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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아 SSunalife Jul 31. 2022

갱년기가 무더위를 만나면

갱년기, 수박 

2022년 캐나다 밴쿠버의 여름 

7월이 되어서도 서늘한 기온이 여름인지 가을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야채와 과일이 제대로 익어야 할 텐데 하며 걱정했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이번 주 초부터 시작된 폭염(heat wave)은 낮 온도가 섭씨 29-35도 사이를 오갔다. 


말로만 듣던 갱년기가 내게 찾아온 지 한 일이 년 된 것 같다. 

실은 갱년기쯤이야 했는데... 

세상에는 아무것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갱년기는 다양한 방법으로 나의 시간들을 괴롭혔다. 


잠시나마 무언가에 집중하거나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이 생기면  

얼굴이 붉으락 거리고 

무슨 큰 잘못이나 저지른 것처럼

온몸에 식은땀이 나고 

잠들기 전에 침대에 누우면 

손발이 더워서 벌떡 일어나 몇 번이고 찬물에 손을 씻어야 하고 

울컥울컥 밀려오는 뜬금없는 감정들은 

밖으로 품어 나오지 못하고 억눌렸던 화인지 아님 참아왔던 눈물인지 


그렇게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런대로 그렁그렁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데... 


7월의 늦더위가 나의 갱년기에 불을 질렀다. 


우리 집은 남향이고 

지하는 한 여름에도 시원해서 

에어컨이 필요 없이 살았다. 


그런데 나의 갱년기는 에어컨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남편이 코스코에 가는 길에 부탁을 했다. 

"작은 사이즈 에어컨 한 대 사 오세요"

"웽? 무슨 에어컨?" 


그러더니 정말로 안 사 왔다. 

속으로 패주고 싶었다. 


나의 갱년기가 무더위를 만나니 가관이다. 

보통 때 느끼는 더위의 두 배가 된다. 

눈. 코. 입이 하루 종일 벌려있는 기분이다. 

남편이 말만 시키면 이때다 하고 쏘아붙인다. 

음식들과 재료들이 두서없이 쌓여있는 냉장고와 냉동고 안을 보면 짜증이 난다. 

좀 정리할까 생각하다가도 "아니다. 나중에" 하고 문을 닫는다. 

집안 곳곳에 오래된 물건들이 너무도 많다. 

도대체 이 많은 것들을 언제 정리하나...

꼭 필요한 것들만 두고 버리고 싶은 것들이 참 많다. 

나이를 먹으면 사람들과의 적절한 관계 정립이 필요하고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과는 헤어질 줄 알아야 

단촐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텐데. 

세월과 욕심들이 뒤엉킨 때 묻은 많은 잡동사니들.

콜튼은 이 더운 와중에도 아침저녁으로 산책 나가자고 조른다. 

아! 남편과 나의 냥이 콜튼. 나의 갱년기는 이 두 남자들이 버겁다고 한다. 


남편은 에어컨 대신 내 머리통 두 배만 한 수박을 사 왔다. 

7-8불 하던 수박 값이 12불(한국 돈으로 만 이천 원 정도)로 올랐다며 투덜거렸다. 

커다란 수박이 냉장고 한켠에 자리를 잡으려니

대신 다른 놈들이 이 무더위에 냉장고 밖으로 나가야 했다. 

다음 기회에 먹어야지 하고 남겨두었던 

그리고 잊혀버린 몇 가지 음식들이 이참에 정리가 되었다. 


시원해진 수박을 남편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썰어주었다. 

무더위에 수박은 더할 나위 없이 맛났다. 


잘 익은 시원한 수박을 먹으니 

내 몸과 마음 안에 요동치던 열기운이 조금은 내려간 듯했다. 

남편을 한 대 패주고 싶었던 마음도 누그러졌다. 

12불짜리 수박 한 덩이에 폭행(?)을 향한 욕망이 사그라졌다 ㅎㅎㅎ 


내 갱년기는 말한다. 

더위엔 수박이 최고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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