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젖은 햄버거
2011년 가을, 여러분은 무얼 하고 계셨습니까?
이때 태어났거나, 심지어 아직 엄마 뱃속에 있었을 분들도 있겠죠. 누군가는 학생이라 학교-집-학원을 반복했을 것이고, 이미 어른이었다면 직장에 뛰어들고, 밤이면 침대로 쓰러지고. 전국 각지, 혹은 세계 곳곳에서 저마다의 일상을 보냈을 것입니다.
근데 잠시만 생각해 봅시다. 혹시 우리, 하나로 연결됐던 적 있지 않나요?
조심스레 여쭤봅니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국민 오디션 프로그램, '기적을 노래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운 <슈퍼스타K>에 혹시 열광하지 않으셨습니까? 당시 중3이었던 저는 미쳐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삶에 적잖이 영향을 끼친 사람을 알게 됐습니다. 통기타, 그리고 슈스케. 벌써 짐작 가는 사람이 몇 명 있으시죠?
'거리의 악사'라는 뜻을 가진 영단어, Busker. 이름만 들어도 거리 음악을 굉장히 좋아할 것 같은 '버스커 버스커'가 공부 밖에 몰랐던 저의 호수에 커다란 바위를 풍덩 빠뜨렸습니다. 그 물결은 14년이 지난 지금도 제 마음속에 요동치고 있죠. 사는 게 바빠 그때보단 잔잔한 파동이지만, 분명하게 여전히 흔들리고 있답니다.
.. 근데 그 얘기가 지금 왜 나오느냐?
버스커 버스커와 장범준 씨를 언급하지 않고서는 이 책을 시작할 개연성이 도무지 충족되질 않아서 그렇습니다.. 너그러운 양해 부탁드리고, 서두가 길었죠? 이제 본격적으로 이 책의 제목대로, 통기타가 저를 어디로 데려다줬는지, 허심탄회하게 늘어놓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여러분의 일상에 즐거운 한 부분이 되길 바랍니다.
넌~ 왜~ 지금도 나~ 를~
자꾸만 나~ 를~ 아프게 해~
- 버스커 버스커 <동경소녀> 中 (원곡: 김광진)
<슈퍼스타K3>의 Top 11이 결정되고 첫 생방송 경연 무대였다. 버스커 버스커는 당시 김광진의 <동경소녀>를 자기들만의 스타일로 편곡해 들고 나왔는데, 그 과정에서 김광진이 <동경소녀>는 본인이 공연할 때도 연주가 쉽지 않은 곡인데, 자기 나름대로 편곡을 한 걸 보고 좀 놀랐다며 칭찬 한 마디를 건넸고, 장범준은 감동받아서 울었다. 다음은 무대 직전 영상의 일부분이다.
김광진: 그럼 음악을 어디서 했어요?
장범준: 집에서..
김광진: 집에서? 자기 스타일로 그렇게 하기 어려운데.. 편곡 잘했다~
장범준: 저희는 신나잖아요. 어쿠스틱인데 드럼이 있고 막 흔들잖아요. 그 속에서 슬픔도 느껴질 거고요. '이 노래가 너무 좋아가지고 즐겁게 부르고 있다' 그 부분을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곡을 부르게 돼서 너무나 영광이고, 저희들만의 색깔로 재밌게 편곡을 해서 감동을 드릴 수 있는 무대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는 모습은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에게 센세이션 하게 다가왔다. 종전까지 내가 알고 있던 통기타란 어디 앉아서 얌전하고 우아하게 연주하는 악기이고, 그 반주에 얹는 노래는 눈을 감고 덤덤하게 읊조리는 쪽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이후의 무대에서도 통기타를 맨 채 몸을 이리저리 흔들고, 표정도 다양하고, 심지어 가사 사이에 웃음도 섞인 듯한 그런 자유로운 공연을 펼쳤는데, 그게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사나이 가슴에 불을 지폈다. 그야말로 '입덕'을 해버린 것.
더 이상 고음을 시원하게 쫙쫙 찢고 지르는 그런 '성대 차력쇼' 성격의 음악은 거르게 됐다. 대신 장범준처럼 어떤 곡이든 자기 스타일로 바꿔 맘대로 부르는 게 진짜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스피커로 반주를 트는 것이 아닌, 내가 부를 노래 반주 내가 직접 치는 것. 그게 아티스트 아닌가? 그땐 그랬다.
그렇게 오디션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쌓여가는 버스커 버스커 노래를 매일같이 시도 때도 없이 들었고, 그러다 자연스레 그 속의 기타 소리에 더 집중하게 됐다. 찰랑찰랑 너무 중독성 있고 매력적이었다. 기타 저렇게 치는 사람 처음 봐..! 점점 빠져들던 나, 다음 단계는 당연히 나도 기타 치고 싶다..!
그러나 곧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때라 기타를 배우기가 애매했고, 언젠가 꼭 기타를 치고야 말겠다던 그 마음, 가슴속에만 품기로 했다. 수능 끝나면, 그래, 수능만 끝나면 내가 반드시 기타 배운다. 반드시..!
그렇게 고등학생이 된 나.
공부하느라 기타의 '기'자도 못 꺼내던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매년 앨범을 내놨다. 고1 땐 <벚꽃 엔딩>, 고2 땐 <처음엔 사랑이란게>를 지독하게 들었고, 고3 땐 은둔 생활을 하며 공부하느라 몰랐는데 솔로 1집까지 냈더라. 기타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진짜 MAX였지만 수험생이 기타 학원 다니는 건 좀 그렇겠지? 감질났지만 수능날까지 견뎌야 했다.
2014년 11월 13일.
드디어 수능이 끝났다.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수능날 해가 넘어갔으니, 자.. 시작해야겠지? 그러나 당장은 돈 없는 민짜 고등학생이다 보니 바로 엄마와 협상에 들어갔다. 수능은 수능이고 맨입으로 통기타를 사달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
노사(?) 간의 원만한 협의 끝에 일단 통기타를 사주시기로 했다. 단, 그건 선불이고, 내가 알바를 해서 갚는 것으로 약속했다. 선뜻 알바를 한다는 게 기특하니, 통기타 학원비는 엄마가 쏴주기로 했다. 협상 대(大) 타결!
다음날 시내에 있는 악기사에 갔다. 인자한 할머니께서 운영하시던 작은 가게였는데, 간판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들어가 보니 없는 것이 없었다. 온 사방이 통기타..! 설렜다.
정신 차리고 수줍게 저.. 통기타 좀 보러 왔는데요.. 하니 기타 칠 줄 아냐, 처음 사는 거냐, 어떤 모델 생각하냐 등 여러 가지 질문을 하셨지만 당시 나는 마음만 뜨거웠지 사실상 '기알못'이었기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ㅋㅋ 하며 뉴비 냄새를 맡은 사장님께서 베테랑답게 정밀진단에 들어가셨다. 첫 기타고, 손가락도 긴 편인 것 같으니 이게 딱 어울리겠다며 하나를 골라오셨다. 마치 호그와트에 입학하던 해리포터에게 지팡이를 골라주듯이.
그땐 잘 몰랐지만, Cort MR-E라는 모델이었다. 사장님 말씀대로 입문용 기타였고, 튜너에, 예비 줄 등등 다 합쳐서 딱 30만원에 해주셨다. 원래 다 합하면 35만원 정도 한다는데, 오랜만에 기타를 잘 칠 것 같은 손가락을 봐서 즐거웠으니 깎아주셨다고. 영광이었다. 11년째 잘 쓰고 있습니다.
집에 가는 버스를 타러 가는데, 온 세상이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등에는 거북이마냥 엉거주춤하게 아주 긴 통기타 가방을 메고 있었으니까. 가게에서 나올 때 사장님께서 '이~야~ 아티스트 같아 보이고 좋~네~' 하셔서 더 쑥스러웠다. 통기타 가방을 메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건 극히 내성적인 내게 상당한 곤욕이었다. 겨울이었는데도 부끄러움에 땀이 막 나더라.
집 근처 정류장에 번지점프하듯 뛰어내렸다. 좁은 버스에 커다란 통기타를 들고 타려니 눈치가 보여 혼났네. 뭐, 그건 그거고, 얼른 집에 가자. 나도 드디어 통기타 오너..!
고이 모셔온 통기타 가방을 열고 드디어 내 기타.. '내' 기타를 꺼내 들었다. 나무 냄새가 훅 번져오는 것이 신비로웠다. 조심조심 무릎 위에 얹어놓고 튜닝이고 코드고 아무것도 모르지만 손 가는 대로 튕겨봤다. 디리링.. 디리리리링..
오.. 제법 기타리스트 같나? 아무도 없는 집, 침대에 걸터앉아 헤벌쭉하며 마치 장범준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던 그때.
아 맞다..
이거 아직 완전히 내 거 아니지..
엄마가 선불해 준 거고 알바해서 갚기로 했지..
다음 주부터 알바하기로 했지..
아 맞다..
일이 뭔가 잘못됐음을 감지했다.
초(超) 내향형인 데다 3년 동안 학교에 틀어박혀 공부만 했던 내가 통기타에 눈멀어 알바하겠다고 일단 지르고 봤으니.. 슬슬 다가오는 업보청산 타임이 나를 옥죄어 왔다.
그나마 형이 알바 하던 우리 동네 롯데리아에 햄버거 구우러 들어가서 참 다행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걸론 위로가 덜 됐다. 그래.. 기타 치려면.. 어쩔 수 없지..
통기타 사서 좋더나?
이제 닥치고 구워야겠지?
통기타는 나를 롯데리아로 데려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