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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썸데이 May 19. 2022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과연 해피엔딩일까?

나의 해방일지

아직 드라마를 보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글을 읽기 앞서 정주행을 추천드립니다. (넷플릭스, 티빙에서 시청 가능) 박해영 작가님의 극본 최고, 김석윤 감독님의 연출도 최고, 배우님들의 연기력도 최고. 캐스팅 담당자 분도 최고. 어떻게 이렇게 완벽하게 캐스팅을 하셨을까? 그리고 사심 듬뿍 담아 사족 한마디 더, 구씨 역할의 손석구 배우님 제가 많이 좋아합니다. 당신의 건강과 평안과 행복과 앞으로의 커리어를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길 가다 마주치면 싸인 요청해도 될런지요? shy한 성격이신 것 같은데, 저도 진짜 shy 하거든요. 근데 용기 내 보려구요...제발...



  박해영 작가님의 이전 작품들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은데 다음 감상문에 써보겠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나누어 쓰기로 했다. 나의 해방일지 방영이 시작되기 직전 4월, 나의 우울은 깊어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메모장에 우울한 글들을 늘어놓았다. "사는 방법을 알지 못했던 나는, 사는 방법을 배우는 대신 내 모든 마음을 잃고 평생 텅 빈 마음을 외로워하며 살았다." 그리고 그런 메모를 끄적인 불과 며칠 뒤 염미정은 말했다.

 

할 일 줘요? 술 말고 할 일 줘요? 날 추앙해요. 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개새끼, 개새끼... 내가 만났던 놈들은 다 개새끼.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가득 채워지게.


출처 : 공식 사이트

"뭐야? 이 나 같은 사람은? (나보다 훨씬 예쁜)"

But... where is my gushy?



  뭐랄까, 나의 아저씨처럼 평범한 인간이 살아가는, 사는 게 아주 지겨운 인간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았지만, 또 오해영에서 보던 '아낌없이 주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있다. 그래서 더 좋다. 나는 나의 아저씨가 멜로적인 요소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훈이네 커플에게 미안하지만) 좋았다.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는 로맨스 처돌이이다. 멜로가 있어야 진정한 인생 드라마가 될 수 있다. 그것이 나의 해방일지가 아닐까 싶다.

  사실 처음에는 구씨와 미정이 인간대 인간으로 추앙만 하다가 서로를 서로의 문제로부터 해방시켜주고 각자 행복해지는 드라마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아니네. (이렇게 잘 어울리는 둘이, 서로에게 꼭 필요한 둘이 서로 추앙하다 눈이 안 맞을 리가 없지.) 인간 실존, 외로움, 자신을 옭아매는 문제로부터의 해방 그 중요한 주제들을 다루면서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인 사랑도 빼놓지 않았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최고다. 멜로가, 최고야.

  드라마가 시작됨과 동시에 나의 정신을 이 드라마에 빼앗겨버렸다. 나 스스로의 문제점에 파고들 틈도 없이 (나에게 무척이나 필요했던 것) 나는 구씨가 착한(좋은) 사람이길 바랐다. 구씨의 과거가 어두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도, 작가님의 의도였을까? 여전히 구씨를 응원하기 바빴다. 이 사람의 배경이 아니라 이 사람 자체를 응원하기 시작한 이상, 과거를 잊어줄 힘이 생기는 것일까? 아니면 실제로는 그러기 힘들겠지만 캐릭터에게는 내어줄 수 있는 모종의 여유일까?

  어두운 분위기가 스토리 기반에 깔려 있어 여기저기서 새드 엔딩을 예측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뭐랄까, 작가님의 전작들로 미루어 보았을 때 따듯한 엔딩이 아니었던 적이 없기 때문에 작가님을 향한 무한한 신뢰가 형성되어 있다. 특히 나의 아저씨의 엔딩은 최고였으니.

  내가 해피 엔딩을 강력하게 예측하는 데에는 정신승리적인 이유 또한 있다. 사실은 요즘 이 드라마 때문에 많이 슬펐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현실에서의 내 문제들로 슬픈 것보다는 훨씬 덜 우울하다.) 또 오해영에서 박도경이 교통사고로 위중한 상황에 놓였을 때 주변인들이 당연하게 깨어날 것이라는 듯 아무렇지 않게 결혼식 날짜를 잡았던 것처럼, 점점 어둡고 슬퍼지는 드라마 분위기에 언제 어떤 슬픔이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더더욱 해피 엔딩을 정해놓고 기다린다. 그렇게 믿고 싶으니까...



구씨의 눈물도 강가의 윤슬도 아름다웠던 "추앙한다" 고백 장면. 이대로 행복하면 좋겠거늘, 어찌 풀리려나.

  그런데 구씨 당신, 조금 회피형이 아니신지.

  좋을 때는 '추앙한다', '했잖아, 낮에' '나 추앙했다?' 잘은 몰라도 말로써 행동으로써 추앙을 표현하는 그이다. 하지만 미정이를 밀어낼 때마다 추앙이 뭔지 모르겠다는 말을 꼭 한다. '다이아몬드가 더 쉬워. 추앙이 뭐냐? 나 몰라.' '평범은 같은 욕망을 가질 때, 그럴 때 평범하다고 하는 거야. 추앙, 해방 같은 거 말고. 남들 다 갖는 욕망' 그는 미정이 바라는 추앙이 뭔지 끝끝내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미정을 추앙했고 (배려, 응원, 위로 정도? 나중에는 사랑이었던 것 같다), 미정은 그의 추앙 비슷한 것들 때문인지 아니면 미정이 본인이 그를 추앙해서 때문인지 채워질 수 있었다.

  구씨가 미정을 떠날 때 말은 쏘아붙여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 보였다. 미정은 담담하게 가끔 전화하겠다 말했지만 그녀는 그가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기를 들었고 전화번호가 바뀌었다는 안내 음성을 듣고 펑펑 운다. 미정이도 완벽하게 본인의 감정에 솔직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아니면 생각했던 것보다 구씨의 빈자리가 컸거나. 처음 추앙을 결심할 때에는 잘 돼서 떠나가면 기쁘게 보내줄 거라 말했지만 (애초에 잘 돼서 떠나는 것이 아니기도 하고) 추앙이 사랑으로 번진 이상 마음처럼 떠나보내는 게 쉽게 되지 않을 것 같다.


나를 떠난 모든 남자들이 불행하길 바랐어. 내가 하찮은 인간인걸 확인한 인간들은 지구 상에서 다 사라져 버려야 하는 것처럼 죽어 없어지길 바랐어. 당신이 감기 한번 걸리지 않길 바랄 거야. 숙취로 고생하는 날이 하루도 없길 바랄 거야.


  구씨가 떠난 후에도 본인의 방식대로 구씨를 추앙하는 미정. 구씨는 추앙이 뭔지 여전히 모를 테니 멀리서 추앙은 못할 테고 그저 미정을 그리워하겠지. 아무튼 드라마를 관통하는 주제가 '구씨랑 미정이랑 한마을에 살았더래요. 둘이는 서로서로 사랑을 했더래요'가 아니라 '해방일지' 이기 때문에 남은 4회의 관전 포인트는 각자 어떻게 해방되느냐에 있을 것이다. 구씨는 본인의 과거로부터 해방 (본인이 갱생 불가하다 생각하는 자조, 그리고 전 여자 친구와 전 여자 친구의 오빠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죄책감), 미정은 본인의 사랑스러움과 능력에 확신을 갖게 되어 낮은 자존감으로부터의 해방(본인을 개무시하는 팀장이 있는 회사로부터의 탈출 혹은 사회적 인정이 필요하다)이 필요할 것 같다. 서로로부터 멀어지게 된 상황이 상황인지라 구씨와 미정은 서로에게 해방의 시발점은 되어주었으나 끝맺음은 해줄 수 없게 되었다. 스스로의 문제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킨 후, 그 이후에는, '구씨와 미정이는 한마을에 살았더래요. 둘이는 서로서로 사랑을 했더래요.’ 하면 좋겠다. 이 드라마를 보며 클리셰의 ㅋ도 찾아볼 수 없었는데, 마지막 화에는, 클리셰 범벅 산포마을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가 보고 싶다...(로맨스 처돌이의 개인적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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