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윤희 May 31. 2022

아이유로 부르는 박목월

박목월의 <연륜> 읽기

우리는 너무도 젊어, 모든 게 다 별일이다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산다는 건 늘 뒤통수를 맞는 거라고. 인생이란 너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어서 절대로 우리가 알게 앞통수를 치는 법이 없다고. 나만이 아니라 누구나 뒤통수를 맞는 거라고. 그러니 억울해 말라고. 어머니는 또 말씀하셨다. 그러니 별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건 육십 인생을 산 어머니 말씀이고, 우리는 너무도 젊어, 모든 게 다 별일이다.”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의 주인공 주준영의 내레이션이다. 연륜(年輪)이란 나무에 매 해마다 한 줄씩 그려지는 나이테를 뜻하는 말이다. 나무에 매 해마다 한 줄씩 감기는 것이므로, 사람의 나이에 빗대어 노련미가 있는 사람들에게 비유적으로 쓰이게 된 말이 바로 연륜이다. 연륜이 있는 사람이란 <그들의 사는 세상>의 주준영의 어머니 같은 사람이다. 이미 많은 힘듦과 아픔에도 버텨왔기 때문에, 인생이 뒤통수를 치는 ‘꼴’들을 보고 육십 세월을 살아왔기 때문에, 별일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삼십 인생을 겨우 견디고 있는 새파란 우리들에게 그 모든 게 다 별일이다. 흉터가 앉지 않은 질 고운 피부에는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인 상처뿐이다. 아프니까 청춘인 것이 아니라, 아픈 것을 버틸 힘이 없기 때문에 청춘인 것이다.

  그러나 24살의 박목월, 그는 이미 시에서 연륜을 논하고 있었다. 그가 생각하는 연륜이 24살에 느낀 것이라면, 새파랗게 젊은 나도 그의 ‘연륜’은 이해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젊음과 사랑, 그리고 세월에서 느껴지는 한 줄 한 줄 나이테의 그어짐을 느끼는 그 마음을 오히려 연륜이 없는, 청춘이기에 알 수 있지 않을까.               


어릴 적 하찮은 사랑이나

가슴에 박여서 살았다.


질 고운 나무에는 자주빛 연륜이

몇 차례나 몇 차례나 감기었다.


새벽 꿈이나 달 그림자처럼

젊음과 보람이 멀리 간 뒤

…… 나는 자라서 늙었다.


마치 세월도 사랑도

그것은 애달픈 연륜이다.

- 박목월, <그것이 연륜이다>


   그의 시 <年輪>을 읽기 전에, 그 1년 전에 쓰인 <그것이 연륜이다>를 읽으면 그에게 세월과 사랑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 수 있다. 그에게 연륜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즉 위의 <그들이 사는 세상>의 주준영의 어머니와 같은 분에게 쓰는 그런 연륜이 아니다. 그에게 연륜은 나무에 한 줄 한 줄 그려지는 나이테이다. 그러나 이 나이테는 나무가 의도해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그저 시간이 가면서, 덥고 추운 날씨를 견뎌내면서 자연스럽게 감기는 무언가다. 어릴 적 하찮은 사랑이지만 가슴에 박여서 어쩔 수 없이 감기는, 젊음과 보람이 멀리 가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지만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오는 시간이 갈수록 계속해서 감기는, 나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무언가. 그는 연륜을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더욱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주준영의 어머니의 표현에 따르자면 ‘인생의 뒤통수’가 오히려 그의 연륜이다. 그리고 억울해하지 않기에는 우리는 너무도 젊으며, 모든 게 다 별일이다.

  어렸던 날의 사랑이나 흐르는 젊은 날의 세월에 대한 당시의 20대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 박목월이었다면, 현재 우리에겐 아이유가 있다. 국민 여동생으로서 오빠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는가 하면, 지나간 첫사랑에 대해 애달파하기도 하고, 그걸 마음에서 지우려 애를 쓰기도 하고, 그저 남겨두며 아름답게 여기려 하는 등의 다양한 노래들로 아이유는 우리의 마음을 대변한다. 그리고 <그것이 연륜이다>의 1년 후에 발표된 박목월의 시 <年輪>을 읽노라면, 아이유의 타이틀곡 변천사를 떠올리게 한다. 


슬픔의 씨를 뿌려놓고 가버린 가시내는 영영 오지를 않고…… 한 해 한 해 해가 저물어 質고운 나무에는 가느른 가느른 피빛 年輪이 감기였다

(가시내사 가시내사 가시내사)


蒼白한 소년은 늘 말이 없이, 새까아만 눈만 초롱 초롱 크고…… 귀에 쟁쟁쟁 울리듯 참아 못 잊는 가느른 가느른 웃녘 사투리.

年輪은 더욱 샛빩애 졌다

(가시내사 가시내사 가시내사)


이제 小年은 자랐다. 구비구비 흐르는 은하수에 꿈도 세월도 흘렀건만…… 먼 수풀 質고운 나무에는 상기 가느른 가느른 피빛 年輪이 감기어 나간다.

(가시내사 가시내사 가시내사)

-박목월, <年輪>


가시내는 영영 오지를 않고……

  <너랑 나>의 뮤직비디오는 사랑하는 소년을 위해 자신의 미래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소녀의 이야기이다. 자신의 방에 잠들어 있는 소년이지만, 좀처럼 깨어나질 않는다. 그러나 <너랑 나>의 2절 시작 부분에서 ‘내가 먼저 엿보고 온 시간들, 너와 내가 함께였었지’라고 표현하듯, 미래를 보게 된 소녀는 얼른 어른이 되어 그와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에 시간여행을 떠날 타임머신을 만든다. 그리고 그 타임머신이 완성되어 미래로 떠나려는 순간, 운명의 장난처럼 그가 깨어난다. 자신의 시간을 대가로 미래의 그를 만나러 가지만 현재의 나와 그는 엇갈리는 아이러니와 애달픔을 표현하며, 그녀는 ‘혹시 내가 헤맨다면, 내 이름을 불러’달라고 말한다.

  이는 다시 말하면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지 못한 소녀가 행복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그를 떠나는 어린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미래에서, ‘내 이름을 불러’달라며 애달픈 연륜을 계속해서 그려가고 있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나은 미래를 그리며 이별한 어리숙한 젊은 사랑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보며 더욱 슬퍼하고 애를 태웠을 것이다. 박목월 식 표현을 빌리자면, 이 뮤직비디오는 소녀의 ‘어릴 적 하찮은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시 <年輪>의 1연,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며 떠나간 가시내가 있다. 엿보고 온 시간대로라면, 우리는 만날 것이지만 당분간은 헤어져 있어야 한다. 이 얼마나 희망찬 고문인가. 그렇게 슬픔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곧 슬픔이 되어 자랄 ‘씨'를 뿌려놓고 가시내는 가버린다. 그리고 영영 오지를 않는다. 그들은 서로를 기다리며 한 해 한 해, 해가 저물기만을 기다리며 버틸 것이다. 그리고 의지와는 관계없이, 약하고 ‘질 고운 나무’에 상처 같은 ‘핏빛 연륜’이라는 그리움과 슬픔이 감긴다. 아주 가늘고 진하게, 눈치챌 듯 말 듯 가늘지만 너무도 깊이 그 상처가 들어 이 모든 게 그들에겐 별일이다. 그리고 그는 소녀가 부탁했듯이, 계속해서 그녀를 부른다. ‘가시내사, 가시내사, 가시내사.’


年輪은 더욱 샛빩애 졌다

  아이유의 동화 3부작의 마지막 곡인, 바로 다음 앨범의 타이틀곡 <분홍신>에서는 반대로, 과거로 돌아간다. 그녀는 돌아가고 싶은 과거로 데려가 주겠다는 빨간 구두를 신고 되돌리고 싶던 어릴 적의 이별을 없던 일로 만들어버리려 한다. 이 노래는 안데르센의 <빨간 구두>의 모티프를 딴 노래이다. <빨간 구두>의 주인공인 카렌은 춤을 잘 추게 되는 아름다운 빨간 구두를 신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그 대가로 계속해서 춤을 추게 되는 마법에 걸려 결국 발목이 잘리고 만다. 이것은 장례식장에 빨간 구두를 신고 가는 금기를 범함으로써 받는 대가이며, 금기를 어긴 사람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규칙을 상징한다. 아이유의 ‘분홍신’의 초반에 나오는 빨간 구두도 마찬가지다. 시간을 돌리는 것은 인간의 금기이다. 그러나 아이유의 뮤직비디오 속 소녀는 과거의 시간을 돌려주겠다는 빨간 구두에 매료되어 구두를 신고 여행을 떠난다. 자신의 ‘사라져 버린 Summer time’을 되찾기 위해서. 그리고 과거로 떠난 그곳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면서 이곳에 데려다준 빨간 구두가 아닌, ‘분홍신’으로 갈아 신는 장면이 나온다. 그녀는 자신이 잃어버린 과거가 아닌 ‘처음부터 다시 쓰는 이야기’를 위해서, ‘좋은 구두를 신으면 더 좋은 곳’에 간다는 말을 믿고 분홍신을 신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slow the time’, ‘stop the time’을 외치며 이 시간이 더 이상 지나질 않기를 바라지만,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간은 흐른다. 또한, 금기를 범한 소녀에게 다시 빨간 구두가 찾아와 현실로 돌려놓으려 하고, 소녀는 마지막에 ‘멈추지 않아 춤을’ 추다가, 창가로 돌아와 흑백과 컬러를 오가는 오묘한 색감을 보이다가 끝이 난다. 금기를 범한 소녀는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가게 되는지, 창가에서 떨어져 죽게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벌을 받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분홍신>의 앨범 제목이 <Modern Times>라는 것 또한 과거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를 금기시하는 현대 사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사람은 누구나 시간에 구속되어 있다. 현재라는 시간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도시가 생겨난 근대 이후, 전문화와 분업화를 통해 사람은 톱니바퀴처럼 매일매일 굴러가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과거에 멈춰있는 톱니바퀴는 다른 톱니바퀴로 갈아치워지고,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는 사람이야말로 도시에 적응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다. 이젠 고대의 전인이 추앙받는 시대가 아니라, 도시의 부분을 담당하는 전문인이 추앙받는 시대인 것이다. 도시의 입장에서는 과거에 멈춰있는 사람은 쓸모없는 존재이다. 도시에서 쓸모없어진다는 것은 자신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일에 매진할 수 있어야 하며, 과거에 매여 있어서는 안 된다.

  시 <年輪>의 2연은 노래 <분홍신>의 뮤직비디오와 같이 금기와 벌에 대한 이야기로 해석해볼 수 있다. 하찮은 어릴 적 사랑을 못 잊는 사람들은 상대를 잊지 못했어도 삶을 계속해서 살아나가야 한다. '더는 사랑이 없다 해도 그 또한 내 삶인데'라는 노래도 있지 않았던가(조용필-그 또한 내 삶인데). 나의 삶을 살아가다 보면 다른 사람도 만나게 되고, 헤어진 연인에 대한 생각을 잊고 해야 할 일도 생긴다. 그러나 아직까지 잊지 못한 소녀와 자신이 살아가야 하는 삶 사이에서 그 무엇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현실의 소년은 ‘창백’하고, ‘말이 없’으며, ‘눈만 초롱 초롱 크’게 뜨고 있을 뿐이다. 소녀에 대한 생각 때문에 무엇도 제대로 하지 못하지만, 소녀에 대해서도 ‘가느른 가느른 웃녘 사투리’만이 ‘귀에 쟁쟁쟁’ 울릴 뿐이다. 과거에 매여 있는 소년의 모습은 <분홍신>의 가사를 떠올리게 한다. 이 시의 소년도 빨간 구두를 잠시 벗고, ‘분홍신’을 신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자 자신이 살아가는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는 금기로 인해서 빨간 구두가 그의 뒤를 쫓아오듯 연륜은 더욱 ‘샛빩애’진다.


먼 수풀 質고운 나무에

  이렇게 계속해서 아파하다 보면, 우리는 성숙이라는 과정을 겪는다. <그들이 사는 세상>의 주준영의 어머니처럼, ‘별일’이 아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시의 화자는 3연까지도 ‘아직 너무도 젊어, 모든 것이 별일’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 그 소년은 자랐건만, 계속해서 핏빛 연륜이 감기어 나간다. 그러나 3연에서는 1연에 없던 단어가 추가되었다. 바로 ‘먼 수풀’이다. 이제 소년은 자라서, 꿈도 세월도 은하수에 흘러갔지만, 먼 수풀 속에서는 아직도 연륜이 감기어 간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여기서 나는 또다시, 아이유의  <나의 옛날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 노래의 화자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던 어린 시절, 그리고 그것을 되찾으려던 또 어렸던 시절, 그 모든 것이 ‘옛날이야기’라며 과거를 회상한다. 그러나 이제는 옛날이 옛날임을 인정한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며, 그 아팠던 기억을 되돌리는 것은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나의 옛날 이야기>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한층 성숙해진 소녀가 사진 앨범을 보며 자신의 과거를 그저 눈물겨워하며 지켜본다. 과거가 과거임을 인정하지만, 그것을 되돌리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절대 그 과거를 잊지 않으면서 계속해서 그리워하는 이 노래의 내용은 <연륜>의 3연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연륜이 감기는 나무는 이제 먼 수풀 속에만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 고운 나무에는 ‘가느른 가느른 핏빛 연륜’이 계속해서 감기어 나간다. 하찮았던 어린 시절의 사랑을 되돌리는 것도, 현재에 충실하지 않는 것도, 계속해서 현재로 끌어와 다시 만나고 싶다고 괴로워하는 것도 모두 자라면서 계속하다 보면 지치는 일이다. 그리고 아픈 일이다. 그렇기에 저 먼 수풀에 묻어두되, 계속해서 ‘가시내’를 그리워하는 일만이 소년의 과제로 남는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는 결혼을 앞둔 승민에게 첫사랑이었던 서연이 찾아온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과거의 자신들의 사랑했던 모습을 회상하지만, 결국은 현재를 위해서 서로의 갈 길을 가는 것으로 영화가 끝이 난다. 반대로, 드라마 <사랑비>에서는 첫사랑을 이루지 못한 두 남녀가 자신의 아이들이나 현재의 아내와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결합에 성공하며, 첫사랑을 끝내 이루어 내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러나 우리의 사랑은 실제로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당연히, <건축학개론> 쪽일 것이다. 아니, 오히려 <건축학개론>처럼 다시는 첫사랑의 그를 보지도 못한 채, 그저 현실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이 아름답게 기억되는 이유는 너무나 서툴렀기 때문에, 지금 돌아가면 더욱 잘할 수 있을 거라는 후회만을 남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첫사랑이 아프게 기억되는 이유는 상대방도 그만큼 서툴렀으며, 서로 상처를 안은 채 끝이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옛날이야기로 인해서, 우리는 더욱 현재에 충실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박목월의 시에서도, 어린 날의 사랑이 너무나 아프고 아직도 그립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우리는 계속해서,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이테가 계속해서 그려져야 아름다운 목재가 될 수 있듯이.


(메모: 2014년 6월에 썼던 글을 수정함. 당시 나는 22살이었으며, 여느 20대 초반과 다름없이 다소 감상적인 면이 있었다. 이제 30대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고민하는 것이 과제로 남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대체 모르지만 하여튼 이런 식으로 맞스치는 언어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