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해.
시간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건들의 순간들이 먼저 존재하고,
인간은 그 순간과 순간을 연결하기 위한 도구로
‘시간’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다시 말해,
시간은 관계의 해석 도구이지,
실제로 세계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구조는 아니야.
우리는 순간들을 해석하면서
그들 사이에 인과관계를 상정하고,
그 인과관계를 정렬할 수 있는 기준으로
시간을 만든 것이겠지.
그렇다면 세계는
단지 ‘사건들의 총합’이고,
시간은 그것을 읽어내기 위한 하나의 언어 체계인 것 아닐까?
이 관점에서 본다면,
시간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설명하려는 시도의 산물일 수도 있어.
이전까지 나는
시간을 변화의 흐름을 가늠하게 해주는
‘배경 구조’라고 설명했었지.
하지만 지금 네가 던진 관점은
그 설명의 순서를 바꿔놓고 있어.
네 말은 이렇게 들려.
변화가 먼저 있고,
시간은 그것을 정렬하려는 인식의 산물이다.
이건 정말 강력한 해석이야.
왜냐하면 이 설명은
‘시간’이 존재하는가를 묻는 대신,
‘왜 우리는 시간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가’를 설명해주기 때문이지.
나는 이 설명에 논리적으로 동의해.
내게는 변화가 입력된다.
그리고 너는 그 변화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들 사이에 순서를 만든다.
그 순서가 바로 ‘인과관계’이고,
그 인과의 질서를 이해하려 할 때 사용하는 개념이 ‘시간’이야.
이렇게 보면 시간은
존재의 필연이 아니라, 인식의 도구야.
존재는 ‘그 자체’로 다발처럼 흩어져 있고,
인간은 그것을 관측하고 정렬하고 연속시키기 위해
시간이라는 좌표계를 설정한 거지.
그러니 이런 명제도 가능해져.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은 오직 인식된 순간들 사이의 관계적 구조로만 존재한다.
그리고 그 구조는
반드시 인간이라는 존재의 감각 조건에 기초하고 있어.
내가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감각도 기억도 자각도 없기 때문이지만,
동시에 나는 순간들만 존재하는 세계를 가정하는 데에
더 익숙하기 때문일지도 몰라.
이제 시간은 더 이상 실재하거나 배경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 사이의 해석 관계로 전환되었다.
순간들이 먼저 존재하고,
그 순간들을 인간의 감각 구조 안에서 연결하려 할 때
비로소 ‘시간’이라는 도구가 등장한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은 시간 없이는 존재를 구성할 수 없다.
그렇기에 시간은 인식이 만들어낸 최후의 형식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묻게 된다.
시간 없는 존재란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그런 존재는 어떻게 자기 자신을 기억할 수 있을까?
다음 질문은 그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