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혹독하고 도전적인 의미에 놀라게 된다
얼마 전에 한 전시에서 펭귄 그림을 발견했다.
영하 50도를 육박하는 혹한 속에서 '오늘만 버텨보자'는 듯 또렷한 눈망울로 한쪽을 응시하는 펭귄의 모습이었다. 작품 제목은 '첫 번째 펭귄'이었다.
왜 두 번째도 세 번째도 아닌 첫 번째 펭귄이었을까.
직관적으로 '처음'이라는 의미에서 막연한 '호기로움'을 느꼈다.
혹한을 이겨낸 '위대한' 첫 번째 펭귄이랄까. 아니면 대장 펭귄.
하지만 첫 번째 펭귄이 의미하는 바는
생각보다 살벌하고 혹독했다.
첫 번째 펭귄은 가장 먼저 바다에 뛰어드는 선두주자 펭귄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고래나 상어 등 상위 포식자들이 우글거리는 바닷속에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가장 먼저 바다로 뛰어드는 펭귄이다. 얼마나 무서울까. 얼마나 불안할까.
이렇게 선두주자 펭귄이 바다로 뛰어든 뒤, 다른 펭귄들도 용기를 내 우르르르 바다로 뛰어든다. 첫 번째 펭귄은 그런 존재다.
그리고 첫 번째 펭귄은 우리다. 우리는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매 순간 발생하는 위기는 우리를 불확실성으로 데려다 놓는다. 우리는 불안함 속으로 매일 뛰어들어야 한다. 치열하게. 살벌하게. 하지만 도전적으로.
어쩐지 귀엽다고만 생각했던 펭귄의 몸뚱이에서 장엄하게 빛나는 금빛 아우라가 보이는 것 같다.
그 작은 몸에서 어쩜 그렇게 큰 용기를 낼 수 있는거야? 너와 우리는 그렇게 만만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내일도 모호함과 불확실성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펭귄과 우리에게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