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근로시간제의 허와 실
선택적 근로시간제란 출퇴근 시간을 근로자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언뜻 보면 굉장히 근로자를 위한 규정으로 보이지요.
그런데 어째서인지 기업 측에서 이 선택적 근로시간제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가산임금이 발생할 여지가 없다 는 점 때문입니다.
물론 어딘가에 실제 하는 3명이 할 일을 1명만 뽑아서 미친 듯이 일을 시키는 회사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회사에서는 1개월 이내의 정산기간을 놓고 봤을 때 업무가 많은 날이 있고, 상대적으로 여유로워서 칼퇴근을 할 수 있는 날이 있습니다.
이때, 기본적인 임금체계라면 여유로워서 칼퇴근하는 날은 소정 임금만 주면 되고 바빠서 연장근로를 하는 날은 연장근로수당을 줘야 합니다.
그런데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적용하게 되면 이 부분에서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습니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1월 이내의 정산기간을 평균하여 1주 40시간을 초과하지 않는다면 그 범위 안에서 1주 40시간, 1일 8시간을 초과하는 근로를 하게 할 수 있습니다.
앞의 예를 볼까요?
여유로운 날 일이 없으니 4시쯤 퇴근을 시킵니다.
그리고 바쁜 날 2시간 더 일을 시킵니다.
평균 1주 40시간 이내가 되면 이 2시간 연장근로에 대한 가산임금을 줄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근로자 입장에서도 나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일도 없는데 매일 같은 시간에 회사에 출근해서 매일 업무 종료시간까지는 있어야 하고 추가적으로 일이 있으면 더 일을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회사생활을 조금만 해 본 사람이라면 이 "근로자의 선택"이라는 것이 얼마나 꿈같은 이야기인지 아실 겁니다. 결국, 말이 (근로자의) 선택이지 사실은 "회사의 사정"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나 자신의 업무에 따라 내가 언제 출근하고 언제 퇴근할지를 정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업무는 회사의 사정에 따라 나에게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보죠.
회사에서 나의 업무가 오전에는 거의 일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오후 3시쯤 되면 위에서부터 일이 내려오네요?
이때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하게 되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은 오전일까요? 오후일까요? 이것을 두고 근로자가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결국 자연스럽게 오전에 쉬도록 선택(을 가장한 강제가 되겠죠) 하고, 오후에 늦게까지 일을 해도 추가적인 가산임금(연장근로수당)을 받지 못하는 일상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선택은 자유입니다. 비록 야근수당은 확정적으로 못 받게 되더라도 좀 더 유동적인 근무시간으로 자기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면 그걸로 좋다고 하는 근로자도 분명히 많을 겁니다. 다만 기업이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했을 때 딱히 근로자를 위해서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근로자 입장에서 미처 생각지 못한 임금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혹시 모르고 서면합의를 하시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내가 이 제도의 장단점을 잘 알고 스스로 판단해서 동의하는 것과 정확히 잘 모르는 상태에서 막연하게 좋은 점만 듣고 동의하는 것은 분명 다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