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첫 출근해서 일을 시작했다. 새로운 연애가 시작된 것처럼 설렘이 가득하다. 여러 가지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면접을 보며 때로는 멘탈이 탈탈 털리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력서를 넣으며, 자기소개서를 보내며 이번이 몇 번째인지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이제 지난 어두운 과거는 모두 옛이야기가 되었다. 행복한 나날들만 가득할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사랑은 열정과 행복이 충만하다. 연애 초기 우리의 사랑에 추호도 의심이 가지 않았다.
어느 날 애인이 가끔 “오늘 나 어때?” 하고 물어 올 때가 있다. 이때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여기서 “오늘 나 어때?”라고 던지는 가벼운(?) 질문을 해석하면 이렇다.
‘오늘의 나는 어제 네가 만났던 나와 분명 다르다. 한마디로 신경 잔뜩 쓴 부분이 있다. 모든 관심을 나에게 쏟아야만 하는 너는! 분명히 그것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나에게 애썼다, 예쁘다 칭찬해주기를 바란다. 만일 못 찾는다면, 너는! 나에게 관심이 별로 없다는 뜻이다. 그건 우리 둘 사이에 대해서 좀 더 진진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할 것이다. 눈길 한번 만으로도 나의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너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해. 그러니 내가 원하는 정답을 바로 지금 말을 해달란 말이야.’
여기서 ‘너는!’에 느낌표를 한 것은 모든 책임이 나에게 달려 있음을 뜻한다.
나의 머릿속에서 그녀가 과연 무엇을 원하는지 찾고 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생머리를 갑자기 뽀글뽀글 파마를 했다거나, 커트머리로 확 잘랐다던가 하는 급격한 변화는 한눈에 찾아낼 수 있겠지만, 앞머리를 부분 파마했다거나, 염색이 오래되어서 뿌리 염색만 다시 한 경우 나는 잘 알아차릴 수가 없다. (나는 눈썰미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그동안 바르지도 않던 매니큐어를 투명을 발라놓고, 손을 잡고도 손톱이 반짝 거리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지난주부터 다이어트를 해서 이번 주에 무려 3~4Kg(?)의 몸무게가 빠졌다고 주장하지만, 전혀 티가 나지 않는 상황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언가를 말해도 그녀가 원하는 정답이 아니고, 이미 답할 시간도 초과해 버렸다. 정답을 이야기하는 만큼이나, 얼마나 빨리 대답하느냐도 중요하다.
정답은 앞머리를 다듬었다. 이 앞머리를 다듬은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지만 그녀에게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여성)은 바로, 보자마자, 말하지 않아도, 먼저 알아봐 주고 물어봐주고 칭찬을 해줬는데... 그녀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만큼 관심이 없어서라고 서운해한다.
왜 매번 무언가를 확인하고 싶은지 모르겠지만,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오빠, 내 핸드폰 번호가 010-1234-567 , 맨 끝자리가 뭐게?"
'허걱,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기억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외운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예전에는 친한 친구 녀석들 전화번호 10명 정도는 너끈히 외웠던 것 같은데, 스마트폰 저장 기능을 이용하면서 여자 친구는 물론 부모님의 핸드폰 번호도 외우지 못한다.' 8자리를 외우는 건 고사하고, 맨 끝 한자리도 알지 못한다. 순간 머리가 띵하다.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란 게 이런 거구나...
회사에도 비슷한 경우들이 생긴다. 바로 “이거 어때?”의 함정이다. 상사가 어떤 아이디어나 기획, 일들을 가져와서 “이거 어때?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는다. 이때의 일들은 단순히 상사의 생각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고, 더 윗 상사의 생각을 받아 왔을 수도 있다.
이때 “이거 어때?”를 해석하면 이렇다. ‘이일을 자네가 해보는 게 어떤가? 회사에서 뭔가 새로운 일을 해보려고 하는데, 자네가 그 일을 좀 맡아주었으면 하네.'
물론 그 일이 잘 진행될 일인지 아닌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 일은 잘 된다면 그 성과는 상사와 내가 나눠 갖는 것이다. 때로는 상사가 더 많이 가져갈 수도 있다.(왜냐하면 일보다 더 중요한 아이디어를 냈으니까)
만일, 잘 못 된다면 그건 일을 잘못 추진한 나의 잘못이 될 것이다. 상사 입장에서 이렇게 좋은 아이디어의 일을 잘못 추진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러니 상사는 내게 빨리 정해진 정답을 말해라 재촉한다. '너무너무 좋은 아이디어여서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이 팍팍 들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보고 싶다고...'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이 일은 내가 맡게 될 가능성이 높다.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하다. 회사에 들어와서 처음과는 다르게 자꾸 일들이 하나둘씩 늘어간다는 것을 느낀다. 처음에는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잘하게 되고, 그 일을 잘하니 또 일을 자꾸 나에게 시킨다. 거기에 이것도 조금, 저것도 조금 하면서 계속 일이 덧붙어서 점점 늘어난다. 나중에는 잘하는 일뿐 아니라, 내 분야가 아닌 일, 잘 못하는 일도 ‘사람이 없다거나, 나중에 더 높은 직급이 되려면 필요하다. 이 일이 더 중요하다’라고 하면서 나에게 하라고 한다.
상사가 “이거 어때?”라고 물어 왔을 때, 노골적으로 별로다, 아닌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면 내가 그 일을 맡게 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앞으로도 중요한 일을 이야기하지 말아야 할 사람. 또는 내편이 아닌 다른 부류의 사람으로 분류된다.
시간을 끌다가 제때 대답하지 않으면, 당신은 연애할 때와 마찬가지로 관심이 부족한 사람이 된다. 회사에 관심이 적다는 것은 중요한 위치를 맡기지 못하거나, 오랫동안 같이 일 하지는 못할 사람이란 생각을 갖게 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아주 좋다. 훌륭하다. 굉장하다고 한다면, 당신에게 그 일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안 그래도 점점 일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더 많은 일들을 맡게 된다. 참 어려운 일이다.
연애에서도 회사에서도 힘든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그렇다고 정해진 답이 있지도 않다. 다만 최악의 경우만 피하자. 나는 최악이 다음 같은 상황이다.
연애의 경우
“오늘 나 어때?”
“음, 글쎄 모르겠는데~”
“왜 이리 관심이 없냐? 나 앞머리 잘랐잖아~”
“어쩐지, 왜 잘랐어, 안 자른 게 훨씬 이쁜데~”
“......”
그녀가 삐쳐서 말도 하지 않는다. 이런 최악의 상황이다. 어쩌겠는가! 자른 머리를 다시 붙일 수도 없고... 이래서 선의의 거짓말이란 생겼나보다. 너무 솔직해도 탈이다.
회사에서도 최악의 경우만 피하자.
첫 번째 유형
“이거 어때?”
“이건 우리 회사와는 전혀 맞지 않고, 이래서 이런 문제가, 저래서 저런 문제가 발생합니다.”
“......”
상사가 속으로 '일하기 싫어서 저러나? 뭐가 그리 부정적이야! 너처럼 하면 될 일도 안되겠다.'하고 생각한다. 내가 그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되지 않는 일을 물어 붙히려해서 이런 저런 문제를 재기했지만, 결과가 좋지는 않았다. 한마디로 찍혔다.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자신의 아이디어가 획기적이고, 반드시 성공할 거라 생각한다. 애플이 MAC(컴퓨터)에서 아이팟(MP3 플레이어)을 출시했을 때처럼 전혀 다른 분야에서도 충분히 성공하리라 생각한다.
두 번째 유형
“이거 어때?”
“괜찮을 것 같습니다. ”
“그래, 그럼 자네가 이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해보게”
그다음 주부터 업무 폭탄이 떨어졌다. 일을 추진해서 성과가 난다면 좋겠지만, 역시 안 되는 일은 안 되는 것이다. 괜한 일에 나의 노동력만 빼앗기게 된다.
그냥 괜찮을 것 같다고 얘기 했다가 나는 개썰매를 도입하는 것을 검토한 적이 있다. 겨울철 비수기동안 어떻게 고객을 유치할 것인가에 대한 아이디어로 상사분께서 아이디어를 냈는데, 결과는 어땠을까? 썰매 개의 숙식을 생각하지 못했고, 개썰매 운영하는 동안 개의 배변 문제 등 고려사항이 너무 많았다. 결국 개썰매는 도입할 수가 없었다.
이 경우
“뭐가 새로운 일을 해보려고 하는데, 이거 어때?”
“아이디어가 좋은 데, 실현 가능한지 다른 사례를 좀 찾아보고 추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또는, “지금 하는 일과 우선순위를 정해서 추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정도면 좋겠다.
본인의 생각에는 전혀 아닌 일을 그 분위기에 맞춰 마냥 좋다고 하면 성과도 없는 일을 추진하느라 당신을 소진시킬 수 있다. 또한, ‘별로인 것 같다, 안 좋다’라고 하면 일을 회피한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줄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