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춘기에 깨달은 것(1)
"너는 분명 크게 될 거야"
"너는 말 안 해도 알아서 잘할 수 있지? 너만 믿을게"
학창 시절 주변 어른들에게 꽤나 예쁨을 받았던 나에게 이런 기대와 칭찬은 일상이었다.
그때는 그런 말 듣는 게 좋아서 더 열심히 하고, 그만큼 뿌듯해하곤 했다.
그런데 성인이 돼서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젠 그 말이 담고 있는 진짜 의미를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알아서 잘해야지'
'좋은 결과를 내야지'
'엄마의 자랑이자 희망이 되어야지'
이런 기대를 내포한 칭찬들은 점점 높은 벽이 되어 나를 가두고, 끊임없이 노력하게 만들었다.
언제나 승승장구해야 하는데 자꾸 실패하는 내가 한심했고,
쉬지 않고 달려 나가야 하는데 주저하면서 방황하는 내 모습에 짜증이 났다.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마다 믿어준 사람들을 배신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렇게 방향도 잡지 못하고 몇 년을 허우적허우적 달리다가 결국 벽에 금이 갈 만큼 세게 부딪혔다.
일어날 기운도 없어서 며칠은 바보 같은 나에게 욕을 퍼부으며 가만히 엎어져있었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나도 인생 1 회찬데, 왜 다들 나한테 완벽과 성공을 바라지? 나는 또 왜 남들의 기대에 못 맞췄다고 이렇게 속상해야 하지? 내가 진짜 바랬던 결과는 뭐였지?'
아마 그동안 억눌려있던 내 자아가 온 힘을 다해 내지른 절규가 아니었을까.
문제는 내가 아니라 지금까지 들어온 그 말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내 삶을 간 게 아니라 타인의 칭찬으로 만든 쳇바퀴를 뛰고 있었다.
'믿다'의 사전적 의미는 '의심하지 않고 그렇게 여기다'다.
즉, 믿는 행동의 주체가 상대가 아니라 나다. 내가 그대를 온전히 신뢰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네가 실수를 해도 너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고 곁에 있어주겠다'라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는 누군가를 믿는다는 말을 참 쉽게 남용한다.
'너는 00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너는 열심히 할 거라고 믿어'
이 문장들의 속뜻은 성공해야 돼, 내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와야 해, 열심히 해야지 등 일 것이다.
이런 조건부 믿음은 좋은 말로 포장한 압박일 뿐이다.
자기 몫까지 상대에게 넘기는 무책임한 행위이고,
멀찍이 떨어져서 상대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잘하는지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겠다는 가벼운 마음이다.
진짜 상대를 믿고 사랑한다면 내 진심과 의지부터 보여야 한다.
상대의 성공만 함께 할 얌체 같은 생각이 아닌 그의 실패와 아픔까지 함께 견딜 각오가 필요하다.
이제 이런 무의미한 칭찬은 내가 먼저 거절할 것이다.
나는 나를 진정으로 믿어주는 사람과 나 자신에게만 떳떳하게 살아가면 된다.
누군가 웃는 낯으로 내 어깨에 짐을 얹으려 한다면 당당히(속으로라도!) 말해야 한다.
"껍데기뿐인 믿음은 사양합니다. 넣어두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