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지만 안타까운, 나는 겪고 싶지 않지만 누군가는 겪어낸
이직을 앞두고 기존 다니던 회사를 관둔 지금,
아마존에서 Kindle을 구매하여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마구 읽어내리고 있는 요즘이다.
청소년 시절부터 여성인권과 Feminism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예전부터 한국에서 말이 많았던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읽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쉽게도 Kindle에는 한국어 버전은 존재하지 않아 영어 버전으로 독서를 마쳤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어떤 점에서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인가?
하는 부분이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굉장히 많은 편견에 부딪히며, 그리고 사회의 부조리를 마주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어렸을 적부터 총게임을 좋아하고 3살 차이 오빠와 치고박고 싸우며 자라나면서 내가 배운 한가지는 '경쟁심'이었다.
누군가에게 지는 걸 죽도록 싫어하는 나는 명절날 사촌들과 윷놀이를 하다가도 질 것 같으니까 그들 앞에서 분노에 차 눈물을 뚝뚝 흘린, 누구에게도 질 수 없다는 진짜배기 또라이였다.
이런 경쟁심은 단순히 게임에서만 발휘된 것이 아니라 인생에서도 그러했다.
주변에서 '너는 여자니까.. 이래야지'라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틀린 걸 입증하고 싶어서 하기 싫은 것도 했다.
운전면허 시험을 볼 때에도 엄마가 '오빠는 2종 따는데 여자애가 무슨 1종이냐'는 말을 했을 때 1종에 별로 미련도 없으면서 세 번이나 도전했다.
여성이라고 얕잡아 보이고 싶지는 않으면서도, 사회에서 '여자들의 특징'이라고 규정지어진 행동들(네일아트, 머리 기르기, 진한 화장하기, 등)을 추구하기도 했으며, 이걸 내가 정말 좋아서 하는 것인가 아니면 미디어에서 추종하는 여성상이기에 하는 것인가 고민했다.
키가 작은 나는 약해보이는 것이 싫어 미간에 주름 지도록 인상쓰고 다니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모르는 사람에게 미소를 짓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다. 그와 동시에 여리여리해 보이고 싶어 먹은 것을 마구 토해내기도 했다.
지금은 나이가 서서히 들면서 내가 좋아하고 편한 것들을 어떻게 잘 찾아왔고, 여성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며, 이런 사회에서 대략 유하게 살아남는 방법을 습득해왔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렸던가.
나와 똑같은 길을 걸어갈 여성 청소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사회에서 나에게 주어준 정체성과 내 스스로의 정체성 사이 그 간극에서 진짜 '나'라는 사람을 찾아가는 과정,
그것은 매우 길고도 험난한 끝나지 않는 내적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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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소설 중
30대 직장인들이 1,800원짜리 커피를 마시고 있는 김지영에게 '맘충'이라는 단어를 쓰며 비하하는 장면이 나온다.
책 속에서 지영의 남편인 대현은 그런 단어는 인터넷에서나 쓰지 누가 현실에서 쓰냐며 지영의 말을 믿지 않는다.
나는 한국에서 Sky대학을 졸업했고 우리 학교 커뮤니티에서 많은 학생들이 맘충이라는 단어를 쓰는 걸 목격했다. 나는 맘충이라는 단어는 혐오 단어이고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들에 대한 혐오 정서를 일으키니 사용을 자제하자고 권유했다.
하지만 그 결과로 나는 해당 대학교 커뮤니티에서 사용 일시정지 처분을 받았다.
같은 대학교를 졸업한 여학우 친구들은 이러한 학교 커뮤니티의 현황에 매우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우리나라의 Sky대학교라 하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양질의 교육을 받는 학생들인데, 그러한 학생들의 인식이 이러하다면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는 젊은 엄마들은 얼마나 많은 혐오를 안고 살아가야 하며 누가 자신을 '맘충'으로 보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해당 책의 독서를 마치며 든 생각은.. '이 이야기는 정말 평범한 우리 세대 30대 여성들의 삶과 내적 갈등을 그리고 있으며 우리 부모님 세대보다는 나아진 여성의 삶을 그리고 있는데도 뭐가 그리 충격적이었기에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을 마녀사냥처럼 몰아갔는가?'였다.
이렇게 우리 삶에서 흔히 있는 평범한 여성의 이야기에 이렇게까지 논란이 생길 줄은... 상상도 못했다. 솔직히 그러한 논란이 나를 더 우울하게 했다. 이러한 여성의 삶을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는 인식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점에서 조남주 작가는 사회인으로서 한국에서 자신의 30대를 지나오면서 목격한 것들을 아직 사회에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평범한 김지영의 삶을 그려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대한 나의 존중은 무한하다.
또한, 이 책은 명문대를 나오고서도 직장 생활을 2년밖에 하지 못하고 결혼하고 나를 낳고 평생을 우리 남매를 위해 헌신해 온 엄마를 생각나게 한다. 나는 늦게 태어나서 운이 좋았기에 좋은 대학도 갔고, 외국으로 나갈 기회도 잡았으며, 나를 항상 응원해주시는 부모님 덕에 결혼/육아에 대한 압박감 없이 하고 싶은 일을 맘껏하고 있다.
우리 엄마도 나와 같이 1990년대에 태어났다면 아직도 직장 생활을 하고, 사회인으로서 존경을 받았으며, 예쁜 정장을 입고 다녔을까.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은 어머니, 아버지에게 동일하지만, 사회인으로서의 기회를 박탈당한 1960년대 여성의 삶을 생각하면 같은 여성으로서 마음이 아파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우리 엄마도 꿈이 있었을 텐데, 하고 싶은 일이 있었을 텐데...
2022년 유럽에서는 어떠할까?
새벽 운동을 좋아하는 나는, 집에 오는 길 마주하는 캣콜링하는 덩치 큰 남성들이 무서워 철로 된 물통을 빠따 휘두르듯 혼자 쇼를 하면서 집을 오곤 한다.
한번은 운동을 하고 집에 걸어오는 길, 자전거를 타고 온 남성이 내 가슴을 움켜쥐고 달아나기도 했다. 아무리 화를 잘내는 나지만, 순간 너무 당황해서 그 남자를 따라잡지도 못했고 몇초 후에 비로소 'Fuxk you' 소리를 지를 수 있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노출있는 옷을 입으면 '보여주려고 입은 것 아니냐?'라는 생각인지 나에게 말을 걸 수 있다고 생각하여 말을 붙이거나 해당 부위를 뚫어져라 쳐다보곤 한다. 나는 내가 스스로 거울을 보며 예뻐보이는 옷을 입은 것이지 이성에게 어필하려고 입는 것이 아니다.
며칠 전 택시 앞자리를 앉겠다고 했다가 그건 남성의 자리라는 소리를 들었고, 한달 전 헬스장에서 가슴 운동을 하는 나를 보며 남성 트레이너가 너는 가슴운동 할 필요가 없다는 성희롱까지 당했다. 하체 운동을 하는 나에게 남자한테 잘보이려고 운동한다는 조롱을 당했다. (척추 측만증이 있는 내게 밸런스를 맞춰주는 하체 운동과 등 운동은 필수다.)
여성에 대한 misjudgement와 편견, 그리고 차별은 전세계에 존재한다.
가끔은 "왜 하필 나는 여성으로 태어나서.."라는 생각을 한다. 그럴 땐 바뀔 수 없는 현실을 자각하고 곧잘 다른 생각으로 나를 밀어보내기도 한다.
이러한 시간을 보내다보니, 나는 인생의 시간이라는 것은 나를 점차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년 시기에는 아직 형성되지 못한 정체성으로 인해, 사회와 환경의 영향으로 나를 규정지었지만,
20대 후반이 되면서는 나를 즐겁게 하는 것들을 찾아가게 된다.
여성으로서의 내가 아니라 그저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탐구한다.
내가 폴댄스, 필라테스가 아닌 클라이밍과 하이킹을 좋아했구나
날씬해보이는 것이 아니라 강해보이는 것을 좋아했구나
이러한 깨달음 속에서 나이 드는 것도 즐거운 과정이라는 것을 찾아내곤 한다.
마지막으로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여성 그리고 남성들에게,
여성의 권리는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페미니즘은 남성성에 대한 족쇄로부터 당신을 해방시켜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고 싶다.
남성이라고 해서 강할 필요가 없음을, 눈물을 참을 필요가 없음을, 가정의 생계를 홀로 책임질 필요가 없음을 ...
페미니즘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으로부터 오는 족쇄를 누구든 파괴할 수 있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