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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잡러지영 Jan 27. 2022

자유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일과 쉼의 적절한 균형, 프리랜서로 살아남는 중


머리가 아니라 마음에 와닿아야 이해되는 그런 글들이 있다.


‘신이 쉼표를 찍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


류시화 시인님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라는 책에서 마주친 문장이었다. 그 역시 어느 명상 센터 벽에서 이 글귀를 발견했다고 했다. 길고 복잡한 문장이 아닌데, 마치 끝에 도돌이표가 붙은 것처럼 여러 번 다시 읽은 기억이 난다.


홀로서기가 채 1년도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의 경험으로 몇 가지 생존 전략을 습득하고 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자유를 다루는 방식이다. 작년 한 해만 돌아봐도 일이 많은 시기와 일이 적은 시기의 편차가 굉장히 심했다. 일이 너무 많은 시기에는 하루에 3-4시간을 자며 버텼고, 일이 적은 시기에는 일주일에 3-4시간이라도 일 할 게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일이 가장 많은 달과 가장 적은 달의 수입이 열 배 가까이 차이 나는 때도 있었다. 작년만 놓고 보면 전체적으로 시간도 돈도 훨씬 번 셈인데, 마음의 여유는 오히려 적었다.


일정 이상의 자유가 갑자기 주어졌을 때, 행복이 아니라 당황을 느꼈던 것 같다. 트랙 위를 달리던 경주마에게 갑자기 넓고 아무것도 없는 들판이 펼쳐진 기분이랄까. 달려야 할 길이 없을 때 이걸 과연 자유라고 불러야 하나 고민했다.


예전에 뉴스 기사에서 아주 특이한 고용 형태를 보았다. 스웨덴에 있는 한 열차 회사에서 직원을 뽑는 공고였는데, 출근해서 승강장 불을 켜고 끄는 일 외엔 할 일이 없다고 했다. 업무 대비, 후한 월급에 급여 인상, 휴가 등을 보장해 준다고도 했다. 회사를 다닐 때는 ‘그 직원 참 좋겠다’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프리랜서가 된 후엔 ‘그 사람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AI 시대를 대비해서 실험 중인 고용 형태라고 했다. 노동의 가치와 본질에 대한 탐구라는 말도 덧붙여 있던 것 같다.


어둠이 있기 때문에 밝음이 존재할 수 있다고들 말한다. 전에는 당연한 소리지 했지만, 프리랜서가 되고서야 진심으로 이해했다. 평일에 열심히 달렸기에 주말이 행복하고, 일을 하기에 쉼이 감사할 수 있다. 프리랜서는 그런 규칙에서 벗어나는 생활을 한다. 프로젝트마다 업무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일의 시작과 끝, 그리고 쉼의 시작과 끝이 불분명하다. 그리고 그렇기에 자유가 다가왔을 때 두려움을 느꼈다. 자유의 끝을 내가 정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온전히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다 처음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신이 쉼표를 찍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

작년의 나는 쉼표를 마침표로 바꾸면 또 다른 시작이 올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온점을 찍은 채 넓은 들판에서 발만 동동 구르며 시작을 기다렸다.


쉼표는 누구에게나 한번 쯤은 다녀 간다. 수업이 있다가 없다가, 번역이 왔다가 갔다가, 계약이 됬다가 미뤄졌다가 등등, 수많은 쉼표는 내 의지와 무관하게 찾아왔다. 그렇지만 돌아보면 그 쉼 덕분에 성장했고 또다른 기회도 잡을 수 있었다.


쉬지 않고 달리는 경주마는 부상이 나기 쉽다. 그래서 쉬어가는 구간이 필요하다. 이제야 그걸 이해한 나는, 쉼표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열심히 달리다가도, 쉼표가 다가오면 거칠었던 숨을 깊게 내쉰다. 그리고 한결 고른 숨으로, 쉼을 따라 걷는다. 그 과정에서 들에 핀 꽃도 발견하고, 잡초도 뽑고, 나무도 심고, 낮잠도 잔다.


요새는 수업이 없는 날 그림을 그리고 동화를 쓴다. 책도 많이 읽고, 피아노도 치고, 새로운 연구도 시작했다. 평소에 바쁠 때 하지 못했던 것들을 쉼표가 왔을 때 하나씩 그려 나가고 있다.


그렇게  쉼표를 지나다 보면 들판은 풍성해질테고, 동시에 어떤 트랙 위라도 힘차게 달릴  있는 내가, 우리가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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