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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yrunner May 02. 2022

1.3 의리 같은 소리 하네. 쓰레기통 직행 이력서

[첫 만남 입사하기]

의리 같은 소리 하네. 쓰레기통 직행 이력서



처음 회사에 취업하기 위해서 이력서를 써야만 한다. 어떤 회사이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내지 않고 취업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잡코리아(jobkorea.co.kr), 사람인(saramin.co.kr)등에 이력서를 저장해 놓고 사용했다.


회사를 구할 때 취업사이트에서 회사 이름을 먼저 보고 그리고 회사의 상태, 규모를 본다. 조직원이 몇 명이나 되는지? 회사의 업력은 몇 년이나 되는지? 맡게 될 일이 무엇인지? 복리후생은 어떤지? 그러다가 “아 이 회사 왠지 괜찮을 것 같다”라는 느낌이 오면 이력서를 넣는다. 그리고 기다린다. 마치 당첨될 복권을 구입하고 기다리는 것처럼...


복권을 맞추기 전에는 기다리는 동안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이 복권이 맞으면 ‘먼저 집을 사고, 차를 사고, 여행을 가고, 부모님 얼마 용돈 드리고, 형제자매 얼마 용돈 , 조금은 기부도 하고, 나머지는 저금을 해야겠다.’ 등등.


회사도 입사 후 첫 월급은 부모님 내복 사드리고 여름휴가는 어디로 가고 친구들한테 한턱 내고, 근사한 정장 한 벌 맞추고 등등.

하지만 복권에 당첨된 적이 없듯이, 괜찮다고 생각했던 회사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는다. 그렇게 또다시 괜찮아 보이는 회사를 검색하고 또 이력서를 낸다. 그리고 자기소개서에는 직원 모집 요강에 나와 있는 필요로 하는 인력 또는 홈페이지의 인재상 등을 참조하여 자기소개서를 수정한다. 마지막 줄에는 꼭 “○○회사에 꼭 필요한 창의적 인재가 되겠습니다.”, “○○회사가 찾고 있는 21세기형 인재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회사에서 추구하는 전문성과 인성을 겸비한 준비된 인재입니다.” 등등 나는 자기소개서를 적을 때 그 회사의 이름을 꼭 넣어서 보냈었다. 사람도 그렇듯, 회사도 자기 이름을 자꾸 불러 주면 친근감을 느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취업준비생 2년 차 추석. (지금은 취업준비생. 줄여서 취준생이라고 하지만 예전엔 그냥 백수, 여자는 백조라 불렀다.)


가족, 친척들이 모여, 으레 안부인사처럼 어머니께 “아들은 취업했어?”

“응, 아직 준비하고 있어, 곧 하겠지 뭐...”

내게 직접 묻지 않고, 부엌에서 일하시는 어머니께 건네는 얘기가 우연히 듣게 되었지만, 가슴에는 비수처럼 꽂힌다.

즐거워야 할 명절이 오히려 괴롭기만 하다. 취업을 준비하는 시기만큼 나 자신이 초라하고, 부족해 보일 때 가 없었다. 하지만, 너무 괴로워하지는 말자. 그냥 오랜만에 만나서 건네는 인사말일 뿐이다. 친척분들도 당신에게 그렇게 많이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취업을 해도 명절 때 모이면 친척분들은 계속 안부를 물어 온다.

“들어간 회사는 잘 다녀?”, “회사는 괜찮아?”, “애인은 만들었나?”, “결혼은 언제 한데?”, “결혼할 사람은 어떻데...?”, 그리고 결혼을 하고 나면, “아기는 언제 낳는데?”, 애 낳고 나면 “둘째는 언제 낳는데?”, 애가 크면 “조카 ○○ 공부는 잘해” 등등...

이 모든 것들이 언젠가는 해결될 일들인데, 단지 조금 늦어진다는 것, 그리고 바로 내일이 될지 내년이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아마 그해 추석 이후 나는 생각이 좀 바뀌었다. 괜찮아 보이는 회사에만 골라 이력서를 보내는 것은 나의 편식이 아닐까? 내가 그리 잘 난 것도 아닌데, 일단 취업, 회사 경험을 해보자. 그동안 학생으로만 살아왔는데, 사회란 곳이 어떤지 경험을 해보자. 물론 몇몇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회사는 뭔가 다르겠지? 그래서 나는 취업사이트에 직업별에서 IT, 웹마스터, 프로그램 분야에 올라온 모집공고에 전부 이력서를 넣었다. 한마디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저장된 이력서를 쭉쭉 넣었다. 그리고 자기소개서도 그 회사의 이름 따위는 넣지 않았다. 나 자신을 장단점과 할 수 있는 일을 간단히 적어서 보냈다. 매일 아침 9시면 새로 올라온 공고에 이력서를 그냥 보냈다. 회사의 규모, 복리후생 같은 것은 보지 않았고, 회사의 이름조차도 보지 않았다. 전에는 취업하기 위해, 이력서를 골라 보내느라 취업사이트를 하루 종일 뒤지면서 하루를 보냈는데, 아침에 이력서를 넣고 나니 오히려 마음에도,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겼다. 이렇게 이력서를 마구 넣으면 회사끼리 서로서로 알고 있어서, ‘이상한 놈이 스팸메일 보내듯 이 회사 저회사 이력서를 보낸다고 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읽어 보지도 않고 내 이름만 보고 ‘쓰레기통으로 직행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직접 우편으로 보낸다면 우표값이 들겠지만, 취업사이트를 통한 이력서 제출이나 이메일, 홈페이지를 통해 제출하는 데 비용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보낸 파일을 읽어 보고 쓰레기통에 버리든, 안 읽어 보고 쓰레기통에 보내든 나로서는 연락이 오지 않으니, 알 길이 없고, 괴로워할 일도 아니다. 그리고 각 회사의 인사 담당자들이 서로서로 연락하고 지낼 만큼 친하지도 않고, 업무가 한가하지도 않다.

어제와 달라진 것은 없지만 마음가 바꾸니 편했다. 그 전에는 좋아 보이는 회사에 골라 이력서를 보내면서, ‘제발 좋아 보이는 이 회사가 나를 뽑아 줬으면 좋겠다’라는 기도하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마구 이력서를 넣고부터는 연락 오면, 그때 가서 회사가 어떤 곳인지를 찾아보았다. 그 회사의 규모가 어떤지, 위치가 어딘지, 회사 이름이 뭔지...

이력서를 넣으면서도 한 가지 원칙은 내가 일하고자 하는 분야는 IT분야였고, 그 분야면 ‘회사 규모는 크게 상관없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연락 오는 곳은 가끔 정보처리 학원도 많이 있었다. 회사 이름도 안 보고 이력서를 넣다 보니, 학원에서 구인처럼 해놓고, 수강생 모집하는 곳에도 이력서를 넣은 것이다. 어쨌든 회사에서 연락이 오면 그때 찾아보고, 마음에 안 들면 내가 거부를 하면 된다. 한마디로 내가 선택하는 거고 내 배짱이다. 연락이 와도 회사가 내 맘에 들면 면접 보러 가고, 안 들면 안 가면 되는 것이다. 면접 보러 안 왔다고 욕해도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이다. 그들이 툴툴거리거나 욕하는 소리는 내가 상상한 것일 뿐 실제로 내 귓가에 들을 일이 없다.

그래도 면접보러 오라고 하는 곳 있으면 무조건 봤다. ‘그냥 테스트한다고 생각하지 뭐~’

이런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다. 그렇게 마음을 바꾸고 나니, 예전처럼 면접 보는 것이 진땀 나고, 질문에 답변을 못하면 어쩌나, 이것 때문에 떨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하게 내가 회사를 면접 본다는 기분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취업준비가 길어지면, 어느 순간 이력서를 내는 것도 포기하게 된다. 그러면서 '나를 정말 필요로 하는 곳이 없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자. 가볍게 생각하고 읽어보지 않을지도 모르는 이력서, 쓰레기통 직행할 이력서라도 그냥 보내자. 회사 이름도 보지 말고, 어차피 취업이 안 될 회사라면 이름은 알아서 뭐하랴.


남녀 사이라면 이 여자, 저 여자 집적거린다. 여자라면 이 남자, 저 남자에게 쉽게 웃음 준다라고 하겠지만 취업에서는 다르다.

옛말에 이런 말도 있지 않는가?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 취업을 준비하는 것은 못 먹는감 찔러나 봐야 한다.

면접까지 다 보고, 회사에 첫 출근하고서도 영 마음에 안 들면 안 나가면 된다.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왠지 의리를 지켜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의리 같은 소리 하네, 사회는 그렇게 정이 많고, 의리 넘치지 않는다. 우리가 만나볼 사회는 그렇게 정의가 넘치는 사회가 아니다. 왠지 이 회사는 이런 화려한 스펙이 필요해 보이고, 나 같은 사람은 안 뽑을 것 같다고 지레짐작해서 포기하지 말자. 어차피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이력서는 보내지고, 추가로 비용이 발생하지도 않는다. 보자마자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더라도 포기하지 말자. 일단 보내고 보자.

아무 생각 없이 쭈욱 쭈욱 이력서를 넣다가 연락이 왔다. 핸드폰에 모르는 번호가 찍혀서 스팸 전화 인가했다. ‘지난주에 이력서 넣은 OOO회사 란다’ 속으로 그런 회사에 넣었던가? 하긴 마구 넣었으니 아무튼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한다.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그러고서는 어떤 회사인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강남에 있는 회사인데, 지하철 역하고는 좀 거리가 있다. 면접을 보러 찾아 가보니, 가정집이었다.(90년대말만 해도 SOHO라고 해서 Small Office Home Office 이런 곳이 있었다.) 가정집을 개조해서 사무실로 꾸미고, 그곳에 사장으로 보이는 부부가 있고, 직원 2~3명이 보였다. 딱히 면접이라고 거창하게 할 것도 없이 거실 한 구석에서 어떤 능력, 지금 바로 출근해서 이런 것을 해 낼 수 있는지가 주요 관심사였다. 회사라고 하기에도 좀 그렇고, 다른 회사에서 발주받은 것을 처리하기에 급급해 보였다. '갑을병정' 중에 '병'이나 '정' 정도... 직원들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어 보였다. 그래서 그런 일들은 잘 모르고, 못한다고 했다. 면접을 나오면서 ‘아 이런 곳도 IT회사라 부르는구나 했다’ 그 후부터는 면접에 대한 부담감이 많이 줄었다. 회사와 나는 조금 대등한 관계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좋아 보이는 회사에만 이력서 넣어서 연락이 없어 자존감이 한참 낮아질 때, 이런 곳에 면접을 보고 나니, 자존감이 좀 회복되기도 했다.

어쨌든 무조건 넣다 보면 어느 하나 얻어걸리는 것이 있다. 포기하지 말고, 쭈욱 쭈욱 넣어라.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면 어떠하랴~! 어차피 나에게 연락 오지 않으니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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