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클림트의 꽃이 있는 농장 정원
엄마도 한때는
주인공이었단다.
평일 어느 낮.
출근한 남편과 어린이집에 간 첫째 아이.
오롯이 둘째와 나만 남은 집.
바깥의 미세먼지는 안 좋지만
날씨는 좋아서 쨍한 햇빛이
거실에서 노는 둘째를 향해
따스하게 내리쬐고 있다.
잘 노는 것 같아서 잠시 부엌으로 갔고
해야 될 설거지를 급히 하고 있는데
갑자기 손을 흔들며 찡얼거린다.
한창 하던 설거지를 멈추기 아쉬워서
뒤를 돌아보며 아이에게 말을 걸었고
말을 걸어도 멈추지 않는 아이의 짜증으로
음성인식 기가지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기가지니의 목소리가 신기한지
짜증을 멈추고 집중하는 아이였고
다행히 설거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 더 연장되었다.
제대로 음성인식을 못한 기가지니에서
의도치 않게 최신 가요가 흘러나오게 되었다.
갑자기 듣게 된 아이유의 노래.
처음 듣는 노래에 너무나 깜짝 놀랐다.
나는 20대에 아이유 노래를 참 좋아해서
매번 신곡이 나오길 기다렸고
신곡이 나오면 그날부터 계속 반복해서 듣곤 했다.
노래를 더 듣고 싶어서 설거지를 끝내고
급하게 앨범의 전체 재생을 누른 다음
다시 짜증이 올라오려는 아이를 재빨리 안아주었다.
아이유 드라마 노래.
아이를 안고 있는 나에게
첫 소절부터 눈물 쏟게 만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떠오르는 명화가 있었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꽃들과
푸릇푸릇한 초록 잎과 풀들이
모여 있는 풍성한 정원
클림트 하면 보통
황금빛의 ‘키스’라는 작품이 가장 유명하지만
나는 그의 독특한 풍경화를 꽤 좋아한다.
원근법이나 입체적인 사실적 회화보단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특징이 강한 그림으로
다른 작품들에서도 볼 수 있듯이
비잔틴 미술의 모자이크 기법 영향을 받았다.
특히나 풍경화에서 정사각형 캔버스를 즐겨 그렸는데
그는 정사각형을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분위기이며
우주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정사각형 캔버스에 가득 찬 초록색 사이로
빨강, 파랑, 보라, 노랑, 하양 등
다채로운 색이 어울리니
더 평평한 느낌으로 추상적이면서 화려하다.
그중에서 우뚝 솟은 해바라기가 가장 눈에 띈다.
클림트는 인상주의의 영향도 받았는데
고흐의 해바라기는 정물화이자
타오르는듯한 열정을 표현했다면
미술비평가 루트비히 헤베지(Ludwig Hevesi)는
클림트의 해바라기를 ‘수수한 해바라기’라고 칭하며
요정처럼 서서 다른 꽃들과 함께하니
더욱 화려해진다고 표현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꽃이 있는 농장 정원을 비롯해
꽃이 있는 다른 그림들도 가져왔다.
특별한 날 나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꽃은
향긋한 향기와 아름다운 색깔로
언제나 기분 좋은 웃음을 짓게 한다.
그림에서 나타나는 꽃은
화가의 생각과 감정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는데
클림트의 활짝 피어있는 꽃들은
너무나 화려하고 예뻐서
집에 걸어 매일매일 보고 싶다.
아마 그는 여성의 이미지를 주로 그리다 보니
꽃마저 여성을 의미하며 더 매혹적인 것 같다.
클림트의 화려한 그림들을 다시 보니
예쁜 꽃밭 속에 둘러쌓인 기분도 들고
잠시 쉬고 있는 내 안의 그림 열정도
꿈틀대는 것 같다.
Strawberry moon이라는 노래도 처음 들었는데 요즘 가장 최근에 나온 ‘조각집’ 앨범에 푹 빠졌다.
20대를 마무리하는 그녀는 지금껏 미공개했던 노래를 앨범으로 발매했다. 수록곡으로 드라마, 정거장, 겨울잠, 너, 러브레터가 들어있고 하나하나 다 명곡이다.
개인적으로 가슴깊이 울림을 준 노래는 아이유 드라마 노래였다. 현재 엄마라는 인생을 살고 있는 내 심정을 드러내주는 것 같았다.
나도 한때는 그이의 손을 잡고
내가 온 세상 주인공이 된 듯
꽃송이의 꽃잎 하나하나까지
모두 날 위해 피어났지
첫 소절 가사를 듣자마자 아이를 갖기 전 자유로웠던 나로 잠시 돌아간 기분이었다. 온 세상의 주인공은 나였고 꽃잎 하나하나 나를 위해 피듯 주위의 모든 것들은 나를 중심으로 존재하는듯했다. 마치 클림트의 화려한 꽃들이 내가 가는 길에 나를 반기며 서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나름대로 아이를 낳고도 나를 보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틈틈이 글쓰기도 시작했고 특히나 남편 찬스를 받으며 친구들과 여행을 갔을 땐 육아와 내 삶의 밸런스를 잘 조절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후 나는 그저 조연일 뿐 온 세상은 아이를 위해 존재하고 내 존재도 아이를 위한 것뿐이었다.
사회생활을 안 하다 보니 며칠 동안 집 밖을 안 나간 적도 많고 온종일 집에서 아이와 함께 있으면서 육체도 정신도 모두 아이에게 집중되어 있다.
오늘은 뭘 먹여줄까
아이와 어떻게 놀아줄까
내가 하는 양육방식이 맞는 걸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육아를 할까
설거지를 하는 와중에 아이가 찾아서 달려가야 되는 긴박함은 내 일상의 연속이다. 하루 중 샤워할 때가 가장 혼자만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인데 가끔씩 저녁에 애들하고 더 놀아주고 싶어서 그 시간을 미루곤 한다. 남편은 아침 출근으로 일찍 자야 해서 먼저 씻고 가족들이 다 잠든 늦은 시간에 누가 깰까 봐 조심히 씻으러 가는 내 모습에 유난히 외롭고 지칠 때가 있다.
나는 백 퍼센트 아이에게 맞춰 살고 있다.
다시 누군가 사랑할 수 있을까
예쁘다는 말 들을 수 있을까
하루 단 하루만 기회가 온다면
죽을힘을 다해 빛나리
집에서만 지내며 육아에 지친 내 모습을 거울로 보면 정말 이게 나인지 빛나게 사회생활을 하며 꾸미기를 즐겼던 나와 대조되어 더 우울할 때가 있었다.
육아 잘 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해서 더 행복하다
더없는 사실이고 힘들 때 스스로를 다독이지만 이따금씩 찾아오는 한계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눈물로 나타나곤 한다.
하지만 해피엔딩의 기승전결이 완벽한 드라마처럼 나의 엄마라는 드라마는 힘들 때도 있지만 사랑스러운 아이들 덕분에 그 이상으로 기쁘고 행복한 일이 가득하다.
사실 아이들을 위한 조연으로서의 삶을 내가 선택했고 내 역할은 신성한 의미를 지니며 그 무엇보다 값진 삶이라고 생각한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힘듦은 그만큼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노력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노래에 대한 느낌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더니 친구가 조연도 주연도 각자의 삶에서는 주인공이라고 말해준 것처럼 내 인생에서만큼은 여전히 내가 주인공이다.
수수하거나 튀지 않는 작은 꽃들도 하나하나 각자의 인생에서 화려하게 주인공이 되어 피어나고 이들이 모여서 하나의 완벽한 작품이 완성된다.
조만간 놀러 오기로 한 친구들과, 애들 봐줄 테니 오래간만에 형부랑 데이트하라는 동생, 그리고 애들을 낳고 처음으로 간 데이트에서 넘치는 사랑을 보여준 남편까지.
사랑하는 친구들과 가족들 덕분에 혼자로는 부족했던 부분이 채워지며 행복함이 느껴진다.
아이유 드라마 노래는 20살에 이별 경험을 바탕으로 친구를 웃게 해주고 싶어서 만들었던 곡이라고 한다. 창작자의 의도와 다르게 작품은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게 달라지고 새로운 의미로 재해석되기도 한다. 나와 동갑이라 모든 노래가 다 내 이야기 같고 더 공감이 갔던 그녀의 노래라서 이번 앨범을 들으며 나도 같이 20대의 마무리를 지어본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아이들의 존재는 나에게 희망이며
아이들의 웃음은 나에게 활력소라는 것이다.
엄마라는 장편 드라마는 계속 이어지고
20대의 중편 드라마는 이렇게 끝나며
30대의 여러 단편 드라마들은 어떻게 펼쳐질지
앞으로의 여정이 기대된다.
올해도 모두가 꽃길만 걸을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