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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아 SSunalife Dec 14. 2021

자식들의 잔소리를 듣는 엄마들

식사 문화

잔소리란 '필요 없이 듣기 싫게 늘어놓는 말'을 뜻한다. 부모들의 지나친 잔소리가 자식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잔소리를 하더라도 어떻게 재치 있게 할 수 있나 또는 잔소리를 어떻게 해야 줄일 수 있는지 등을 다룬 책자들도 인터넷 정보도 많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알지만 실제 자식들의 이런 것 저런 것이 눈에 거슬리면 다시 잔소리 발동이 걸린다.


어제 다섯 명의 동갑내기들이 모여 브런치를 먹었다. 나이가 오십이 넘다 보니 자녀들이 대부분 대학을 다니고 있거나 이미 대학을 졸업했다. 나만 빼고 거기 있는 네 명은 아직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일상생활 얘기들을 하다 우리는 '자식들의 잔소리를 듣는 엄마 신세'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다 큰 자식들이 부모에게 잔소리를 한다는 얘기들이었다. 그들의 고민은 남편의 잔소리도 아니고 시어머니의 잔소리도 아닌 '자식들 잔소리'라고 농담 반 진담 반의 고민을 털어놨다.


한국 사람들이 캐나다로 이민 오게 된 것은 1960년대였다. 1960대 중반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한국 선교사들이었거나, 캐나다 사람들이 한국 아이들을 입양했거나, 또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캐나다 군인들의 한국 아내들이었다. 그때는 컴퓨터나 인터넷이 있던 세대가 아니라서 이민하면 고국과의 철저한 단절을 의미했다. 사오십 년 전에 이민 오신 분들은 자녀들이 영어를 완벽하게 하고 캐나다 문화에 완전히 흡수되어 캐나다인으로만 살기를 원했다. 그때의 한국은 세계에서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기 때문에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중요하다기보다 부끄러움이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민 1세 자신들도 캐나다 문화에 동화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며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류의 인기와 영향력은 대단하다. 한국의 경제력은 올해 영국 G7 정상회의에 초대되었을 정도이다. 이민 2세들은 다양한 방면에 진출하여 활약하고 있다. 이제는 한국어를 할 수 있는 것이 부끄러움이 아니라 도리어 직업을 찾는데 장점이 되고 있다. 2016년 캐나다 인구조사 기준으로 비시주에 한인 수는 한 7만여 명 된다고 한다. 그중에서 8천600명 (2016년 기준) 정도가 코퀴틀람(Coquitlam)에서 살고 있다.  코퀴틀람 한인 타운 가까이 살고 있는 나는 내가 캐나다에서 살고 있는지 한국에서 살고 있는지 가끔 구분이 안 될 때도 많다. 주변이 온통 한인 가게들이며 길을 걸으면 한국말이 앞 뒤에서 들린다. 골프장을 가도 온통 한국분들이다. 많은 한인 이민자들은 캐나다 현지 뉴스보다도 한국 뉴스를 보는 시간이 더 많을 때도 있다.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통해서 보고 싶은 한국 프로그램을 실컷 볼 수 있고 한국 노래도 실컷 들을 수 있다. 몸은 캐나다에서 살고 있으나 한국 사람들끼리만 뭉치고 한국말만 사용하고 그러다 보니 캐나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캐나다 문화를 익히거나 영어를 사용할 기회가 많지 않다. 그래서 캐나다에서 오래 생활하고 있으나 영어는 좀처럼 늘지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캐나다에서 교육받고 성장해가는 자녀들과 한국 식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부모 사이에 문화적인 차이가 커진다. 어려서는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공부며, 친구며, 청소며, 이런저런 일로 잔소리를 하는 주체가 되었으나 아이들이 커가면서는 반대로 자녀들의 잔소리를 듣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날 나눈 대화중 자녀들의 잔소리는 주로 먹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엄마: 저녁 먹어야지.  
자녀 1: 오늘 메인 디쉬는 뭐예요?
엄마: 그냥 대충 먹자.
자녀 1: 대충 뭘 먹어요?
엄마: 그냥 이것저것.
자녀 1: 이것저것 뭐 먹어요?  
엄마: 넌 왜 그리 궁금한 게 많니?
자녀 1: 엄마. 뭘 먹는지 좀 알려주시면 안 돼요?


엄마들: "애들은 저녁 먹자 하면 꼭 메인 디쉬(Main dish 주된 음식)를 물어요. 아니 우리 음식에 메인디쉬가 어딨어요. 그냥 이것저것 다 먹은 거지. 그런데 애들은 뭘 먹냐 이름이 뭐냐 꼬치꼬치 따져 물어서 매끼마다 머리가 아파 죽겠어요. 또 그런다고 뭐라고 하면 애들이 오히려 엄마를 가르치려고 들어요. 엄마는 왜 그렇게 하냐. 앞으로는 이렇게 해주면 좋겠다. 이렇게 하면 좋지 않겠냐 등등. 그냥 내가 알았다 하고 넘어가야지 안 그러면 갸들 잔소리가 끝도 없어요." 


사실 우리 집 아이들도 밥 먹자 하면 뭘 먹냐고 꼭 물었다 ㅎㅎㅎ. 나는 한 가지 특별한 메인 디쉬가 없으면 여러 가지 준비한 반찬들 이름을 다 말했다, "밥, 미역국, 김치, 깍두기, 계란찜, 멸치, 김" 이렇게... ㅋㅋㅋ. 그러면 아이들은 "와우. 엄마가 많은 것을 준비하셨네요" 하고 칭찬을 해준다 ㅎㅎㅎ. 나는 속으로 웃는다 '원래 있는 밑반찬에 계란 한 가지 더 추가했을 뿐인데...'


한국 음식은 보통 집에서 식사 준비할 때 밥, 국, 여러 가지의 반찬들이 있어서 뭐 딱 한 가지 꼬집기 어려운 음식 문화이다. 그러나 서양요리는 코스로 먹든 단품으로 먹든 메인 디쉬가 있다. 왜냐하면 여러 반찬들을 같이 먹는 문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캐나다 음식 문화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식사를 하자고 하면 그날의 주된 음식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음식 문화만이 아니라 언어 특성도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집단주의 유교문화는 내 엄마 대신 '우리 엄마'라고 하는 말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대충, 이것 저것' 하는 것들은 자세함이나 구체성이 부족한 두리뭉실한 표현들이다. 그에 반해서 개인주의 캐나다 문화는 더 구체적이고 자세한 표현을 통해서 의사표현이 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사람 이름이나 사물 이름 등을 대강 철저히 두리뭉실 부르지 않고 구체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오래전에 논문을 쓰기 위해서 한인 이민자 가족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그때 어머니께서 아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아들이 어머니를 무시하는 행동과 말을 많이 했단다. 그 어머니께서 가장 힘들어하셨던 부분이 아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옛날에 음식을 먹을 때 후르륵이나 쩝쩝 소리 내며 맛있게 먹는 것이 복이 들어온다며 어른들로부터 칭찬을 듣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먹을 것이 귀하던 가난했던 시절엔 배불리 먹는 것이 모든 사람의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양볼이 터져 나올 듯 음식을 가득 넣고 맛있게 먹는 것이 복을 부른다고 봤을 것이다. 지금도 한국 드라마에서 가족끼리 식사할 때 입에 음식을 가득 넣고 말을 하면서 먹는 장면들을 가끔 본다. 사실 한국 음식이 소리가 많이 날 수 있는 음식들이다. 뜨거운 국이나 깍두기, 나물 반찬 이런 것들은 소리를 안 내고 먹기에 정말 힘들다.


그런데 그 어머니와 아들이 같이 식사를 하면 아들이 어머니에게 씹는 소리를 너무 낸다고 화를 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들이 어머니에게 음식이 입에 있을 때 제발 입을 열고 말을 하지 말아 달라고 여러 번 당부했단다. 처음에는 남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편하게 아들과 밥을 먹는데 아들이 너무 예민하다고 생각하고 게으치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 되어 아들이 엄마랑 밥 먹기를 꺼려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단다. 그리고 그 아들은 어머니에게 왜 내 친구 집은 안 그런데 엄마는 그러냐 하고 불평하는 통에 어머니가 어느 날부터 아들에게 잔소리를 들을까 봐 매사에 조심하며 살고 있다고 했던 인터뷰였다. 나는 그날 인터뷰 도중 아들과의 관계를 얘기하시며 눈물을 보이신 그 어머니 생각에 잠을 이루기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그날 밤 나는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위한 잔소리인지 생각에 잠겼다.


나이가 들수록 자식들에게 대우받는 방법 중 하나가 잔소리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들 한다. 젊어서는 부모가 자식보다 경제적인 힘이나 능력 면에서 자식을 앞서지만 나이가 들면 자식들이 사회의 주역이 된다. 그러다 보면 반대로 자식들이 부모에게 잔소리를 하는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도 밖에 나가서 접하는 캐나다 문화와 집안에서 어머니가 실천하고 있는 문화가 많이 다를 때 자녀들은 어머니에게 묻고 수정해줄 것을 요청할 수도 있다. 이것을 어머니들은 자식들의 잔소리로 여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양쪽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이민자 1세대와 2세대 관계에서도 필요하다. 아이들이 부모를 이해하기 위해서 한국 문화를 더 알아가는 것도 중요하고, 부모들이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캐나다 문화를 더 이해하고 실천해가는 노력도 중요하다. 내게 익숙하고 편리한 습관들만 고집하는 닫힌 마음으로는 상대의 얘기가 다 잔소리로만 들릴 것이다. 나는 그날 엄마들에게 아이들의 이야기들이 필요 없이 듣기 싫게 늘어놓는 말인지 아니면 필요하지만 내게 익숙한 습관들을 버리기가 싫어서 듣기 싫어하는지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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