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을 놓칠세라 각오하고 남편과 나눈 이야기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왔다.
결단을 내려야 한다.
8월 초, 걸릴 사람은 다 한바탕 걸린 코로나를 요리조리 비켜 2년을 보내고 올여름 확진! 어쩌면 속이 후련했을지도. 언제 걸릴지 모르는 불안감이 있었나 보다. 부작용이 심하다는 얘기를 들어서 걱정이 되었다. 얼마나 아플까 상상만 했지 실감이 나지 않는 하루를 보내고 사흘 넘게 고열과 두통에 시달렸다.
이 시기 더 큰 고민을 안고 있었기에 코로나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남편과 함께 병가를 내고 쉬는 느낌이었고, 복잡해서 정리할 수조차 없는 상황에서 충분히 고민해 보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시간을 얻은 것이다.
갱년기 초입,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 "남편과의 관계는 괜찮은가?" "아이들은 잘 크고 있는가?" "꿈꾸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잘 살고 있는가?" "삶에 만족하는가?" "가장 큰 스트레스는 무엇인가?" ""이 나이가 될 때까지 무엇을 하였는가?" "나의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가?"... 등등 많은 생각과 함께 종일 시달리는 하루를 보내는 중이었다. 에너지가 고갈되어 생각마저 귀찮은 시기인데, 자동적으로 밀려드는 생각들을 막을 길은 없다. 앉아 있을 힘조차 없어 자꾸 눕길 원한다. 우울한가?라고 생각할 때쯔음 코로나 확진. 일주일 가까이 쉴 수밖에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생각들을 정리해 나갔다. 갱년기라고 다 힘든 것은 아니니까. 가장 지금 여기에서 고민되거나 힘든 일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자고 덤볐다. 그냥 막연하게 몸과 마음이 힘들다고만 하면서 넘길 일이 아니다. 분명한 이유는 있을 것이고, 그것을 찾는다면 희망이 있을 테니까.
6월 어느 날, 시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매실나무가 몇 그루 있는데, 아들에게 매실을 같이 따자고 연락을 한 것이다. 세 아이를 돌보느라 바쁘다고 생각하시니 함께 오라고 하지는 않으셨다. 남편은 차를 타고 1시간은 가야 하니 함께 가자고 했고, 도와드릴 겸 오며 가며 데이트하는 기분으로 같이 갈까 하는 중이었다. 마침 유기농 설탕이 딱 떨어져 온라인 배송 주문을 하려고 하는데, 매실 담그실 때 쓰실 것 같아 시댁 것도 살까 하는 마음에 함께 주문을 했다. 혹시 미리 사놓으셨을까 해서 시어머니께 전화를 한 것이다. '유기농 설탕'이 그렇게 큰 파장을 일으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머니~ 매실 담그실 때 쓰시라고 유기농 설탕 좀 샀어요. 갈 때 가져갈게요."
"너희들 것 담을 때 쓰면 되겠구나"
"네~ 배송이 빨리 되면 좋겠네요."
"그런데, 유기농 설탕을 왜 샀니? 땡땡이가 얼마나 힘들게 돈 벌고 있는지 알고 있지? 아껴서 써라"
"아.. 네..(어처구니없어 말문이 턱 막힘)"
매실 담글 때 늘 유기농 설탕을 사서 쓰셔서 온라인 주문하면 더 저렴하게 살 수 있으니까 생각해서 한 일인데, '아들이 힘들게 벌어온 돈이니 아껴 써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목소리 톤에 감정이 섞여 있었고, 아들은 밖에 나가 열심히 힘들게 돈을 벌어오는데 너는 집에서 그 돈을 흥청망청 쓰고 있구나라는 투로 들렸다. 자격지심인 걸까?
돈 3만 원에 자존심이 엄청 상했다. 남편과 결혼을 하고 십 년 넘게 육아하면서 가정에 올인을 한 나는 무엇인가. 그러면서도 열심히 살아보려고 사교육에 돈 쓰지 않고, 세 아이 집에서 함께 공부하고. 아이들 좀 크면 바로 일할 수 있게 자격증에 일거리를 계속 준비 중이었는데.. 남편이 밖에 나가 일할 때 집 걱정하는 일 없게 안정적인 집안 분위기 만들려고 엄청 노력하고 있는데.. 오로지 아들만 잘나고, 아들만 고생하는 것 같이 말씀하시는 이것은 무엇인가.
워낙 그렇게 말씀하시는 스타일이라 그냥 좋게 넘기자 할 때도 많이 있었는데, 이번엔 도저히 그냥 넘겨지지가 않았다. 아마도 존재감과 가치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갱년기 초입이라 더 자극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남편만 날 인정해주고 내 마음 알아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점 점 스트레스가 참을 수 없이 극도로 쌓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받아왔던 시댁에 대한, 시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이것은 아니지. 지금까지 아직도 이런 말씀을 서슴지 않고 하시는 데에는 전혀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없는 태도인 거야"란 생각을 하니 모멸감에 소름이 끼쳤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지 않아도 공동 재산인 이유가 있는 것인데, 밖에 나가 돈을 벌어오는 것이 아들 돈이란 말인가. 마치 허투루 쓴 돈들이 허다한 것처럼. 세 아이, 다섯 가족이 한 사람이 벌어 빠듯한 돈을 저축까지 하며 쓰고 있는 마당에 웬 말인지.. 그래서 다들 하고 있는 사교육비 안 쓰고 있는 것인데 말이다. 모르시는 건지, 알면서도 그러시는 건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평상시 얼토당토않은 말씀을 하실 때 이건 아니다 의견을 내기도 하지만, 이번엔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런 말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우리 아들이 힘들게 벌어 온 돈인데 아껴 쓰라는 말을 가끔 듣기는 했어도 가슴에 확 박히는 이 말.
그 화살은 남편에게로 돌아갔다. 어머니와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 내가 결혼을 선택한 사람은 남편이다. 같이 평생을 사는 사람도. 그래서 남편 하나 바라보고 지금까지 참아 왔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러실 분은 아니라고 하다가 점 점 실체를 알아가더니 이해를 해달라며 부탁을 하더라. 그러다 남편이 생각해도 너무하다 할 때는 잘하지는 말고 기본만 하자고 하더라. 그렇게 십오 년이 넘게 흘렀다. 결혼 초반 불같이 화내는 어머니 앞에서 남편은 화를 풀어주기에만 급급했었고, 비위를 맞춰 드려야 조용했었기에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당신은 엄마 편이야? 내편이야?"라고 아내가 물으면 남편들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난감해하며 상담사를 찾아가면 예전에는 "엄마 앞에서는 엄마 편을 들고, 아내 앞에서는 아내 편을 들어라. 그것이 고부간의 갈등을 최소화하는 전략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요즘은 트렌드가 바뀌었다. 남편은 독립을 하기 전에 엄마와 함께 살았고, 현재는 아내와 살고 있다. 기간으로 따지자면 엄마와는 길게 봐야 30년 전후, 아내와는 적어도 50-60년을 넘게 살지도 모른다. 점 점 수명이 길어진다고 하니 더해지기도 하겠다.
남편은 누굴 선택한다고 하는 것이 모순이 되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부모는 자신이 선택한 사람이 아니다. 태어나고 보니 이미 부모가 정해져 있었다. 아내는 성인이 되어 자신이 선택한 사람이다. 자식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아내뿐인데, 그 아내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슨 황당한 경우일까. 그래서 요즘에는 "어머니 앞에서도 아내 편을 들어라"라고 조언해 준다고 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 말에 깊이 동의하여 남편에게 묻는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오지 못한 남편에게 아주 무리가 되는 부탁 일지 모른다. 어머니 앞에서 내편을 들어달라고 하는 것. 그러나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남편과 함께 남은 평생을 살아갈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함께 살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까지의 우리 둘만의 관계는 괜찮았을지언정 시댁과의 관계에서의 믿음은 약했기에, 부탁을 거절한다면 헤어짐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바보같이 살아온 세월에 대한 보상이라고나 할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의 존재감이 사라져, 없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자유로운 영혼이 가정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희생을 한 자신에게, 최소한의 보상이 남편의 선택을 받는 것이라면 억지를 부려서라도 받고 싶었다.
"난 엄마가 당신에게 이런 대우를 한다면 엄마와 싸워서라도 막을 거야. 둘 중에 누굴 선택할 거냐고 묻는다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당신을 선택할 거고. 평생 당신 편이 될 자신이 있어."
5개월이 지난 지금 상태는 평안하고 행복하다. 신혼보다 더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것 빼고는 가로막혀 있는 게 없었는데, 뚫리니 아주 시원하다. 남편은 고마울 만큼 노력을 해주었고, 시댁 사람들의 감정은 그들의 몫이므로 알아서 잘 처리할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한 달간의 혼선과 죄책감이 있긴 했으나 사랑으로 잘 극복했고, 드디어 진정한 독립을 한 샘이다. 이제 제대로 어른이 된 그날을 기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