기 품은 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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