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일본
6월 말,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을 때 맡은, 온몸을 감싸는 듯한 그 습한 공기의 느낌을 잊을 수 없다. 한국에서 나는 아직도 카디건을 걸치고 다닐 날씨였는데 이곳에 오니 특유의 꿉꿉한 공기로 인해 겉옷은커녕 가만히 있어도 숨이 답답해져 왔다. 하지만 기분만큼은 꽤나 상쾌했는데, 그건 내가 일본에서의 생활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아, 아니다. 내가 기대하고 있던 부분은 특별히 ‘일본’은 아니었다. 아마도 ‘한국이 아닌 곳’에서의 생활을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에게 일본은 ‘코난’, ‘나루토’, ‘테니스의 왕자’의 나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아는 일본어라고는 중고등학생 때 배운 인사말이 다이며, 그조차도 거의 잊어버려 오기 전엔 학원에 다니면서 가타카나부터 다시 공부해야 할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일본에 오고 싶었던 것은 이곳이 나의 ‘도피처’였기 때문이다. 회사, 업무적 커리어, 인간관계 등 모든 것에 회의를 느끼고 있던 차에 남편이 일본 주재원에 지원해 발령이 난 것이다. 나를 옥죄는 한국에서 벗어나 아무도 날 모르는 곳에 가 있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 이것을 나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일본이 어떤 곳인지는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다. 일단 내가 있는 이곳을 벗어나는 것, 그것이 중요했다.
여행이라도 온 것처럼 나는 설렘 반, 걱정 반으로 공항에서 남편이 예약해 둔 리무진을 기다렸다. 남편은 내가 오기 전에 미리 3달 정도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그동안 일을 하면서 나와 함께 살 준비를 해두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남편이 일본어가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낯선 땅에서 혼자 부동산에 가서 집을 보고, 계약하고, 인터넷을 까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당시에는 ‘네가 오자고 했으니 당연히 해둬야 할 일이지.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걸.’이라는 생각을 가졌었다. 그런 이기적인 생각에도 부응하듯 남편은 모든 것을 문제없이 척척 해냈다. 내 희망 사항을 반영한 집을 구해 가전을 넣어뒀고, 입주 청소 및 인터넷 설치까지 끝낸 둔, 넓고 쾌적한 이곳, 이곳이 그렇게 우리 집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그게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도쿄에서 생활한 이 2년의 시간, 어쩌면 그냥 내 기억 속에 남겨 시간의 흐름에 따라 훌훌 흘려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생각보다 특별하면서도 생각보다 흔한 이 시간의 기록을 남겨보고자 한 것은 그만큼 여기에서의 시간이 나에게 보물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반짝이는 내 보물을 글로 꺼내 전시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추억, 이야기도 끌어내고 싶다. 글을 통해 서로의 귀하고 소중한 경험을 함께 돌이켜보며 행복을 배로 늘려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