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아침이 밝았다. 치악산(雉嶽山) 기슭, 눈 덮인 산야는 사뭇 고요하다. 만상이 얼어붙은 엄동설한의 날씨에 방안의 벼룻물도 얼어서 원단(元旦) 휘호(揮毫) 쓰기도 어렵게 되었다. 다행히 방 한 켠에 놓인 놋화로에 불씨가 살아있다. 차 한 잔 다릴 수는 있으리라. 찻잎을 넣고 자리에 누우니 다완(茶椀) 속의 찻물 끓는 소리가 오늘 따라 쓸쓸하게 울린다. 방안 가득 차향이 퍼진다. 새해 아침에 거듭 다짐해 본다. 의롭게 살리라고. 그러나 속세를 떠난 은둔자의 이 가상한 뜻을 그 누가 알아주리오...
이 시는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 1330-?)의 시다. 원천석은 여말선초를 산 학자로 혼탁한 당시 세상을 벗어나서 치악산 기슭에서 평생을 은둔자로 사신 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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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정도전은 시대의 탁류 속으로 뛰어들었고, 원천석은 치악산에 남아 고고(孤高)한 일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