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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컨츄리시티즌 Dec 06. 2021

퇴사한 회사에 다시 다니고 있습니다.

모든 스타트업이 애플처럼 보였던 순간

핸드폰의 모든 알람을 해제했다. 이제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퇴사의 기쁨이다. 물론 우리는 퇴사 이전부터 창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준비했었고, 바로 전업 창업가 모드로 전환해야 했기 때문에 ‘NO알람’의 기쁨은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마침 운이 좋게도 군 단위의 지자체와 로컬 크리에이터 프로젝트를 작게나마 할 수 있어서 ‘바쁨 모드’는 여전했다. 그럼에도 이제 '9 to 6' 직장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소소한 해방감을 맛볼 수 있었다. 해방감을 누리기 위해 너무도 당연하게,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창업가답게, 디지털노마드로 업무를 시작했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서도 일하고, 비가 오는 날이면 김치전과 함께 집에서도 일을 했다. 

정말 ‘스타트업 하는 느낌’이 물씬 흘렀다.


하지만 자유엔 책임이 따르는 법. 내 사업을 책임감 있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요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회사에 있을 때엔 공기 같은 것이라서 몰랐던 것들. 거래처를 만나 사업 제안을 하는 자리에는 멋진 키노트 자료를 가져가야 했지만 우리 집엔 프린터기가 없었다. 회사였다면 키노트를 출력해 쫄대 홀더에 끼우는데 채 1분도 걸리지 않았겠지만, 디지털노마드는 킨코스와 알파문구를 순회해야지만 사업 제안자료를 완성할 수 있었다. 1분 걸릴 일을 1시간이나 걸려서 하는 내가 정말 효율적인 스타트업 창업자일까. 자괴감이 밀려왔다. 이 뿐만이 아니다. 콘센트도, 정수기도 숨 쉬듯 써왔던 것들의 부재에 발목이 잡혀 일이 진행은 더디게만 흘렀다.


일상의 불편함을 해결할 타개책이 필요했다. 사소한 것들을 신경 쓰고 싶지 않아 공유 오피스를 알아봤다. 그간 창업지원을 하면서 많은 스타트업을 만났던 공유 오피스, 그곳은 그럴싸하게 회의를 진행하는 회의실과, 오후 3시의 허기를 달래줄 라운지도 있었다. 이제 우리만 들어가면 된다 싶었다. 공유 오피스들도 우리를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었다. “돈 가지고 오면 얼마든지 환영하지”라는 말과 함께. 지금까지 창업지원을 하며 만났던 스타트업들이 위대해보였다. 그들이 이렇게 부자였다고? 이 비싼 비용을 낼 수 있다니 그들은 정말 삼성이고 애플이었다.


공유 오피스에 입주해 계세요? 그렇담 삼성이시네요. 애플이신가..?


그간 지원했던 스타트업들을 생각하다 보니 불현듯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떠올랐다. 그래, 나 며칠 전까지만 해도 창업 지원했던 사람이지, 그리고 우리 회사는 창업 지원하는 회사였다. 꽤나 걸출한 창업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던 회사에는 창업 팀을 위한 공간도 조성되어 있었다. 회사가 생각났다. “잘 지내시죠?”라는 어색한 웃음 뒤로 창업공간에 입주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입주까지 일사천리, 난 회사를 떠난 지 일주일 만에 회사로 돌아왔다. 입주 첫날, 필요한 것들을 싸들고 주차를 하다 관리소장님을 마주쳤다. 소장님께 마지막 인사를 했었는데, 딱 일주일 만에 입주 신고 인사를 했다.


그래도 체면보다는 실리였다. 우리 회사, 아니 전 직장은 정말 따뜻한 곳이었다. 언제든 따뜻한 물을 마실 수 있는 정수기와 목받침까지 있는 안락한 의자, 얼마든지 출력을 할 수 있는 프린터기가 그렇게 든든할 수 없었다. 화룡점정은 전 동료가 내밀어 준 멀티탭이었다. 감히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될까 싶었다. 전 동료에게서 멀티탭을 건네받았을 때, 회사는 비로소 꽃밭이 되었다. 회사의 소문은 바람보다 빨라 내가 입주했다는 사실이 6층짜리 건물에 삽시간에 퍼졌지만, 견딜 수 있었다. 회사는 정말 따뜻한 공간이니까.


그렇게 나는 퇴사했지만 여전히 같은 곳으로 출근하고 있다.
매일 보던 사람들을 다시 매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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