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흰 것과 하얗 것에 대한 부작용(2024.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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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떡 ---22
안개 ---26
흰 도시 ---29
어둠 속에서 어떤 사물들은 ---34
빛이 있는 쪽 ---35
젓 ---37
그녀 ---38
초 ---39
성애 ---47
서리 ---48
날개 ---49
주먹 ---50
눈 ---51
눈송이들 ---54
만년설 ---56
파도 ---58
진눈깨비 ---59
흰 개 ---60
눈보라 ---63
재 ---66
소금 ---67
달 ---69
레이스 커튼 ---71
입김 --- 72
흰 새들 ---73
손수건 ---76
은하수 ---77
하얗게 웃는다 ---80
백목련 ---81
당의정 ---82
각설탕 ---83
불빛들 ---85
수천 개의 은빛 점 ---86
반짝임 ---87
흰 돌 ---88
흰 뼈 ---89
모레 ---90
백발 ---91
구름 ---94
백열전구 ---95
백야 ---96
빛의 섬 ---97
얇은 종이의 하얀 뒷면 ---98
흩날린다 ---100
고요에게 --- 101
경계 ---104
갈대숲 ---106
흰나비 ---108
넋 ---109
쌀과 밥 ---111
---- ---117
당신의 눈 ---118
수의 ---120
언니 ---121
백지 윙에 쓰는 몇 마디 말처럼 ---123
소복 ---124
연기 ---125
침묵 ---126
아랫니 ---127
작별 ---128
모든 흰 ---129
P35 빛이 있는 쪽
이 도시의 유태인 게토에서 여섯 살에 죽은 친형의 혼과 함께 평생을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남자의 실화를 읽었다. 분명히 비현실적인 이야기인데, 그렇게 일축하기 어려운 진지한 어조로 씌어진 글이었다. 형상도 감촉도 없이 한 아이의 목소리가 시시로 그에게 찾아왔다.
P39 초
흘러내리는 촛농은 희고 뜨겁다. 흰 심지의 불꽃에 자신의 몸을 서서히 밀어 넣으며 초들이 낮아진다. 서서히 사라진다.
이제 당신에게 내가 흰 것을 줄게.
더럽혀지더라도 흰 것을,
오직 흰 것들을 건넬게.
더이상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게.
이 삶을 당신에게 건네어도 괜찮을지.
왕뚜껑 컵라면의 뚜껑이 흰 색이었다.
용기는 하얗색, 분말수프의 바탕색도 흰색이다.
전자레인지는 하얗 색, 콘센트도 하얗 색이다.
라면용 종이컵도 흰 색이고, 라면 끓이는 기기는 하얗 색이다.
나무젓가락 포장에도 흰 색이 있고, 일회용 숟가락도 흰 색이 있다.
벽은 하얗 색이다.
진열대도 하얗 색이다.
아이스크림 냉장고도 하얗 색이다.
그러고 보니 바닥에도 하얗 색이 들어간 체크무늬 바닥이다.
연기가 흰색이다.
나뭇가지에 쌓인 눈도 흰 색이다.
도서관을 올라가는 계단도 거기에 붙어 있는 안내 글씨는 하얗 색이다.
P59 진눈깨비
삶은 누구에게도 특별히 호의적이지 않다, 그 사실을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이 마을, 눈썹을, 뺨을 물큰하게 적시는 진눈깨비.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걸을 때, 안간힘을 다해 움켜쥐어온 모든 게 기어이 사라지리란 걸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비도 아니고 눈도 아닌 것. 얼음도 아니고 물도 아닌 것. 눈을 감아도 떠도, 걸음을 멈춰도 더 빨리해도 눈썹을 적시는, 물큰하게 이마를 적시는 진눈깨비.
물큰하다
갑자기 심하게 풍기는 느낌이 있다.
브런치의 맞춤법 검사에도 "물컹하게"라고 고치라고 나온다.
문득 평상시 잘 접해 보지 못한 이런 어휘는 영어로는 어떻게 번역할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과연 이런 표현들이 다른 나라에도 하나의 단어로 다 존재할까?
얇고, 짧고 에세이 같은 이 책은 나에게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P106 갈대숲
갈대숲으로 둘러싸인 작은 늪에 야생오리 한 쌍이 살고 있다. 살얼음의 표면과 아직 얼지 않은 회청색 수면이 만나는 늪 가운데서 나란히 목을 수그려 물을 마시고 있다.
그것들에게서 돌아서기 전에 그녀는 묻는다.
더 나아가고 싶은가.
그럴 가치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 라고 떨면서 스스로에게 답했던 때가 있었다.
이제 어떤 대답도 유보한 채 그녀는 걷는다. 살풍경함과 아름다움 사이에서 절반쯤 얼어 있는 그 늪가를 벗어난다.
살풍경하다 (殺風景하다)
1 풍경이 보잘것없이 메마르고 스산하다.
2 매몰차고 흥취가 없다.
3 광경이 살기를 띠고 있다.
P20 배내옷
내 어머니가 낳은 첫 아기는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죽었다고 했다. 달떡처럼 얼굴이 흰 여자아이였다고 했다. 여덟 달 만의 조산이라 몸이 아주 작았지만 눈코입이 또렷하고 예뻤다고 했다. 까만 눈을 뜨고 어머니의 얼굴 쪽을 바라보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당시 어머니는 시골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한 아버지와 함께 외딴 사택에 살았다. 산달이 많이 남아 준비가 전혀 없었는데 오전에 갑자기 양수가 터졌다. 아무도 주변에 없었다. 마을에 한 대뿐인 전화기는 이십 분 거리의 정류장 앞 점방에 있었다. 아버지가 퇴근하려면 아직 여섯 시간도 더 남았다.
막 서리가 내린 초겨울이었다. 스무세 살의 엄마는 엉금엉금 부엌으로 기어가 어디선가 들은 대로 물을 끓이고 가위를 소독했다. 반짇고리 상자를 뒤져보니 작은 배내옷 하나를 만들 만한 흰 천이 있었다. 산통을 참으며, 무서워서 눈물이 떨어지는 대로 바느질을 했다. 배내옷을 다 만들고, 강보로 쓸 홑이불을 꺼내놓고, 점점 격렬하고 빠르게 되돌아오는 통증을 견뎠다.
마침내 혼자 아기를 낳았다. 혼자 탯줄을 잘랐다. 피 묻은 조그만 모에다 방금 만든 배내옷을 입혔다. 죽지 마라 제발, 가느다란 소리로 우는 손바닥 만한 아기를 안으며 되풀이해 중얼거렸다. 처음엔 꼭 감겨 있던 아기의 눈꺼풀이, 한 시간이 흐르자 거짓말처럼 방긋 열렸다. 그 까만 눈에 눈을 맞추며 다시 중얼거렸다. 제발 죽지 마. 한 시간쯤 더 흘러 아기는 죽었다. 죽은 아기를 가슴에 품고 모로 누워 그 몸이 점점 싸늘해지는 걸 견뎠다. 더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배내옷 이 단원이 이 소설의 핵심 단원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 단원을 읽으며, 과연 소설인가? 한강작가 본인의 이야기 인가? 분명 책 표지에는 소설이라고 적혀 있는데...
그러면서 또 한 편으로는 노벨문학작가 헤밍웨이가 떠올랐다.
그가 썼다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
For sale :
Baby shoes. Never worn.
판매중 : 아기 신발, 사용한 적 없음
노벨문학상 수상한 작가의 특징인가?
짧은 글 속에서도 무언가 생각하게 하는...
그리고 계속 무언가가 떠오르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리속에 맴도는 질문들...
왜일까?
헤밍웨이의 가장 짧은 소설을 읽고 나면,
과연 그 아이는 어떻게 된 것일까? 임신한지 몇 주 안되어서 행복한 출산을 상상하면서 구입한 아기 신발을 갑작스러운 유산으로 부부가 다시 판매 하는 것일까?
아니면 뱃속에서 10달을 키우다가 출산을 하면서 죽었을까?
신발을 파는 것은 아빠일까? 엄마일까? 아이만 잘 못 된 것인가? 산모와 아이가 모두 잘 못되었는데, 홀로 남겨진 아빠가 파는 것일까?
한강의 "흰" 이란 소설도 그녀의 감성속에 흰 색과 하얗 색을 따로 보게 만드는 것 같다.
삶과 죽음의 경계속에 있는 흰 색, 아무 느낌이 없는 하얗 색
입김은 흰 색이다. 들숨과 날숨으로 생기는 이 색은 삶과 죽음이 있다.
연기도 흰 색이다. 나무가 죽음으로써 생기는 흰 색이다.
눈도 흰 색이다. 뺨에 닿는 순간 낯선 차가움을 선물하며 살아지는 흰색.
배냇옷도 흰 색이다. 살아있는 아이를 감싸는 흰 색.
컵라면의 뚜껑도 흰색이다.
전자렌지는 하얗 색이다. 벽도 하얗 색이다. 그것들에는 삶에 죽음이 같이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의 소설을 읽고 삶 또는 죽음과 관련 된 것들은 흰 색
그냥 아무 관련 없는 것들은 하얗 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