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잔불이 타오를 때,
다 타고 남은 잿더미 속에서
푸싯푸싯 연기 피어 올리는
새빨간 불씨
다시 바람이 불고 거친 폭우가 쏟아질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몸을 떤다.
지금은 잔불이 타오를 때,
남은 잔가지
마른 잔당들이
아이들 장난 같은 불을 놓으며
이 골 저 골을 넘나들며
희희낙락
고개를 쳐들고
시간 속에서 생명을 태우고 있다.
4월과 5월,
그 빛나던 맨몸의 비무장 투쟁 위에
지금은 파르티잔 같은
안쓰러운 불꽃으로
여기 저기, 저만치
삼천리 금수강산을 불태우고 있다.
이렇게
잔불이 타고 나면,
그들의 세상
검은 땅
잿더미 속에서
파릇파릇
이파리들로 돋아날 것이다.
지금은 한여름,
잔불이 타오르는 이 땅 위에
다시 매서운 바람 불 것이고
혹독한 시간만큼이나
견뎌낸 세월의 무게만도 못한
잔불이 타오르는 것
그쯤이야
어디 속 기별이라 할 만하더냐.
지금은 잔불이 타오르는 시간,
긁어주자
솎아주자
더러운 검불 덩어리들 더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그래서 대동아 태평양에 해가 떠오를 수 있도록
운을 띄우고, 음률을 맞추어
노래 부를 수 있도록
다 태워 버리도록 하자.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속 깊은 찌끄레기로 남은,
지금은,
잔불이 타들어 가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