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16화 최종 리뷰 (기정, 창희 이야기 스포 有 )
가독성 때문에 결국 글을 나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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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부터 읽어주세요.
태훈과의 연애가 결혼으로 나아가지 못해 답답한 기정. 술집에서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말실수를 (또) 해버리는데…
"걔 스무 살 되면 결혼하자고 했는데 걔 스무 살 되면 난 50인데, 옘병."
"우리 40 금방 오지 않았니? 50도 금방 오지 않을까."
아, 50에도 무슨 감정이라는 게 있을까. 그 나이 되면 그냥 동물 아닐까 싶다. 살아있으니까 그냥 사는. 우물우물 여물 먹듯이 먹고 그러는.
50인 여자가 말해줄게. 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지 않는데 서른이면 멋질 줄 알았는데 꽝이었고, 마흔은 어떻게 살지? 50은 살아 뭐 하나. 죽어야지. 그랬는데 50? 똑같아.
50은 그렇게 갑자기 진짜로 와. 난 13살 때 잠깐 낮잠 자고 딱 눈 뜬 것 같아.
인생 진짜 호접지몽 그 자체...삶은 무엇이냐... 30년 가까이 살았지만 여전히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살아내야 한다. 나도 정신 차려보면 40, 50이 되어 있겠지. 아 어렵다 인생 정말...
혼자되고 나니까 예전에 결혼 안 하고 혼자 사는 친구들 안쓰럽게 봤던 거 미안해지더라고. 내가 건방졌구나 혼자 살아도 별 문제없고 충분히 행복한데.
임신 테스트기 구매하다 태훈이 딸에게 딱 걸린 기정
요즘 들어 태훈의 딸, 누나에게 치이는 느낌의 기정. 그 와중에 임신이 아니란 소식을 듣고 연신 "다행이다"를 내뱉는 태훈의 모습에 감정이 상한다.
집에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머리를 확 잘라버리는 기정. 기정이 이전에 '이번 겨울에 사랑을 하지 못하면 머리를 밀고 동물처럼 살아가겠다' 말했던 적이 있기에, 머리를 자르는 장면은 사랑을 버리겠다는 것처럼 비장해 보였다.
하지만 우리 기정이는, 태훈을 너무 사랑한다.
후회했어요. 해방 클럽에서 약한 남자라는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했던 거. 기정씨는 그때 그 말 듣고 불쌍해서 나한테 끌렸으니 어떤 상황에서도 날 못 떠나겠구나.
네. 못 떠나요. 안 떠나요. 불쌍해서 끌리면 안 돼요? 나 태훈씨 존경해요. 연민도 하고 사랑도 해요. 다 해요.
또 오해영에서 박도경과 예쁜 오해영과의 관계가 생각났던 장면.
근데 머리는 왜 잘랐어요?
태훈씨한테 힘이 되어주고 싶었는데 태훈씨를 힘들게 하는 여자만 하나 더 늘어난 거 아닌가... 사랑은 힘이 나는 일이어야 되는데 왜? 헤어지면 난 행복할까? 근데 헤어지는 생각을 하면요, 막 팔이 저려요.
대화를 통해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는 둘. 그나저나, 너무 구씨와 미정의 고통에 집중하다 보니 태훈이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기정과 대화하는 태훈의 모습이 너무나도 짠했다. 얼마나 인생의 무게가 무거웠길래 어린아이를 보면 그 아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을 걱정할까. 내가 기정이어도 연민하면서 그 인생을 잘 살아내는 모습을 존경할 것이다.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다행이다'라고 말한 것이라고 변명하는 태훈. (기정에게) 변명 통과요!
기정씨!
"이게 뭐예요?"
"맨날 계란빵만 드리기 뭐해서... 제 마음이에요!"
간장 종지에 물 담아 장미를 눕혀놓은 기정.
우리 사랑이 화병에 우아하게 꽂히는 목이 긴 장미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간장종지에 지쳐 누워있는 장미 송이가 당신 같고 나 같고... 계란빵 좋아한다는 말에 겨울이면 3일에 한 번씩 계란빵을 사 드미는 남자.
당신을 사랑합니다.
ㅜㅜㅜ 행복해라 기정이 태훈이!
마지막으로... 아픈 손가락이 될 뻔한 창희 이야기.
창희는 퇴사 후 편의점 사장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사업을 한번 말아먹은 전적이 있어 돈을 많이 잃은 상태이다. 가장 세속적이었던 창희가 가장 많은 돈을 잃고, 가장 많이 어두워졌다.
아는 형이 있었는데 그 형이 맨날 산을 봤어. 지구 상에 나 같은 인간이 77억 명 있다는데 77억이 어느 정도인지를 모르겠어서 인간 하나를 1원짜리 동전 하나로 치환해놓고 보니까 77억이면 1원짜리가 저 산만큼 쌓여 있는 거래. 참 아무것도 아닌 1원짜리가 참 요란하게도 산다 싶더라.
구씨가 인생 밑바닥일 때 했던 말을 가슴에 품고 사는 창희…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인 내가, 내 인생을 왜 이렇게 버겁게 살아갈까. 힘들어하는 모습.
편의점 사장이면 아무래도 야간에 본인이 직접 일하기도 하고..(우리 동네 편의점 사장님은 그러시더라) 그래서 그런지 구자경처럼 낮 시간에 커튼으로 빛을 가려버리는 창희.
오늘 대출금 다 갚았다는 창희.
"애썼다."
아버지도 더 이상 그런 이유로 창희를 나무라지 않는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많은 것이 변했고 무엇이 더 소중한지 알게 된 것 같다.
너 내가 망가지길 바라냐? 어떤 미친놈 개 수발들면서 살아있다고 느껴야 되고 필요한 인간이라 느껴야 되는데 내가 너무 멀쩡하니까 아주 지겨워 죽을 맛이지.
아니야!
나 이렇게 평범하게 살 거야.
그러니까 그냥 가.
살다가 힘들다 싶으면 그때 와. 그때도 내가 혼자면 받아줄게. 쉬었다가 또 떠나야겠다 싶으면 또 가. 지현아. 괜찮아. 나 너한테 앙금 없어.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끌려왔다고 화난 거 없으니까 너도 나 못 쫓아왔다고 미안해할 거 없어.
창희는 문득 현아와의 이별이 떠오른다.
형. 난 1원짜리가 아니고 그냥 저 산이었던 것 같아. 저 산으로 돌아갈 것 같아.
1원짜리처럼 가벼울 수 없고 산만큼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사람이라는 뜻일까. 아니면 1원은 돈, 즉 세속적인 삶을 의미하며 산은 자연, 즉 욕심을 다 내려놓은 삶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부분은 아직 내게 어렵다. 다만 눈이 벌겋게 충혈된 염창희의 모습이 너무 안쓰럽다. 염창희 너 진짜... 행복해라...ㅠㅠ
산포를 찾은 김에 친구들과 회포를 푸는 창희. 유튜브 클립을 굉장히 많이 보는데 아버지의 재혼에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나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튼 새엄마랑 삼 남매도 잘 지내고, 아버지 새 장가보내려고 가장 노력했던 사람이 창희였다는 점에서, 아버지에게 그렇게 배신감을 느끼지 않아 주면 좋겠다. 그나저나 퇴사하고 10년 모은 월급을 몇 달 만에 사업으로 날린 창희... 전국 2천 개 편의점에 기계 깔기로 하고 제작까지 마쳤고 낙찰 예정 1순위인데도 기계 테스트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걸 포기한 나란 놈은, 참... 멋져.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다.
내가 뭐든 다 입으로 털잖냐. 근데 이건 안 털고 싶다. 나란 인간의 묵직함. 나만이 기억하는 나만의 멋짐.
이걸 보면서 기계 테스트 다른 날짜로 옮겨서 다시 하면 안 됐나..? 이미 재고도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2순위 기업에게 낙찰된 거겠지? 그렇게나 냉정 한 건가, 사업의 세계는.
" '리턴 투 파라다이스'란 영화가 있어. 배낭여행하던 남자 셋 얘긴데, 같이 어울려 놀다가 며칠 뒤에 헤어져. 두 놈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기로 하고 한 명은 거기 남기로 했는데 몇 년 뒤에 어떤 변호사가 그 두 놈을 찾아와. 그때 거기서 셋이 마리화나를 했었는데 거기 남아있던 한 명이 그걸 갖고 있다가 경찰에 잡혔다고. 근데 갖고 있던 그 마리화나 양이 사형에 해당하는 양 이래. 그래서 너희들이 가서 같이 했다고 증언해주면 각자 3분의 1씩 나눠 갖게 되어서 사형은 면할 수 있다고. 대신 셋이 똑같이 3년을 그 나라 감방에서 살아야 한다고."
"(두환) 난 안가"
"그래도 사형은 면하게 해야 하지 않겠냐고 되게 양심적인 척했던 놈은 교도소 환경 보고 놀라서 도망가. 근데, 안 가겠다고 했던 놈은 그 실상을 보고 흔들려. 있어 줘야 되지 않나."
결국 양심적인 척했던 놈은 도망가고, 원래 교도소에 있던 놈은 사형을 면치 못하게 되고. 안 가겠다고 했던 놈만 괜히 같이 했다고 증언해서 감옥에 갇히게 돼. 근데 사형 집행되는 날 교도소 광장 사형대에서 걔가 달달달 떨고 있는데 괜히 증언해서 갇힌 놈이 그 좁은 창살 사이로 내다보면서 그래. '나 여기 있어! 내 눈 봐. 나 여기 있어!' 나 같아도 그 5분을 위해서 교도소에서 3년 썩는다 싶더라.
가랑비 같은 창희의 가치관이 엿보이던 장면.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않은 그 비밀은 바로, 현아 전남자친구의 임종을 지킨 것. 죽는걸 두려워했던 그 사람, 그 상황에서 현아, 환자의 엄마 그 누구도 전화를 받지 않고. 창희는 본인이 사업 실패를 감수하고 임종을 지키기로 한다.
형, 미안해. 괜히 불안하게 해서.
형, 나랑 둘이 있자. 내가 있어줄게. 나 이거 팔자 같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다 내가 보내드렸잖아.
형, 내가 세명 보내봐서 아는데 갈 때 엄청 편해진다. 얼굴들이 그래. 그러니까 형, 겁먹지 말고, 편하게 가. 가볍게.
리턴 투 파라다이스에서 아무 사이 아니었던 사람이 쓸쓸하게 사형되는 순간을 지켜주기 위해 3년을 감옥에서 썩은 사람처럼, 창희 역시 어쩌면 현아의 전 남자 친구, 자신과는 아무 사이도 아니었던 형의 임종이 외롭지 않게 지켜주기 위해 3년 간 사업 빚을 갚는 감옥으로 스스로를 내던졌다. 그럼에도 후회하며 무너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창희. 진짜 너무 멋있다. 그 3년 동안 (2년 인가..) 많이 어두워졌지만, 아직 한참 남았을 그의 인생이 행복하면 좋겠다.
날이 푹하다. 봄이 오나 봐.
오겠지. 봄도 오고 여름도 오고 겨울도 오고.
그렇게 인생은 흘러가겠지.
평생교육원에 수업 들으러 간 창희. 하지만 인파에 휩쓸려 다른 강의실에 들어가게 되고 마침 그 강의실에서 가르치는 것은 장례 지도사 교육이다.
강의실에서 나가려다 계속 듣기로 하는 창희. 이 드라마는 창희가 편의점을 계속하는지, 아니면 장례 지도사로 장래를 바꾸는지, 창고에 있는 군고구마 기계를 결국 팔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열린 결말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마음 한구석의 구씨 형을 두고 살아가는 창희를 보며 마지막 회에는 둘이 재회하는 장면이 그려질까 했는데,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도 계속 살다 보면 둘이 만날 날도 있겠지.
드라마를 보며 '언젠간 풀어주겠지?' 싶었던 장면들을 구태여 되짚어 설명해주지 않았다. 공백은 공백으로 두었다. 속속들이 알아야 속이 시원하겠지만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더 저 인물들의 인생을 잠깐 들여다본 느낌이 든다.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 것 같은 드라마 주인공들을 이제 떠나보내야겠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나 아직 못 보내겠다. 미련이 흘러넘친다.
8주간 몰입하여 빠짐없이 챙겨봤던 나의 해방일지. 작가와 배우의 팬이란 이유로 방영 전부터 기다렸는데 그 안을 들여다보니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충만했던 나의 해방일지. 나의 해방은 언제일지, 정확히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인지, 내가 해방되어도 되는지 조차 아득하지만 언젠가 정말 솔직한 마음으로 나를 들여다보고 이 드라마를 다시 보아도 참 좋겠다 싶다. 내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던 산포 마을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st 엔딩은 아니었지만, 보고 또 보며 기분 좋아질 드라마. 대본집 나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