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학원강사로 일하던 나에게 그해 겨울의 취업은 유난히 특별한 기억이었다. 영어 관련 학과를 전공하고 몇 년 간을 대학원에서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레 영어 쪽으로 강사 일을 하게 되었는데, 우연히 글쓰기 지도 관련 일을 할 기회가 생겼던 것이다. 물론 어학공부 관련 일도 너무나 좋아하는 일이지만, 이번 기회에 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일을 직업으로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겨 첫 출근 날까지 줄곧 설렜다.
봄이 되어 새 학기가 되고 아이들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어린 친구들도 꽤 많아 책 읽는 것조차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많았지만, 나의 도움으로 인해 조금씩 변화할 수 있을 아이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2호선 맨 끝에 있는 장산역까지의 긴 출근시간도 지겹지 않게 보내곤 했다. 아이들과 책도 읽고 이야기도 나누고 글을 쓰는 시간이 즐거웠기에 오래 일을 계속하고 싶었다. 하지만 건강 문제로 일을 오래 하지 못하고 자연스레 글쓰기를 직업으로 하는 일과는 멀어지게 되었다.
어쨌거나, 그해 봄 장산역에도 꽤 많은 벚꽃이 피었다. 떨어지는 꽃잎은 어디에서 보아도 아름답지만, 그 해의 꽃은 마치 새로운 시작과도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쉬운 기억이지만 그때에 비해 좀 더 건강한 마음으로 지금의 일에 충실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삶에서 찾아오는 찰나의 기회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지만, 그 기회를 다시 잃었다고 해서 지나치게 좌절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크게 낙심하지 않은 탓에 그날의 기억들이 오히려 지금의 상황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여겨지곤 하기 때문이다.
기회는 돌고 돌기 마련이고, 그저 흩어져 사라져 버리는 꽃은 없다.
<장산역>
부산 지하철 2호선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로 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