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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 Nov 01. 2024

성인 ADHD 주부의 일상

명절이 너무 힘든 ADHD 주부


명절은 한국의 모든 며느리들에게 스트레스인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죽했으면 "명절 전 증후군'같은 말도 있겠는가?


그러나 나 같은 성인 ADHD를 가진 며느리라면 더더욱 그 힘듦이 몇 배 일 것이다.

보통 며느리들도 벅차하는 명절을 정리정돈과 기본 생활습관도 잘 안 잡혀있는 내가 그것도 맏며느리로써 기대하는 시부모님들의 기대에 충족시키는 것?


한마디로 불가능이다.


잘 되지 않는 것을 잘 되는 척해야 하고  피하고 도망치고 싶은 순간들이 한 두 순간들이 아니다.

그 순간이 피하고 싶어 시댁만 오면 그렇게 잠을 많이 자는 간 큰(?) 며느리였다.

오죽했으면 시어머니께서 우리 집에만 오면 왜 이렇게 잠만 자냐고!!^^;그래도 애들이 어려서 그리고 많아서 피곤할 거라는 핑계가 먹히던 시절이었지..

그래도 나무라지 않으신 우리 시어머님은 천사가 아닐까?




처음에는 내가 맏며느리이고 또 다행히 이해심 많은 시어머님을 만나 모든 것이 커버가 되었다,

이런 나 라도 많이 이뻐해 주셨다.

그때는 나만 며느리였으니까 비교할 대상도 없었다.


하지만 둘째 며느리가 들어오고 나서는 말이 달랐다.

어머니께서 비교한 것이 아니고 나 스스로가 동서와 나에 대해 비교의식과 열등의식이 높아져 갔다.


겉으로 보면(남들이 보면) 사실 내가 동서에게 열등감이 있다고 생각을 못할 것이다. 학벌도 남편도 아이들도.. 내가 가진 게 더 많다고 생각했으니까..

'가 걔보다 뭐가 모질라서?..'


결혼하고 첫째를 낳고 시부모님께 아이를 맡기고 내가 잘하는 음악 관련일을 하고 늘 큰 무대에서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연주하고 집에 들어올 때 큰 꽃바구니 여러 개를 가지고 올 땐 몰랐지...

오히려 그때는 동서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이런 기본적인 것들도 안 되는 사람이란 생각은 안 했을 것이니까..




우리 동서는 손이 아주 빠른 편이다.

눈치도 빠르고 일머리도 좋다.

그리고 정리도 잘한다.

본인 것도 잘 챙기고 또 나눠주기도 잘한다.

그리고 본인이 싫은 건 싫다고 당당하게 얘기한다.

비록 다단계 이긴 하지만 오랫동안 본인 직업도 가지고 있다.



모두 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이다.


한 번도 살면서 누구에게 열등감을 느끼지 못했는데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등감이란..

마치 모차르트를 보는 살리에르의 감정이랄까?


그래도 내가 넘어설 수 없는 산 같은 거니 수긍하고 웬만하면 동서가 이렇게 하자고 하면 내가 보조를 자청해서 나서는 편이다.

ADHD의 장점이라면 장점인 한 감정(예를 들어 자존심 상하는 감정 같은)에 오래 머물러 있지 못하고 또 본인의 약점을 잘 알기에 금방 포기하고 수긍하는 그런 성격

(아마 이 부분은 시부모님께서 많이 답답해하셨을 것이다.)


"동서~ 이거 이렇게 하면 돼?"

"내가 어떻게 도와줄까?"

뭔가 대화 내용이 동서가 맏며느리 같고 내가 손 아랫사람 같은 그런 느낌?

뭔가 겸손한(?) 맏며느리의 모습 같지만 실상은 뭔가 일에 있어 리더의 자리에 있기는 턱없이 부족한 자의 자기 객관화에 의한 자발적 조수 노릇이기에 항상 그 자리가 편하진 않다.




이번 명절은 시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처음 맞은 추석이라 시어머님도 뭔가 부담을 더실 겸 펜션에서 만나서 하는 게 어떠냐고 내가 제안했다.

우리가 먼저 펜션을 예약하고 동서네는 먹을 것을 모두 책임지고 준비해 올 것이라 했다.

사실 일박만 있고 싶었는데 일박이면 너무 짧을 것 같다는 여론에 이틀을 하기로 하고 총 5끼를 11인분을 준비해야 한다.





준비해 온 동서의 실행력과 추진력은 내가 보기에 놀라웠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서 냉장고에 가져온 음식들을 차곡차곡 정리해 놓고 이미 주방 살림 전반적인 것을 혼자 진두진휘하기 시작했다. 일반쓰레기는 여기 음식물쓰레기는 여기 그리고 재활용 넣을 상자는 따로 그 자리에..


정리정돈의 여왕답게 이것은 이 자리에 저것은 저 자리에 정리정돈이 잘 돼있었다. 괜히 내가 이것저것 가져온 것을 놔두는 게 정리해 논 것에 누가 될까 봐 미안할 지경이었다.


만약 나보고 하라 했으면 처음부터 우왕좌왕 뭐부터 해야 할지 몰라 어버버 하고 있었겠지..


나도 빠릿빠릿한 사람이고 싶은데 실상은 엉덩이 무거운 눈치 없는  맏며느리라 동서 혼자 이리저리 바쁠 때 눈치 빠른 남편은 나를 툭툭 치면 가서 너도 동참하라고 눈짓한다.


그제야 일어나 나도 도와줄 게 없는지 무엇인가 분주한 척 연기를 해야 한다.

손 빠른 사람 옆에 있으면 모든 일은 끝나고 난 다음 나는 뒷북이나 치는 인간이 되어있다.

동서도 본인이 손아랫사람이라는 것을 아니 나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시키기도 애매할 터인데

그래서 사실 설거지나 자청해서 하는 것이 제일 나도 속편 한데 이번에 펜션에서 치른 명절은 시할머니 장례식 치르고 남은 일회용품들을 사용하자 하여 별로 설거지 거리도 없었다.


그렇게 이틀간 총 5끼를 책임지고 먹이고..

동서왈 "하얗게 불태웠어요 형님~"

그래 진짜 불태워줘서 고맙다 동서^^




서로 잘하는 거 하면 되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불행하게도 명절에는 맏며느리로써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는 슬픈 결론.


그래서 그나마 시동생보다 돈 잘 버는 남편을 만나 돈으로 잘하는 것을 택했다.ㅋ


결국 돈으로 때우느냐.. 몸으로 때우느냐..

왠지 계속 전자일 것 같은 예감이다.


시어머니께서 다음 명절은 우리 집에서 하면 어떻겠냐고 물으시는데 머릿속이 갑자기 하얘진다.

어머님은 아직도 큰며느리를 모르시는 걸까?

에밍아웃을 해야 될까?


자신이 없다..라고 말씀드리니 실망하신 눈치시다.



아오. 외국에 있을 땐 명절 신경 쓰지 않아 좋았는데..ㅋ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니 그때 가서 생각하도록 해야겠다.

어찌어찌 이번 추석도 잘 보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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