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에는 더 이상 매체를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형식이 존재함에도 많은 이들에게 '미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여전히 회화일 것이다. 회화는 미술사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클래식한 매체인 한편 다른 매체의 등장에도 진화를 거듭하며 여전히 얘깃거리가 많은 현대적 매체이기도 하다. 수학에 숫자와 각종 연산 기호가 있듯 미술이라는 시각언어에는 점, 선, 면, 색 등의 요소가 있는데, 그걸 어느 물리적 층위에서 쓰냐에 따라 평면-회화, 입체-조각, 공간-설치, 시공간-퍼포먼스 등의 매체로 구분할 수 있다. 평면의 연장이 곧 입체이기에 회화를 다른 매체의 기초, 즉 미술이라는 장르의 기초로 보는 기조가 여전하다. 그럼 평면을 벗어난 회화는 회화가 아닌가? 어디까지가 회화인가? 어떤 요소를 가져야 회화인가? 이러한 회화의 본질, 정체성에 대한 논의에 있어 살펴볼 만한 운동으로 Support-Surface가 있다.
19세기 말부터 인상주의, 표현주의 등으로 태동하던 변화의 기운은 20세기 전후에 들어 본격적으로 근세 미술에서 현대미술의 전환으로 이어졌다. 회화는 재현이라는 오랜 전통에서 벗어나 여러 갈래로 다양화됐다. 20세기 전반에는 구성주의, 다다이즘, 추상주의, 초현실주의, 추상표현주의 등 폭발적으로 새로운 사조들이 생겼다 사라졌다. 이후 60년대부터는 팝아트, 미디어아트 등 새로운 산업사회로의 이행을 보여주는 사조들과 함께, 플럭서스처럼 자본주의 및 획일화에 맞서는 사회적/예술적 아방가르드 운동들이 등장했다. 이러한 20세기 중반 이후의 움직임은 특히 프랑스의 68 문화혁명과 맥을 같이 하는데, 1969년에 등장한 Support-Surface도 그중 하나다. 플럭서스와 마찬가지로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특히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도 않았지만, Support-Surface는 프랑스에서 유의미하게 언급되는 70년대 예술 운동 중 하나다.
Support-Surface(한국어로 굳이 써보자면 '쉬포르-쉬르파스')에서 Support는 받침대, 지지대라는 뜻으로 회화에서 물리적 지지체를, Surface는 표면, 즉 캔버스 화면을 말한다. 이들은 68혁명의 영향으로 유물론을 회화로 끌고 와 회화의 내용이 아닌 물질성에 주목하며,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전통 회화와 단절하자는 '반예술적 전위주의'를 표방했다. 무엇을 그리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회화를 구성하는가를 묻고, 천, 지지대, 안료 등 회화 자체의 물질적 현실을 대상으로 삼는다. 이를 테면, 캔버스 천을 고정하는 샷시(지지대)를 변형하거나 없애는 등의 시도를 통해 작품이 크기와 형태의 제약에서 벗어나 공간 안에서 물리적 자유를 얻는다거나, (이어 붙이는 대로 무한히 이어지는 패턴, 접기/말기/펼치기 등의 행위 자체와 그것을 통한 작품의 가변성과 휴대성 등) 캔버스 천을 비슷한 구조인 망 등으로 대체하여 Surface의 물질성을 극단적으로 확대시킨 경우 등이 있다. 또한 붓을 거부하며 우표, 스텐실, 스펀지, 총, 가위, 막대기 등의 다양한 도구를 활용하기도 했다. 전통적 회화의 이미지를 해체시킨 이러한 시도들은 회화의 한계를 끝까지 밀고감으로써 회화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불러일으키고 회화의 가능성을 확장시켰다.
이처럼 고전적 재료를 거부하고, 일상의 사물을 개입시키고, 완성된 이미지보다 과정을 중시하며 궁극적으로는 물질성을 전경화하려는 시도들이 현대에 와서는 꽤나 익숙한 것이 됐는데, 그렇기 때문에 시초 격인 이 운동이 더 유의미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미술의 중심지가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 가면서 유럽(특히 파리) vs 미국의 경쟁구도가 있었던 탓인지, Support-Surface를 포함하여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유럽권의 미술운동이 많다. 비록 Support-Surface는 정치적 입장 및 이론화에 대한 이념적 불일치*로 인해 4번의 전시 후 막을 내린 짧은 운동이지만, 회화란 무엇인지, 나아가 이러한 고전적 매체 구분 자체가 유의미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있어 중요하게 참고할 만한 전위 운동 중 하나다.
*Support-Surface는 68혁명이라는 매우 정치적인 배경에서 탄생한 예술운동인 만큼 마르크스-마오의 유물론을 앞세워 회화에도 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회화에 개입된 불순한 상업적/부르주아적 요소들을 제거하고 회화 그 자체에 집중하자는 게 요다. (1차 세계대전 후 말레비치의 러시아 절대주의와 비슷한 맥락) 그러나 운동이 전개됨에 따라 유물론에 입각한 급진적 이론화를 강조한 쪽(Louis Cane, Daniel Dezeuze, Marc Devade 등)과 이데올로기 자체를 거부한 쪽(Claude Viallat, Patrick Saytour 등)으로 양분되면서 해체의 길을 걷게 된다. 그 외 참여 작가로는 Noël Dolla, Pierre Buraglio, Jean-Michel Meurice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