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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익 Feb 19. 2024

문정부 부동산대책 복기.

무엇이 어떻게 어긋났나. 정책, 대안, 정치.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정책에 실패했다. 이 평가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문재인 대통령도, 민주당도 여러 차례 정책 실패를 인정해 왔다. 그러나 대선 패배 이후 부동산 정책에 대한 솔직한 평가는 이뤄지지 않았다. 모두가 '부동산 때문에 졌다'라고 얘기하면서도, ‘어떤 대책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정확하게 짚어내지는 않고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두루뭉술하게 '과잉 유동성 때문이다', '세금으로 집값 잡는 게 아니었다’ 얘기할 것이 아니다. 제대로 된 복기가 필요하다.


그나마 의미 있는 회고로 최근 출간된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쓴 <부동산과 정치>라는 책을 들 수 있다. '왕王수석'이라 불렸던 김수현 실장의 회고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김수현 실장은 2017년 5월~2019년 6월 (사회수석 -> 정책실장) 문재인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다.

- 문재인정부 당시 3기 신도시 등 공급 정책 많았고, 수치적으로 공급 부족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다만 신도시 발표를 1년만 앞당겼으면 어땠을까 후회한다.
- 다주택자를 투기꾼으로 몰고 간 구도는 잘못되었고, 양도세중과는 잘못된 정책이었다. 종부세로 집값은 못 잡는다. 과오 인정하나 본인은 보유세 인상에 온건파였다.
- 민간임대 비중이 큰 한국 사회에서 민간임대인등록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집값 급등기에 펼쳐선 안 됐을 정책이었다.
- 집값 상승의 핵심 변수는 금융이었다. DSR 대출규제를 조금 더 이르게, 강하게 조였어야 했다. 그러지 못해 아쉽다.
- 부동산 정책을 이념적으로 접근한 바는 없다. 또 정부가 할 수 있는 일, 시장이 할 수 있는 선을 고려할 필요가 있겠다. 반값 아파트, 다주택자 탓, 시장만능주의 등 부동산 포퓰리즘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대체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빠진 논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짧게나마 본인이 생각하는 부동산정책의 실패 요인들을 정리해 본다. 물론 이 글도 온전한 복기로 보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필자 또한 문재인정부 하반기 민주당에서 일했던 사람이었기에, 이 문제에 대해 나름의 고민을 해왔다. 솔직한 마음으로 문정부 부동산대책 실패 요인을 돌아본다.


1. 다주택자 때리기?

 문재인정권은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다주택자’를 지목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보통 다주택자는 집값 하락기에 집을 매수하고, 집값 상승기에는 무주택자들이 집을 매수한다. 그러나 문재인정부는 ‘무주택자들의 수요는 실수요이니 이것은 놔두고, 다주택자들이 주택 물량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은 ‘투기성’이라 규정하며 거칠게 접근했다.

 ‘다주택자 때리기’는 집값 안정에 별 도움 되지 못했다. 8.2 대책 ‘양도세 중과’는 다주택자들이 시장에 매물을 내놓기보단 집을 품고 버티면 되게끔 만들었다. 시장에 매물이 나오길 기대했다면, 오히려 양도세 완화를 추진하는 게 바람직했다. 김수현 수석도 노무현정부 이후 집필한 <부동산은 끝났다>란 저서를 통해 ‘보유세는 인상하되 양도세는 완화하는 방안‘을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문정부 대책은 거꾸로 갔다.

  더 황당한 것은 그해 12월에 나온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이다. 물론 투명한 임대차 시장 관리를 위해선 민간임대등록제는 필요하다. 그러나 모두가 집값이 오른다고 믿는 상황에서, 임대사업 등록자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정책은 ‘다주택 갭투기 판’을 깔았다. 정부는 다주택 투기를 잡겠다면서 결과적으로 투기성 다주택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2. 종부세는 '폭탄'이었다.

 9.13 대책의 핵심은 <종부세 강화>였다. 이때부터 문재인정부는 ‘양도세 중과+종부세 중과’를 정책수단으로 활용했다. ’투기 불로소득을 징세하여 투기수요를 줄이고 다주택자의 매물이 시장에 나오면 집값을 잡을 수 있다 ‘는 논리이다. 그러나 세계 각국의 집값 상승률과 보유세율을 비교해 놓고 봤을 때, 두 변수 사이에 뚜렷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다시 말해 ‘보유세 인상‘과 ‘집값 상승 억제‘은 뚜렷한 관계가 없다.

 진보 진영의 많은 인사들은 한국의 보유세율이 낮다고 주장한다. 명목 세율만 보면 그렇다. 보유세율이 높은 국가들 경우, 대개 보유세 적용이 지방세로 납세자와 납세자 지역의 이익이 연동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한국 종부세는 지방균형발전을 독려한다는 이유로 국세로 분류되어 납세자가 효능감을 느끼지 못한다. 또한 보유세 부담이 높다고 하는 나라들은 대부분 단일세율인데, 우리는 누진세율을 적용하기 때문에 집값이 오르면 세금 부담이 급격히 과중된다.

 몇몇 민주당 인사들은 종부세를 “상위 1%만 내는 세금이기에 대다수 서민은 무관하다”며 정당화했다. 부자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 아파트 중위가격이 9억 원대로 정착하면서, 종부세 대상 가구는 전체 가구의 4분의 1이 될 정도로 증가한다. ‘그저 서울 어느 지역에 살고 있을 뿐인데’, 세금을 갑자기 몇십몇 백만 원 단위로 지불해야 하는 상황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 * 2018년 대비 2021년 주택분 종부세 증가 배율은 14배에 달한다.)

 현행 종부세는 온갖 명분을 우려 넣은 집값 잡기용 누더기 세제이다.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는 것이 종부세의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집값 안정 수단으로써 종부세는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집값 잡는 수단이 아니라 부유세가 목적이었다면, 그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조세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은 갈피를 잡지 못했고, 그 결과 지난 대선 서울 한강벨트에서 전패했다.


3. 지속가능하지 않은 정공법, 대출규제.  

 문재인 정부는 강력한 대출규제 정책을 시행했다.  LTV DTI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그러나 실수요자들은 전세 갭투자를 활용하거나 신용대출을 끌어다 쓰는 방식으로 규제를 우회할 수 있었다.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믿음이 계속된 상황에서, 갭투자자들이 소득령 154조와 같은 빈틈을 활용하자, 거대한 전세자금 유동화 사이클이 만들어졌다. 모든 부채에 대한 상환 능력을 따지는 DSR 규제는 2021년에 이르러서야 적용됐다.

 대출규제 강화는 청년층의 강한 불만을 샀다. 본래 집은 '빚내서 사는 곳'이다. PIR 지수(소득대비주택가격)를 고려했을 때, 대출받지 않고 주택을 매입하는 것은 '현금부자'가 아니고서는 달성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출규제 대폭 강화는 ‘사다리 걷어차기' 속성이 있다. 여기에 '청약 가점제 적용'이 확대되면서 30대층은 청약에서도 밀려났다. '대출규제 강화’에 ‘청약가점제 확대’가 맞물린 결과, ‘수도권 30대 중산층’은 민주당 유권자 연합에서 이탈했다.

 물론 대출규제 정책은 필요하다. 가계부채가 심각한 한국 사회에서 DSR 규제는 금융 안정성 관리차원에서 고려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주택담보대출은 미시적인 부동산 가격 조정 수단으로 남용되는 측면이 있다. 예컨대 가계부채 건전화가 목적이라면 상환 여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대출을 유연하게 해 주고 상환 여력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잣대를 들이미는 식으로 가야 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정반대 조건으로 주택담보대출을 강화하여, 상승장 속에 실수요층의 욕망을 욱여넣기만 했다.


4. 이유 있는 공급 부족론

 문재인정부 이전에 박근혜정부가 있었다. 박근혜정부는 2014. 9.1 대책으로 대규모 공급 축소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박 정부는 MB정부의 보금자리주택 공급 정책을 백지화했고, 택촉법 폐지를 추진하며 ‘적어도 2017년 말까지 대규모 공급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대규모 공급 축소가 이뤄진 상황에서, 초이노믹스로 대표되는 가계대출 완화 정책과 함께 부동산 시장은 2015년부터 반등한다. 분양시장 및 건설투자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7년 문재인정부가 출범했다. 문재인 정부는 결과적으로 3기 신도시 개발을 통해 수도권 주택 공급에 기여하긴 했다. 그러나 시곗바늘을 정권 초반으로 돌렸을 때, '공급 부족론'을 꺾을 만한 공급 대책이 나오지 않았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당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SOC 사업이나 부동산 경기부양은 토건적폐'라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으며, 서울시(박원순 시정)는 그린벨트 해체, 재개발 재건축 사업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이를 고려했을 때, 시장이 충분히 ‘공급 부족론’을 노래할 만한 상황이었다. 물론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지적했듯 ‘집은 빵이 아니다’. 공급에는 입주까지의 시차가 있고, 주택 공급과잉으로 공실만 늘어날 위험도 있다. 그러나 서울에서 주택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인구는 감소하지만 주택 공급에 비해 가구 수는 증가한다. 주택도 새로 짓는 공급량만 고려할 게 아니라, 멸실 비율도 함께 따져봐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서울에서 집은 조금씩은 지속적으로 공급될 필요가 있다. 공급만능론은 위험하지만 공급부족론을 시장의 과욕으로만 치부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았다.


5. 과잉 유동성과 ‘불가피’ 론.

 문재인 정부는 집값을 못 잡았다. 그러나 과연 집값을 잡을 수 있었을까? 부동산 가격을 결정하는 변수는 다양하다. 그중에서 가장 강력한 변수는 '금리'라 할 수 있다. 집값이 급상승한 시기와 금리 인하기는 정확히 겹치며, 한국은 뉴질랜드 호주와 더불어 금리를 가장 많이 낮춘 나라였다.

 이후 코로나가 진정되고 물가가 상승하자 연준(미국 중앙은행)을 위시한 각국 중앙은행은 금리를 인상했다. 그 결과 현재 집값은 하향세로 접어들었다. 다시 말해, 집값을 확실하게 잡고 싶다면 금리를 인상하면 된다. 그러나 서울 집값 잡자고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릴 순 없는 것 아니겠는가. 운이 나쁘게도, 문재인정부는 집값 상승기에 들어선 정권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애초 정부는 부동산 가격을 잡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평가도 틀리지 않다.

 그러나 시장 상황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몇몇 민주당 인사들은 ‘코로나 시기 과잉 유동성’을 ‘정책 실패‘의 주요인으로 지목한다. 물론 일정 부분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2018년 전후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던 이유에 대해선 뭐라 설명해야 할까? 그것도 금리 때문이라고 얘기하면 되는 것일까? 우리는 ‘불난 집에 기름 붓진 않았는지’를 자문하는 관점에서 이 문제를 복기해야 한다. 모든 것을 ‘불가피했다’고 전제해서는 그 어떤 교훈도 얻어갈 수 없다.


6. 임대차 3법: 예정된 혼란.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둔 뒤, 2020년 7월 '임대차 3법'이 통과됐다. 이 법은 '전월세 계약 만료 시 기존 세입자가 계약 갱신을 한 번 청구할 수 있게 하고, 이때 임대료는 5% 이내로 인상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집을 사서 다른 곳으로 이사 갈 계획이 없다면 계약갱신청구권을 쓰고 5% 이내로 임대료를 올리는 것이 유리한 선택이다. 집주인은 이를 수용하거나 본인이 그 집에 직접 입주해 세입자를 내보내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기존 주택에 계속 거주하는 세입자'와 '실거주를 택하는 집주인'이 늘면서 전세매물이 줄어들어 전세가격이 인상했다. 주택 가격이 오르는 가운데 집주인들이 4년 치 보증금 인상분을 한 번에 올려 받으려고 하자 전셋값이 급등했다. '시장 가격, 규제 가격, 협상 가격' 등 3중 가격이 횡행하는 이면계약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21년 4년 서울의 아파트 평균 전세 가격은 6억 1,000만 원을 돌파했다. 이는 4년 전 평균 매매가격을 넘어선 것이며 전세 가격 자체로도 43% 이상 상승한 수치이다.

 통과 이전부터 임대차 3 법에 관한 문제제기는 많았다. 전세 매물이 줄고 전세가격이 오히려 오를 것이라는 반응이 절대적이었다. 이러한 비판에 당시 민주당은 “전세 사라지면 좋다 - 월세가 전 세계적 표준이다” 식으로 대응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뻔히 아는 상황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법을 강행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문재인정부는 임대차 시장마저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7. 근본적 문제와 작은 대안들.

 모든 정책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정책의 경과에 따라 상대적 수혜를 입는 시민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무주택자, 실수요자, 임차인은 최대한 배려하고 다주택자, 임대인, 투기수요는 억제하는 정책을 취했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아닌 다른 정권이 들어섰어도 이런 취지의 정책 기조를 채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구분이 시장에 그대로 적용되긴 어렵다. 세상엔 정말 나쁜 다주택자도 없고, 임차인이 항상 약자인 것도 아니며, 투기성 수요와 실수요를 구분한다는 것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핀셋으로 가르고 두더지 잡기 식으로 확대 반복된 부동산 대책은 모두를 지치고 화나게 만들었다.


 (1) 세금으로 집값 잡는다는 오랜 신화에서 벗어나자. 보유세를 인상해야 한다면 그것은 조세개편 차원에서 합의해야 할 사안이지, 가격 조정 수단으로 주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종부세는 폐지하고 재산세와 통합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한국 사회에서 다주택자는 민간임대를 공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시에 투기적 이익을 취득하기도 한다. 다주택자를 선악 논리가 아닌 시장 참여자로서 바라봐야 한다. 비록 정책 수순이 잘못되어 문제를 악화시키긴 했으나, 김수현 실장이 지향한 민간임대등록제의 의도는 바람직하다.


 (2) 주택공급 자체에 부정적이었던 ‘2010년대 진보진영의 관성'을 돌아봐야 한다. 2021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당시, 이해찬 대표는 "서울시를 한강변에 아파트만 들어선 천박한 도시 만들면 안 된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은 한강변에 고급 주거단지를 공급하겠다는 정책 상상력이었을지도 모른다. 공급 정책은 시기와 상황에 따라 완급 조절이 필요하나, 서울권에 재개발•재건축•용적률 상향•주택 공급이 필요하다는 관점엔 열린 태도를 가져야 한다.


 (3) 우리가 언급하고 있는 부동산 문제는 ’서울-수도권‘ 이슈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 인구가 몰리는 추세를 꺾지 않는 한 부동산 정책의 문제는 ‘저금리 가격 상승기’ 때마다 반복될 것이다. 그렇기에 중장기적으로 지역균형발전으로 '서울공화국' 문제를 해소하는 근본적 노력이 필요하다. 부울경 메가시티를 중심으로 한 전략적 균형발전론의 골든타임을 놓쳐선 안된다. ‘서울을 발전시키지 않아야 지방이 살아난다'는 생각에 빠지면 안 된다. 서울 발전을 억제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국제 경쟁력을 희생하는 것과 같다. 수도권 규제보다는 지방 거점도시를 매력적인 투자지로 정착시키기 위한 대안에 노력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메가서울’을 떠들 것이 아니라, 이전 정부의 ‘부울경 메가시티론’을 발전적으로 계승해야 한다.


 (4) 주택담보대출 규제는 중장기적인 기조를 확립해야 한다. 물론 부동산 시장 상황에 따라 대출규제를 강화하고 완화하는 정책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미시적인 가격을 조정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때그때 포퓰리즘적으로 대출규제-완화 정책을 할 것이 아니라, 미래세대를 위한 중장기적이고 일관된 모기지 정책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5) 정치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은 정책은 시장의 신뢰를 받기 어렵다. 엄연히 존재하는 대중의 욕망을 당위론으로 욱여넣는다고 문제가 풀리진 않는다. 강경한 대출규제에도 불구하고 주택 수요가 줄어들지 않고, 양도세 중과를 결정하자 다주택자들이 버티기 전략을 고수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시장 참여자 입장에선 해당 정책이 A. 합리적이지도 않고, B. 정치적으로도 지속가능하지 않다면, 우회하거나 비토하는 전략을 취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은 '정권 심판론'과 강력히 연결된다.


 대도시 지역의 주거비 상승은 전 세계적 문제다. ‘주택 금융화’는 선진국 대부분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독일, 스웨덴 같은 주거 복지국가 또한 주택 투기와 임대료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어느 문화권에서나 더 나은 집으로 이사하는 행위는 ‘계층 상승’의 의미를 갖으며, 부동산은 자산으로서 투자 가치가 있는 상품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만 부동산 문제에 시달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 고유의 맥락은 분명히 존재한다. 인구 밀도가 높은 한국 사회에서 학군 등을 쫓아 더 나은 ‘아파트’로 입성하는 한국 사회의 역학은 보다 경쟁적인 게임에 가깝다. (한국은행은 집값과 출산율 사이의 상관관계가 매우 높다고 지적한다.) 여타 선진국에 비해 한국은 금융/연금 부문이 미약하기 때문에, 부동산은 ‘노후 자산 마련’과 직결되며 주식보다 매력적인 투자 대상으로 인식된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구조적 차원에서 <지역균형발전>, <자본시장 선진화> 를 통해 ‘부동산 몰빵‘의 김을 빼는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





선의의 '실패'.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민생 정당'. 이것이 김대중 이래 민주당의 모토였다. 중산층과 서민의 연합, 탄핵에 찬성한 거대한 유권자 연합, 소위 '촛불 연합'이 문재인정부를 창출했다. 문제는 좋은 취지로 시행한정책이 촛불연합의 해체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가계소득을 높여야 내수가 진작된다는 도식을 바탕으로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했다. 실수요자에게 혜택을 주는 대신 다주택자의 투기수요를 징수하겠다는 의도로 부동산 대책 방망이를 휘둘렀다.


결과는 처참했다. 2018년 최저임금 인상은 오히려 저소득 노동자, 영세자영업자 층에 타격을 주며 사회 갈등을 초래했다. 실수요, 투기, 투자, 욕망 사이의 경계가 흐릿한 부동산 시장에 적폐청산 잣대가 적용되자 정책은 산으로 갔다. 물론 두 가지 정책 이슈만을 두고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전체를 평가할 순 없다. 그러나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두 가지 정책이 어긋나면서 정권의 정책 신뢰도 전반이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한국의 진보적 시민사회가 형성해 온 <당위론적 정책관>을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적폐는 청산해야 마땅하고 기득권은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그 또한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법일 뿐이지, 무언가에 반대하고 억누르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될 순 없다. 예컨대 불공정 거래를 규제하는 정책과 시장의 욕망을 적대시하는 일은 다른 문제다. 그러나 진보 담론 일각은 ‘용산참사와 4대강의 문제’를 ‘재개발과 SOC 사업 자체에 대한 회의론‘으로 연결 짓고, 재벌이 잘못된 특혜를 누리는 일과, 수출 주도 대기업 경제가 의미하는 바를 마구 뒤섞어 이해하고는 했다. 물론 하나의 사실에 복잡한 양단이 있는 세상에서 진보세력이 그렇게 생각하고 주장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민주당 정부‘가 편향된 정책관으로 국정운영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안티테제와 언더도그마에 기반한 ‘당위론적 사회운동 정책관‘으로는 대한민국 전체를 책임지기 어렵다. 운동권 출신이어서 잘못된 것이 아니라 운동권적 방식으로 정책을 결정하여 문제인 것이다. 개혁적이어서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동 떨어진 개혁이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은 현재 윤석열 정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공매도 등 카르텔을 때려잡고(?) 세금을 깎으면 코리아디스카운트가 해소되고 경제가 반등한다!‘는 윤정부의 정책관은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다. 사회를 분열시키고 정책에 무능한 정치세력은 국민적 신뢰를 받기 어렵다. ‘좋은 정책’과 ‘좋은 정치’는 함께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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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및 더 읽을거리


- 채상욱, 『대한민국 부동산 지난 10년 앞으로 10년』 , 라이프런, 2020.

- 김민규, 『모두가 기분 나쁜 부동산의 시대』, 빅피시, 2021.

- 최병천, 『이기는 정치학』, 메디치미디어, 2023.

- 김수현, 『부동산과 정치』, 오월의 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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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12042024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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