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노력중
'겸손'이라는 말 뒤에 조심스럽게 숨어서 "운이 좋았습니다"라고 할 때가 많지만 지난날들을 돌아보니 쉬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남의 눈에는 쉽게 얻고 쉽게 가는 길처럼 보일지 몰라도 일일이 다 설명할 수 없는 저마다의 이유들과 어려움들이 있을 것이다. 깨지기 쉬운 크리스탈을 다루듯 조심해서 다뤄야 할 것들이 많고 또 그래야만 지켜지는 것들이 많다. 무엇이든 함부로 사용하고 함부로 다루면 깨지고 부서진다. 물건도 사람 관계도...
대학원을 다닐 때 지도교수 스테판 케리(Stephen Carey) 교수님의 연구, 수업 조교를 여러 해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교수님을 뵈어야 하는 일이 많았다. 교수님은 내 도움이 필요하실 때 꼭 앞에다 "If you want...(네가 원하면...)"이라는 표현을 넣으셨다. 난 그 표현을 한 동안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진짜 내가 원하면 와서 교수님을 도우라는 말인지 아니면 반드시 오라는 말인지를. 집과 학교가 멀어서 대학원 수업이 없는 날 학교에 가야 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상황으로는 내가 내일 교수님을 도와드려야 할 것 같은데... 예의 바른 이 한국인 아줌마 학생은 대답을 하기 바로 그 순간까지 머리로는 수많은 고민을 하고 입으로는 "Yes (네)"라고 대답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일은 수업도 없으니 집에서 하고 다음에 미팅을 한꺼번에 했으면 한다라고 말을 하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난 그때 그 많은 고민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아니오'라고 적절하게 '노우(No)'하는 법을 몰랐다.
하루는 다른 조교도 같이 있었다. 교수님께서는 우리 둘에게 똑같이 '원하면' 이런 이런 날짜에 다시 모일 수 있냐고 물으셨다. 그런데 그 친구는 교수님이 제안한 그날은 학교에 나올 계획이 없으니 대신 이런 이런 요일은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혹시라도 본인으로 인해 일이 지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본인이 한 일을 미리 이메일로 보내겠다고 하니 교수님께서는 좋다고 하셨다. 난 그때 그 친구의 답변을 듣고 상대가 제안한 것을 '아니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배웠다. 그날을 계기로 예의 바른 이 한국인 아줌마 학생은 남의 제안이 내 입장과 다르면 적절하게 '노우'라고 말하고 이유를 설명하는 법을 터득해갔다.
무슨 일이든 그렇더라. 많은 연습과 경험이 쌓인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그때는' 어려운 일들이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솔직히 내 실력으로는 버거운 중요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프로젝트 미팅을 하면 늘 회의록(meeting minutes)을 정리하는 백인 조교가 있었다. 그런데 그날 그 조교가 결석을 했다. 그래서 미팅 주최자인 우리 과 학과장님께서 미팅 시작 전에 저더러 그날 미팅 회의록을 작성해서 보내달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날 미팅의 대부분의 시간은 뉴질랜드에서 오신 교수님 설명과 그분과의 질문과 응답으로 채워졌다. 영어권 모국어 화자들에게는 캐나다식이든 영국식이든 또는 뉴질랜드식이든 알아듣는데 큰 문제가 없겠지만 처음 뉴질랜드식 영어를 접한 나는 그분의 독특한 억양과 익숙하지 않은 발음을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또한 내용도 내가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결국 내 회의록 노트는 거의 텅텅 비어 있었다. 미팅 마지막 부분에서 학과장님은 내게 결석한 조교까지 포함해서 전체에게 회의록을 보내달라고 다시 한번 당부하셨다.
이 노릇을 어쩌란 말인가! 영어를 제대로 못 알아들었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없고... 회의 참석자들 중 조교라고는 딱 단 둘이었는데 한 명은 결석하고 그 다른 한 명이 나였으니 미팅 내용을 다른 교수님을 찾아가서 물어서 정리할 수도 없고... 고민 고민만 하다가 일주일이 지나갔다. 그러다 복도에서 학과장님과 마주쳤다. 영어를 못 알아 들었다는 말은 차마 못 하고 미팅 내용을 적은 노트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괜찮다고 하셨지만 그분의 순간 의아해하는 눈빛을 피하느라 내 얼굴은 화끈거리고 목소리는 기어 들어갔다. 영어 실력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못한 내가 너무도 부끄러웠다. 난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무슨 미팅이건 노트를 해두는 버릇을 길러왔다. 영어로 요약하고 정리하는 것도 많은 연습을 필요로 한다. 듣기만 하는 것과 정리를 해가며 듣는 것은 천지 차이이다.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참 많은 용기가 필요하더라.
아이들 둘이 다행히도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학교 공부도 성실하게 해서 본인들이 선택한 길을 무난하게 가고 있는 듯 보인다. 가끔씩 내게 자식을 어떻게 키웠냐고 묻는 엄마들도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속으로 말한다, '다 큰 거 아니고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어디까지 커야 아이들이 다 컸다고 말할 수 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배우자를 만나면 아이들이 다 큰 것인지? 아니 나 자신은 다 성장한 어른인지 그것조차도 잘 모르겠다.
아이들과의 대화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사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이들이 본인들의 고민을 엄마인 나에게 (다는 아니더라도) 털어놓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자식들의 고민을 듣노라면 나의 머리도 마음도 무거워진다. 물론 내가 해결을 하려고 조언을 하거나 해법을 고민하지는 않는다. 내 역할은 단지 들어만 줄 뿐이다. 그러나 나와 다른 세대에 살고 있고 나와 다른 경험들로 채워진 내 아이들의 고민들이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십 대 중반에 있는 아이들이 대학을 마치고, 직장 생활을 하고, 본인들의 힘으로 집도 사고, 어른으로 가는 길이 겉에서 보기에는 탄탄해 보인다. 그러나 내가 젊은 날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다른 이유들로 이 아이들이 고민하고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식이 있는 어미라는 자리가 나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추게 만든다. 혼자 살면 내 멋대로 나 하고 싶은 대로 살 수도 있는데 자식에게 부끄러운 부모가 되지 않기 위해서 절제해야 하고, 자식들에게 해가 가지 않도록 교만함을 멀리해야 한다. 따지고 싶고 파헤쳐서 내 권리를 찾고 싶을 때도 무뎌지려고 노력한다. 남에게 끼친 불편함이 나중에 부메랑이 되어 내 자식에게 돌아올까 봐서 가급적 남에게 곱지 않은 말, 해로운 말은 삼가려고 노력한다. 조금 손해가 나는 일이 있어도 아이들을 위해 덕을 쌓는다 생각하고 노여워하지 않으려 한다.
몸집은 나보다 더 크지만 아이들은 아직도 어른으로 가는 긴 여정 어딘가에서 아파하고 힘들어한다. 나는 맑은 유리알을 만지듯 조심조심 아이들과의 관계를 지켜간다. 때론 거칠게 스크래치도 만들고 이런저런 상처도 나고 또 극복해가면서 사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나의 무지하고 과한 사랑으로 아이들이 오랜 시간 아파하는 일은 만들지 말아야 하기에 오늘도 가고 있는 이 어머니의 길이 고단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무언가를 배우는 것, 나 자신의 부족함을 극복하는 것,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 그 어느 것 하나도 쉽게 얻어지지 않더라. 무던히 노력하고 세심하게 살펴가야 하더라.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 만만하지 않다. 그래도 오늘보다는 내일이 나을 거라는 기대가 있기에 쉽지 않은 것도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