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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 Apr 08. 2022

재난을 바라보는 일본의 시각과 허례허식의 민낯

영화 <신 고질라> 리뷰

 한국과 일본은 이웃나라이자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해있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국가간 특색이 꽤나 다릅니다. 그 중 대표적인 예시가 요괴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한국의 민담에서는 요괴에 관련된 이야기가 일본에 비해 현저히 적습니다. 등장한다한들 호랑이, 오랑캐, 탐관오리와 같은 비교적 인간적인 역할들을 대신하곤 하죠. 허나 일본의 경우는 수많은 요괴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일각에서는 이를 수많은 자연재해를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시선이라고 해석하곤 합니다.


 오늘 다룰 고질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고질라는 1950년대에 만들어진 괴수로 원자폭탄을 경험한 일본인들의 두려움을 상징하는 캐릭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질라는 2010년대로 접어들며 원전 사고에 관한 두려움을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영화 <신 고질라>의 특징은 고질라의 변천사, 할리우드 고질라와의 차이점, 일본의 허례허식 비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고질라의 변천사

 고질라는 상당히 독특한 캐릭터입니다. 평범한 인간이 재난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감정에 대한 캐릭터이기도 하면서, 인간이란 얼마나 빠르게 해이해지는가에 관해서 알려주는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고질라 시리즈의 첫 작품은 <고지라(1954)>인데요. 이 곳에서 나온 고질라는 수많은 수폭실험과 방사능 노출로 인해 만들어진 괴수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말에 다다라서도 겨우 고질라를 쓰러뜨렸지만 언제든지 이러한 존재가 나타날 수 있음을 경고하는 방식으로 마무리 짓게 됩니다. 이처럼 원작에서 고질라는 자연재해, 인간 객체가 컨트롤할 수 없는 범위의 존재로 묘사됩니다. 원자폭탄, 방사능에 의해 공포에 떨던 일본인들의 인식을 보여주는 상징적 존재였습니다.

쇼와 시기 고질라의 변천사

 허나 시간이 지나며, 전쟁과 재난의 공포는 사라져갔고 고질라는 그저 엔터테이너적 요소가 남은 평범한 특촬물로 변하며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고질라로 변화해갔습니다. 이후 헤이세이나 밀레니엄 고질라 시리즈가 진행되며 다시금 진지한 분위기의 고질라를 살려보려는 노력은 있었지만 그저 상업적 수단에 불과했던 노력이었고, 고질라 시리즈는 한물간 컨텐츠로 여겨져갔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2011년 일본에 또 하나의 재앙이 나타났습니다.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그간 일본인들이 잊고 있던 재난과 방사능에 관한 공포를 상기시켜주기 충분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일본의 대응에 충격을 받음과 동시에 재난으로 인한 공포에 시달렸고, 자연스레 고질라 시리즈는 일본에서 원작과 유사한 모습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우스꽝스럽고 엔터테이너적 요소만 가득했던 고질라에서 다시 한번 재난에 대한 공포 그 자체로 돌아온 것입니다.


2. 할리우드 고질라와의 차이점

 2010년대에는 미국과 일본에서 각각 고질라에 관한 영화들이 나왔습니다. 그 영화들은 바로 레전더리 픽쳐스의 <고질라(2014)>와 오늘 소개하는 영화 <신 고질라>인데요. 두 영화는 비슷한 시기에 나왔지만 고질라라는 크리쳐를 다루는 관점부터 차이가 심합니다.


 먼저 할리우드 고질라는 자연의 수호자, 균형의 수호자, 자연의 대변인과 같은 느낌으로 묘사되며, 뚜렷한 목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무토를 쓰러트리기 위해 나타난다. 기도라와 라돈을 쓰러트리기 위해 나타났다와 같이 해당 고질라에게는 제거 대상이 확실히 존재하고 작중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이를 유추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재난적 측면이라기보다는 IP적, 캐릭터적 측면에서 고질라를 바라본 것입니다. 우스꽝스럽던 후기 쇼와 고질라와는 색채가 다르지만, 관점이 헤이세이~밀레니엄 고질라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움직임도 비교적 빠르고 화려하며, 재난적 측면보다는 전투적 측면에 더욱 가깝습니다.


 반면에 <신 고질라>에 나오는 고질라는 재난과 혼돈의 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질라가 등장하게 된 이유도 알 수 없으며, 등장한 이후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지, 어떤 상황에서 움직임을 멈추거나 바다로 돌아가는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저 갑작스레 찾아와서 모든 것을 파괴하고 유유히 사라지는 지진이나 해일과 같은 존재에 더욱 가깝습니다. 또한 액션의 측면에서도 폭탄을 통한 공격을 받기 이전까지 고질라는 그저 걷거나 움직이기만 합니다. 생명체같지 않은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여주며 느리게 움직이는 것은 이 캐릭터가 엔터테이너적 요소를 위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닌, 공포와 위화감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임을 반증하는 바입니다.


3. 허례허식 비판

 이 영화는 괴수 영화로 보기 이전에 재난 영화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괴수 영화에서 으레 요구하는 시각적 요소는 극의 최후반부가 아니라면 나오지 않으며, 애초에 고질라가 활약하는 부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극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재난과 같은 긴급 상황이 닥쳤을 때 일본 특유의 허례허식 문화가 얼마나 피해를 악화시키는가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 일본의 전통적인 관료, 회의 문화의 폐단을 볼 수 있습니다. 눈앞의 위기가 사라지면 추후 대책은 서로에게 떠넘기며 시민들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긴급한 상황에서 회의를 위한 회의를 거듭하고 현장에서부터 수차례의 불필요한 과정을 거쳐 피해를 악화시키는 등 필요한 행위의 부재와 불필요한 행위의 연속을 통해 굉장히 답답한 상황을 많이 연출합니다. 이미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도록 부추기고, 기자회견을 위한 복장을 따로 준비하고,  위급 상황에서 본인의 평판을 먼저 걱정하는 등 위기 상황에서 문제 해결이 아닌 위신을 중시하는 점은 재난시에 관료제가 얼마나 독이 되는지를 설명합니다.


 영화 <신 고질라>는 이러한 문제의 해답을 젋고 도전정신, 반항정신이 있는 능력자들에게서 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상황을 파악하였을 때 수직적으로 올라가는 정보 전달 방식이 아니라 수평적 의사소통을 구사하여 빠른 해답을 구하고, 분위기나 평판이 아닌 사건 해결에 주목하는 모습이 긴급 상황에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영화 <신 고질라>는 간만에 나왔던 고질라 시리즈의 수작이었으며, 인간이 손쓸 수 없는 대상에 관한 두려움에 대해 다룬 좋은 영화였습니다. 엔터테이너적 요소가 다소 떨어지는 영화이지만, 이 영화가 추구하는 바가 그것과는 관련이 없기에 이 점만 주의하신다면 많은 분들이 재밌게 보실 영화라고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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