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2501 회고
도전을 쉽고 가볍게.
내가 언제나 얘기하는 우리 회사의 철학이다. 도대체 가벼운게 뭐고 무거운 건 또 뭘까. 남들에겐 이 개념이 추상적이게 다가올 수 있지만, 내 입장에서는 지극히 현실적인 개념이다.
머리를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질 때,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눈을 지긋이 감을 수 밖에 없을 때, 고민 때문에 밤에 잠을 설칠 때. 이런 상황들에서 나는 무거움을 느낀다.
더더군다나 내 No.1 악몽은 무거운 짐을 매고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이다. 나는 귀신 꿈 이런거는 잘 안 꾼다. 그런데 내 몸보다도 큰 짐을 지고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꿈을 꿀 때면, 단 한 발자국도 더 움직이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몸에 힘이 안 들어간다.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한 발 한 발 내딛다가 잠에서 깬다. 잠에서 깨면 꿈이었다는 사실에 크게 안도한다.
가볍다는 것은?
생각 없이 실행할 때 나는 가볍다. 낙관주의가 넘치고, 자신감이 뿜어져 나올 때 별 고민 없이 생각을 실천에 옮길 수 있다. 일 할 때에만 해당되는 개념이 아니다. 공부할 때도 가벼운 상태에서 공부하면, 이해가 술술 된다.
최근 한 달 간 물권법과 민사소송법을 공부했는데, 법학이 하나의 큰 스토리라는 것이 와닿았다. '민법은 하나의 원이에요' 라는 강사님의 말씀이 드디어 체감된다. 왜 이전에는 이가 와닿지 않았을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나는 내가 현재 하루에 4-5시간만 공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도 조금 하면 가볍고 재밌다ㅋㅋ. 하루 12시간씩 앉아있으면 무겁고 힘들어지는거지.
가벼워지기 위한 방법들을 연구하고, 실천하고 있다.
1) 낮잠 자기
그냥 엎어져서 자버린다. 목 배게를 사야겠다. 자고 일어나면 다리에 쥐가 날 때도 있다. 그래도 확실히 개운해지고 행복해진다. 뭔가 단기 메모리를 장기 메모리로 넘기고 용량을 다시 확보한 느낌? 새로고침 누르고 싶을 때마다 잔다.
특히 일을 하다가 곧바로 공부를 하려는 때면 잠이 쏟아진다. 왜 그럴까. 일보다 공부가 재미가 없어서 그런 걸까? 그건 잘 모르겠다. 그런데 정서적 전환비용이라는게 존재하는 것 같다. A를 하다가 B로 넘어가면 전환에 소요되는 에너지가 존재한다. 그리고 ATP를 소진한 나는 엎어져버린다.
2) 러닝하기
1주일에 2번은 뛰려고 노력한다. 러닝을 하면 묵은 땀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고 정신이 맑아진다. 최근에는 영하 12도까지 내려가서 도무지 밖에서 뛸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다행히 본가 윗층에 헬스장이 있어서 러닝머신을 애용한다. 무산소 운동도 해야 하는데 귀찮아서 안 한다.
3) 두피 스케일링
나에게 주는 몇 안되는 사치 중 하나다. 컷 + 스케일링까지 하면 4만원 정도 나오더라. 1달 4만원은 거리낌없이 탕진하는 삶, 어찌 행복하지 아니한가. 무슨 두피 스케일링 홍보대사 같지만, 스케일링을 하고 나면 머리 곳곳이 시원해진다. 머리카락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머리카락이 빠져서 그런건가... 아무튼 나를 짓누르는 무언가에서 해방되는 쾌감이 2-3일은 지속된다.
가벼워져라 가벼워져라 가벼워져라~~
주문을 외자.
10대 후반에 비해서 지금이 행복한 이유는, 내가 나를 더 잘 알기 때문이다. 누구나 별난 구석이 있고, 다른 사람들과 다른 부분이 있다. 그러나 고등학교의 환경에서는 그것이 존중받지 못했고, 나조차도 나를 '일반적인 인간'이 되도록 몰아붙였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그렇게 몰아붙힐 힘도 없을 뿐더러, 지금 당장 행복한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나는 그래서 생긴대로 살고 있다.
목표를 달성하면 뭐하나, 달성해가는 과정이 재밌는거지. 사업도 마찬가지다. 000억원을 벌어야지와 같은 목표보다, 팀원들과 재밌고 가볍게 이런저런 도전을 해나가는 지금이 짱이다. 내가 만약 엄청난 부자가 된다면 지금 이 시기에 대한 향수가 진할 것 같다.
그러나 갓생이라는 개념은 꽤나 획일적이다. 아침 0시 기상, 하루 0시간 운동, 하루 0시간 A과업, 하루 0시간 B과업. 심지어 놀기도 잘 놀아야 한다. 혼자서 카페에서 책 읽는 것도 즐겨야 하며, 친구들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즐거움도 알아야 한다.
아 피곤해죽겠다. 나는 그렇게 못 산다.
타고나기를 욕심쟁이 + 재미 추구형 인간이라서 "목표 달성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 거창하게 존재해버리면 힘이 쭉 빠진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인강 5강 들어야지. 하면 안 듣게 된다. 근데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공부 해야징 하면 또 인강을 5개 넘게 듣고 있다.
저번에 스레드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너는 욕심이 많은데, 그걸 또 다 해내. 그것도 꾸준히 해.어제 친구에게 들은 최고의 칭찬입니다.
방송국 PD, 행정고시 준비, 영어토론, 여행, 유튜브 채널 10개 이상, 창업, 투자유치, 서빙 알바, 과외, 연대 졸업, 로스쿨 합격, 50인 규모 스타트업 근무...어찌어찌 해내고 있습니다.
스레드도 잘 해내고 싶네요!
https://www.threads.net/@dothegy_works/post/DEd9I3MySzO
그리고 이런 댓글들이 달렸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갓생산다고 하죠 스레드 역시 잘해낼거에요✨
어찌어찌라… 아슬아슬해 보이는데 괜찮아? 가끔은 아니 고요속에서 나를 돌아보고 이웃을 돌아보는 시간은 꼭 필요해 욕심 많은 거랑 꾸준함은 정말 부럽다^^ 탐나는 재능이네:-)
대다내요...대다내... 살아있는 갓생
물론 피드백을 주신거는 감사하지만, 나는 절대 갓생을 사는 인간이 아니다.
아마 현실에서의 나를 아는 사람들은 다 동의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저 일들은 8년에 걸쳐서 한 일들이고 (스레드에서도 명시했음) 그때 그때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했던 것들일 뿐이다. 저 중에서는 잘 한 일도 있지만, 부끄러울 정도로 저조한 퍼포먼스를 보인 일도 많다.
"마땅히 00과 같은 식으로 살아야 함" 이라는 개념을 경계하자. 어차피 정답은 없다. 사실 나는 결승선마저 따로 있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많이들 그런 비유를 썼다.
인생은 마라톤이야. 그런데 마라톤과 다른 점은 사람마다 각기 목적지가 다르다는거지.
옛날에 이 말을 들었을 때에는 위로가 됐다.
그래! 모두가 각자가 목적지가 있는거지. 비교하면서 살지 말자!
그런데 요즘은 이런 생각이 든다.
인생이 마라톤이 맞나? 결승선 따위는 없는 무성한 숲길 정도 같은데.
결과를 보고 가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그냥 지금 당장 내가 생긴대로 살고 싶은 욕망이 더 크다. 생겨먹은대로 살아야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