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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럭 May 04. 2022

'일하지 않는 것'은 죄가 아니다.

'일하지 않을 권리(데이비드 프레인)'를 읽다.

'무슨 일 하세요?'라는 이 질문은 타인의 지위를 측정하려는 적나라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당신이 이 세계에 기여하는 바가 무엇인지 한 문장으로 요약해주세요. 그러면 그 내용을 바탕으로 당신을 판단하겠어요'라는 뜻이다. 
- 일하지 않을 권리(p.264)

"학생이에요? 무슨 일 하고 있어요?"

"어.... 그냥 취준생..인데요..."

며칠 전, 서류를 떼러 방문했던 주민센터에서 직원분과 나눴던 대화다.

젊은 사람이 한낮에 방문하자 괜히 궁금하셨던 것 같다.

지금까지는 자연스럽게 답했던 질문이었지만, 취준생이 된 지금은 순간 당황하여 말문이 막혔다. 


직업을 묻는 건 이름을 묻는 것만큼이나 일상적인 멘트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토록 남이 하는 일에 관심이 많은 것일까? 

상대의 직업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직업은 '상대의 지위를 평가하는 잣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건 별나라 이야기고 계약직, 정규직, 연봉, 명성 등 다양한 기준으로 ‘신분’이 나누어지고 있다. 

그리고 미취업자는 이러한 신분조차 없는 실패자 취급을 받는다.


고용 관계없이도 보상과 존중을 누리며 살려는 시도는 곤란하게 만든 걸림돌 중에는 스스로 택한 생활양식에 사회가 집요하게 낙인을 찍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는 현실이 있었다.(p.257)
사만다가 겪은 부모와의 충돌은 유급노동에 참여하는 것(특히 전임이며 높은 지위를 인정받는 일자리)이 얼마만큼 문화적 성숙의 표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완벽하게 보여준다. (p.262)

책에 나오는 인터뷰이들은 모두 자신의 일을 가지고 있고, 그들의 삶에 만족한다.

다만 그 일이 사회가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편하기 살기 위해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지원금에 의존하는 식충(p.263)'이라고  조롱받는다. (실제로 그들 중 수당을 받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물론 비난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부분도 '일중심 사회의 흐름을 거부한 이들'이 치러야 할 대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비난받을 일을 한 적이 없다. 그들은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사회가 그들에게 던지는 무례한 동정과 비난은 결코 합리화될 수 없다.


과연 사회가 정한 기준만이 절대적 정답일까? 

모두가 대학 가고, 취업하고, 열심히 일하다 은퇴하는 일률적인 삶을 살아야 할까?

이제 이 질문에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

이 방식은 사람들의 노동력을 최대한 뽑아내기 위해 과거부터 자본가들이 주입해온 가치관일 뿐이다.

단지 사회적 인정을 위해서 기계적으로 살기엔 우리 삶은 너무 짧고 찬란하다.    

분명 일에서 성취감을 얻고, 사회적 인정으로 행복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일을 하는 게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삶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에게 모두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며 평가하는 사회적 풍토를 지적하는 것이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음에도 운이 안 좋아 기회를 얻지 못했을 수도 있고,

사회가 정한 틀에서 벗어나 자기 나름의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을 찾고 있을 수도 있고,

쳇바퀴 같은 삶에 지쳐 쉬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상대의 내면에는 관심이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지금 이 순간 특정한 직업이 없다면 그는 '낙오자'다.


백수의 사전적 의미는 '한 푼도 없는 처지에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나 역시 타인에게 의존하는 '백수'를 옹호하지는 않는다. 이 부류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선택에 스스로 책임을 지고, 자기만의 방법으로 삶을 개척해나가는 사람들은 인정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기존과 다른 방식일 뿐, 그들은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이런 다양성과 개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나 역시 앞으로 그렇게 살아가고자 노력할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갖고,  노동과 타인의 인정에서 벗어나 조금 더 자유롭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하루빨리 첫 만남에서 ‘무슨 일 하세요?’가 아닌 ‘여행 좋아하세요?’같이 평범한 질문을 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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