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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아 SSunalife Jan 17. 2022

관계가 성장하려면 구체적인 의사소통이 필요하다.

의사소통은 마음의 문이다. 

성장하지 않는 관계는 무관심과 결별로 끝을 맺기 쉽다. 서로의 관계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적정 온도와 적절한 거리감의 균형을 필요로 한다. 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바람직한 의사소통이 필수다. 


나는 남편을 대학 1학년 때 만났다. 이 남자와 나는 상당히 나이 차이가 많이 나며 성장 과정, 생활양식 등 여러 부분에서 많이 다르다. 내가 보기에 내 남편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완죤 전형적인(?) 한국 남자다. 가족들에게 미안하다거나 고맙다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할 줄 모르고, 이 남자의 의사표현은 늘 모호하고, 본인은 화를 낸 게 아니라 하지만 내 눈엔 화를 자주 내고, 뭐든 간섭하고 가르치려 하고 등등. 그러나 매사에 예측 가능하며 뭐라 설명하기 힘들지만 뭉근한 정이 많고 늘 가족을 우선으로 여기는 남자다. 


내 딸은 만 두 살에 캐나다로 이민 왔고 두 살 반 차이 나는 아들은 우리가 캐나다로 이민 온 후에 태어났다. 이 아이들은 아빠의 한국말을 완벽하게 알아듣지 못하지만 아빠를 존중하며 엄마의 영어가 완벽하지 못하지만 본인들의 깊은 고민을 때때로 엄마와 상의하곤 한다. 


나는 내 남편과 두 아이들 사이 그 어디쯤에서 때로는 한국말로 한국인으로 살아가고 때로는 영어로 캐나다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한국인과 캐나다인 사이 그 어디쯤엔가 있는 나는 남편과 아이들 사이에서 성공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다음과 같은 행동들을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첫째, 의사소통을 구체적으로 하려고 한다.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는 유추하거나 가정하지 말고 물어보아야 한다. 모호한 배려는 오해와 상대의 자존감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Hall)은 '침묵의 언어'라는 책을 통해서 고맥락과 저맥락의 개념을 소개했다. 맥락이 높은 문화는 암시적이고 비언어적 신호에 의존하기 때문에 배경 정보가 없으면 메시지를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의 문화도 맥락이 높은 문화로 간주된다. 맥락이 낮은 문화는 명확한 의사소통에 의존한다. 내가 살고 있는 캐나다는 맥락이 낮은 문화로 간주된다. 그래서 명확한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부부간의 다툼은 가끔 너무도 사소한 심지어 상대에게 어처구니없는 헛수고를 하게 하는 일에서 시작할 때가 많고 그것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서로의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들기도 한다. 


뭐 사다 줄까? 하면 

아무거나 사 오세요. 


그렇게 말해 놓고 뭘 사다 주면 


왜 이걸 사 왔냐! 그렇게도 센스가 없냐? 눈치가 없냐? 너는 나를 아직도 모르냐? 


그럼 말을 제대로 하등가라고 하면 


너는 내가 꼭 말을 해야 아냐? 


우리가 신도 아니고 말이지 말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어찌 안단 말인지... 말을 안 해도 안다는 것은 평소에 나에게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야 한다는 것이 함의되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상대가 말을 안 해도 다 알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추상적이고 때론 이기적인 발상일 수도 있다. 


뭐가 필요하고 뭐를 도와주었으면 좋은지 구체적으로 밝혀라. 반대로 상대가 원하는 것을 유추하거나 가정하지 말고 물어야 한다. 문화적인 사고방식 차이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의사표현이 너무 노골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고 어색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족 간의 대화는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지 않도록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좋다. 


둘째, Yes와 No를 분명하게 하려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는 "네가 원하는 것이 무어냐?"라는 나의 의견을 묻는 질문도 내 의견을 표출할 기회도 적었다.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만 많았고 내 의견을 고집하지 않고 온순할수록 칭찬을 많이 들었다. 그렇게 20여 년을 살다 보니 설령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아도 내가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 내 자신조차도 모를 때가 많았다. 왜냐하면 그런 대답을 하고 결정하는 기회가 적었고 모든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내 주변(선생님, 부모 등)이 했기 때문이다. 내가 캐나다에 와서 제일 힘든 것은 '노우(No)'를 말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었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야. 다음엔 진짜 안돼! 


라고 해놓고 부모가 자녀들에게 그다음에도 똑같은 소리를 반복할 때가 많다. '안돼'가 '돼'로 바뀔 수 있음을 알게 되면 더 이상 '안됨"의 의미는 없어지고 만다. 한번 No는 진짜 No여야 No라는 말의 무게와 진지함을 알게 된다. 나 자신이 Yes와 No를 제대로 파악해야 남에게도 분명하게 Yes와 No를 쓸 수 있다. 한국의 문화는 경계가 모호할 때가 많다. 부부간의 경제구도, 책임과 역할 등 사랑과 이해라는 거대한 이름 아래 모호한 것들이 참 많다. 가족 간의 의사소통에서 Yes와 No를 분명하게 하면서 서로의 경계(Boundary)와 공간을 존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셋째, 의사소통을 할 때 긍정적 언어를 사용하고 긍정적 태도를 갖으려고 노력한다. 의사소통은 일반적으로 언어적 의사소통과 비언어적 의사소통으로 나눈다. 언어적 의사소통은 말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비언어적 의사소통은 몸짓이나 표정 등을 포함한다. 말만 하면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사람과는 누구도 같이 대화하기 싫어한다. 


이번에는 또 뭐? 너 그럴 줄 알았어!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의 언어로 다가오는 사람과 대화를 할 때 그 대화가 즐겁다. 


아 그랬구나! 너도 힘들었겠구나! 나는 몰랐네... 


의사소통에 비언어적 의사소통도 언어적 의사소통만큼이나 중요하다. 말문을 열기도 전에 벌써 인상을 찡그린다든지 상대를 비꼬는 표정을 한다면 누가 그 사람에게 마음을 열겠는가? 대화를 하려다가도 상대의 부정적 태도나 표정에서 말문이 턱 막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우리는 남의 이야기는 곧잘 듣고 남에게는 웃고 친철하면서 정작 내게 소중한 가족들의 이야기는 경청하지 않으며 불친절하고 무례할 때도 많다. 너무도 가까운 가족이기 때문에 가식적인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가족이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빛을 발하려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해 주어야만 가능하다. 노력하지 않아도 늘 내곁에 소중한 것들이 머물러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해선 안된다. 가족이라는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기 전에 놓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의사소통은 마음의 문이다. 가족들에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두고 긍정이라는 언어를 통해서 구체적인 대화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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