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로

by 구절초

라디오에서 나훈아의 무시로가 구성지게 흘러나온다. 우리 가정을 파탄으로 몰고 갈 뻔했던 노랫소리에 귀가 세워진다. 오래 전이지만 그때의 일들이 올라 쿡 웃음이 터진다.

어려서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입이 잠시도 가만있질 못했다. 오죽했으면 나이 드신 고모가 “저년은 아가리도 아프지 않나 죙일 벌리고 있다”며 나무랄 정도였다. 그렇거나 말거나 귓등으로 흘리며 입을 여전히 열고 다녔다.

초등학교 1학년 추석 즈음, 미군 부대의 지원을 받는 우리 학교에서 행사가 있었다. 꼬부랑글자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던 나는 선생님이 한글로 적어 준 발음을 외우고 외워 손님으로 온 코쟁이 아저씨들 앞에서 작은 별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그 때의 흐릿한 흑백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깡총한 색동 치마 밑으로 양말도 신지 못한 조갯살 같은 발가락이 부끄러운 듯 오므리고 있다. 낯선 이방인 앞이라 긴장을 했는가 보다. 아버지의 서투른 이발 솜씨에 엉성한 초가지붕을 이고 있는 모습은 어찌나 촌스러운지... . 두 손을 맞잡아 가슴 언저리에 올려 앵무새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60년대의 전형적인 시골아이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한 장의 흑백사진은 내가 노래에 자신감을 갖는데 큰 힘이 되었다.

가수가 되고 싶었다. 동요보다 유행가에 마음이 끌렸다.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란 노래를 초등생 2년인 내가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낸다며 빨갛게 멍든 동백꽃잎을 학교 구석구석에 흩뿌리고 다녔다.

이러던 내가 만만찮은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콧노래 부르는 것도 탐탁찮아 했다. 얌전치 못하고 정숙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때의 막막함을 어떻게 표현 할 수 있을까.

남편의 직장에서 체육대회가 열렸다. 부서별로 노래를 하게 되자 남편을 의식해 망설이고 있는 나를 주변에서 힘으로 떠밀다시피 무대로 밀어 올렸다. ‘에라 모르겠다’ 끼가 발동한 나는 한창 인기를 끌던 나훈아의 무시로라는 노래를 감정을 섞어 멋들어지게 불렀다. 남편의 안색이 싹 변하며 눈꼬리가 추켜 올라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아차 싶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드디어 집에 돌아와서 일이 벌어졌다. 도저히 같이 살 수 없다며 이혼 하자고 했다. 나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남편이 친정오빠에게 전화를 걸더니 헤어지겠다고 말하고는 매몰차게 끊었다. 하얘진 머릿속으로 엉킨 실타래를 푸느라 기나긴 어두움과 싸워야 했던 그날, 내 생애 가장 길고 긴 밤이었다.

그 밤의 기억이 부옇게 바래갈 즈음, 또 노래의 유혹을 내치질 못하고 말았다. 라디오에서 전화로 하는 노래자랑에 도전을 한 것이다. 당일은 집에서 전화기에 대고 부르지만, 주말과 월말 대회는 방송국 스튜디오에 가야만 하는 프로였다. 일단 합격을 했으니 진주까지 다녀 올 일이 문제가 되었다. 남편 모르게 다녀오려면 꾀를 내야만 했다. ‘무슨 묘책이 없을까’ 마침 한약을 전화로 신청하면 미리 지어 놓는 한의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늘은 스스로 . 방송국을 다녀오는 나의 손엔 미리 주문한 한약이 천연덕스럽게 들려져 있었다. 아이들이 부모 몰래 저 좋아하는 일을 저지르는 마음이 이런 것일까. 나름대로 묘미가 있었다. 덕분에 남편은 사랑으로 포장된 나의 일탈을 하루에 세 번 씩 꼬박꼬박 빠지지 않고 챙겨 마셨다.

연말 결선에 출전하게 되었다. 기쁨 반 걱정 반으로 다가왔다. 라디오로 하면 한약 한 재 더 지으면 끝날 일이 텔레비전 방영을 한다는 것이다. 날짜는 다가오고 고민만 하고 있던 저녁,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다. 홍보 영상을 내 보낼 예정이니 남편에게 멋진 옷 한 벌 얻어 입고 방송국으로 오라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제작진의 말에 대답은 했지만 가슴은 방망이질을 해댔다. 누구 전화냐고 묻는 남편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결선 대회 날, 개인 사정으로 출연을 하지 못한다는 사회자의 멘트가 티비 화면에 흐른다. 옷은 고사하고 나름 멋을 내고 나온 다른 출연자들을 보며 아쉬움과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마루 끝에 서서 애꿎은 이불만 털어댔다.

아픔을 추억으로 바꾸는 시간의 흐름은 사람의 생각까지도 변화시키는 힘이 있는가 보다. 나이가 들더니 남편이 바뀌었다. 예전의 일을 까맣게 잊었는지 요즈음 도리어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댄다. 내가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노래하는 것을 반대했던 일도 못하게 하는 일을 굳이 맞서가며 했던 나도 한때 젊음의 치기였나보다. 하나를 잃으면 또 하나를 얻는 것이 세상의 이치가 아니던가. 남편의 제지를 받다보니 아이들을 이해 할 수 있었다. 그나마 얻은 수확이다. 아이들 얘기에 귀 기울이고 질책하지 않았다. 아니면 저희들 나름대로 눈속임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나를 통해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이가 말해준다. 목소리도 갈라지고 쭉쭉 뻗어 올라가던 음도 꺾여 이제는 예전처럼 노래를 할 수가 없다. 어줍게 가수의 꿈을 키웠던 내 모습에 얼굴이 붉어지지만, 그 꿈은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속상할 때나 화가 날 때 힘이 들 때 내 입에선 무시로 흥얼거림이 나왔다. 노래는 나에게 삶의 버팀목이었다.

40여 년 결혼생활이 평탄하기만 했을까. 서로 감정이 뒤틀리고 배배꼬여 혼란스러울 때가 어찌 한 두 번 뿐이었으랴. 한때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실타래 같아 가위로 잘라내고 싶던 적도 있었다. 나이 드는 것이 아쉬운 일만은 아닌 듯하다. 굽이굽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 그 실타래를 들여다보니 이제는 고운 색실이 되어 반짝이고 있지 않는가. 한 올 한 올 뽑아내어 그 속에서 울고 웃었던 기억들을 되새김질해 보는 것도 그런대로 재미가 쏠쏠하다. 아직까지도 때로는 서로 버티며 오기를 품기도 하지만 그것들도 머잖아 재만 남겨질 사그랑주머니가 될 것이다. 그것이 삶이리라.

구성진 노랫소리가 차 안에 울려 퍼진다. 묵은 한을 풀어내듯 핸들에 박자를 맞추며 목이 터져라 따라 불러본다. 오늘은 무시로 꺼내볼 어떤 추억 한 가닥 짜 볼가나. 파란 하늘에 한 움큼 떠있는 흰 구름이 내려다보며 빙긋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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