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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연희 Nov 20. 2023

7-5. 모세_광야 유랑과 가나안땅 앞에서

:  구리뱀, 모세의 죽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성막과 기물을 완성한다. 여태껏 신상도 신전도 없이 이스라엘인과 유랑하던 하느님은 이제 성막에 거하며 그곳을 덮은 구름으로 백성들을 인도하신다. 하느님의 명에 따라 백성들은 열 두 지파의 인구를 조사하고, 지파별 야영 위치와 행진 순서를 정한다. 파란 광야에 이르러 가나안에 보낸 정찰대가 돌아와 나쁜 말을 퍼트리자, 두려워진 백성들은 반란을 일으키며 이집트로 되돌아가려고 한다. 이 일로 하느님의 노여움을 산 이들은 눈앞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을 광야에서 떠돌게 된다. (여호수아와 칼렙을 제외하고) 이집트를 탈출한 세대가 다 죽고 난 후, 모세는 요르단 건너편 모압땅에서 유언과 당부의 말을 거듭 전한다. 결국 120세를 일기로 모세는 가나안이 내려다 보이는 모압땅 느보산(네보산)에서 하느님의 부름을 받고 생을 마감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이 계속되는 광야의 여정에서 가장 자주 다루어진 주제는 구리뱀의 기적이다. 힘든 일정이 지속되자 백성들은 하느님과 모세를 탓했고, 이에 하느님이 불뱀을 보내 많은 사람들이 물려 죽는다. 백성들이 회개하고 모세가 기도로 간청하자 하느님은 치료법을 알려주셨다. 말씀대로 모세가 구리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고 뱀에게 물린 사람마다 쳐다보게 하니 그들이 살게 되었다.


아뇰로 브론치노, <구리뱀>, 1540-45년, 프레스코, 300 x 380cm, 엘레오노라 예배당, 베키오 궁전, 피렌체


아뇰로 브론치노(Agnolo Bronzino, 1503~1572)가 피렌체에 있는 베키오 궁전에 그린 프레스코화다. 입구 양 가에는 독사에 물려 죽은 사람들이 널브러져 있다. 시퍼렇게 변한 피부가 드러난 알몸으로 묘사해 사건의 참혹함을 대면케 한다. 중경에 몇몇 사람들은 격렬하게 움직이며 뱀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멀리 언덕 꼭대기에는 구리뱀이 구불구불 감긴 T자형 막대기가 세워져 있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여 구리뱀을 가리키며 바라보는데, 특히 아이를 돌보는 엄마들과 뱀에 물린 병자를 데려온 여성이 눈에 띈다.


브론치노의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초연하고 고혹적인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런 점이 피렌체 귀족들에게 어필해 초상화 주문이 많았고, 1539년부터 피렌체 메디치 가의 코시모 I세(Cosimo I de' Medici, 1519~1574)의 궁정화가가 되었다. 코시모 I세가 거주하기 시작한 베키오 궁전(현 시청사)에 부인을 위한 예배당인 엘레오노라 채플(Eleonora Chapel)은 이스라엘 민족의 이집트 탈출과 광야의 여정으로 장식되었다. 위의 프레스코화 맞은편 제단 쪽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 이후의 애도 장면이 배치되었다. 게다가 언덕 위의 구리뱀은 십자가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구약에서 백성들을 살린 구리뱀 사건은 예수의 죽음을 통한 인류 구원을 예시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치유의 장면은 의사를 의미하는 메디치 가문의 이름과도 연관된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요 3, 14)



안토니 반 다이크, <구리뱀> 1620년, 캔버스에 유채, 205 x 235cm,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안토니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 1599~1641)<구리뱀>은 가까운 거리에서 사건을 재현해 실물 크기의 인물들이 화면을 가득 메웠다. 먹구름 가득한 하늘에서 불뱀이 떨어지고, 왼쪽에는 불뱀을 걸어 놓은 막대기를 쥔 모세가 오른쪽에는 그것을 향해 다가오는 백성들이 보인다. 중간에 뱀에 휘감긴 알몸의 사내가 무릎을 꿇고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무리의 선두에 얼굴에 피를 흘리며 절박하게 두 손을 뻗은 사내가 눈에 띈다. 이어 시선은 오른쪽 끝에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아름다운 금발의 여인으로 향한다. 그녀의 시퍼런 얼굴과 보랏빛 드레스가 빛을 받아 반짝이고,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살리기 위해 애쓰는 몸짓이다. 뒤쪽의 사내는 그녀를 부축해 들어 올리고, 옆에 용감한 여인은 뱀을 낚아채고, 붉은 옷의 남자는 그녀의 얼굴을 구리뱀 쪽으로 향하게 한다. 죽음으로 내몬 불뱀의 형상으로 치유되는 사건은 결국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한다.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민 21, 8)


반 다이크는 17세기에 전유럽에서 가장 유명했던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의 안트베르펜 작업장에서 일하며 일치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주문이 많아 공장식으로 그림을 생산했던 루벤스의 작업장에서 반 다이크는 고난도의 인물과 얼굴을 도맡았다. 스무 살의 화가가 그렸다고 보기에 놀라운 이 작품도 인물 위주로 화면이 구성되었다. 여기서 뿔처럼 솟아오른 머리의 모세는 주인공이 아니다. 그림의 초점은 불신과 불평의 죄로 하느님이 내린 형벌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백성들이다. 반 다이크는 인물의 표정과 몸짓의 언어를 통해 그들의 절박함과 무기력함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섬세한 인물 묘사에 뛰어났던 반 다이크는 1632년 영국의 찰스 1세의 궁정화가로 임명되었고, 왕족과 귀족의 우아하고 기품 있는 초상화를 발전시키며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루카 시뇨렐리, <모세의 증언과 죽음>, 1481-2년, 프레스코, 350 x 572cm, 시스티나 예배당, 바티칸


제작자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시스티나 예배당을 장식한 이 프레스코화는 모세의 생애 마지막 여정을 보여준다. 오른쪽 높은 곳에 앉아 책을 든 모세는 요르단 건너편 모압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이야기한다. 지난 광야 생활을 뒤돌아보며 그들에게 거듭 당부하는 가르침과 유언의 말씀(신명기) 일 것이다. 유일하신 하느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준수하면 축복을 받는다는 신명기의 핵심은 구약의 정수로 여겨진다. 그의 발치에는 증언판이 든 계약의 궤가 놓여 있다. 왼쪽 편에 모세는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지도자의 홀을 건넨다. 자신의 과업을 성취할 여호수아에게 모세는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신 31, 7-8). 중앙에 느보산 꼭대기에서 천사는 모세에게 약속의 땅을 가리키며 보여준다. 왼쪽 원경에서는 사람들이 모세의 죽음을 애도한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신 6, 4-5)



벤자민 웨스트, <약속된 땅을 보는 모세>, 1802년, 목판에 유채, 50.2 x 73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이집트 탈출과 광야 유랑의 긴 여정을 이끌었지만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던 모세의 마지막은 안타까움과 여운을 남기며 화가들에게도 영감이 되었다. 그 가운데 벤자민 웨스트(Benjamin West, 1738∼1820)의 작품은 대형 유화를 위한 완성작에 가까운 유화 스케치다. 산 꼭대기에 걸터앉은 모세를 중심으로 주변에 구름과 천사가 그를 둘러싸고 있다. 펄럭이는 하얀 튜닉과 큰 날개를 가진 아름다운 천사들은 모두 저 멀리 가나안땅을 가리킨다. 모세 뒤쪽에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도 사선으로 화면을 가로지르며 그곳을 비춘다. 두 팔을 든 모세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지긋이 바라본다. 요르단강을 건너고 약속의 땅을 보게 해 달라는 모세의 간절한 기도(신 3,25)는 반 만 성취된 셈이다. 백성들의 죄로 인해 안타깝게도 모세는 그곳에 들어갈 수 없었다(신 32, 49-51).


미국 출신의 화가는 영국에 정착해 조지 3세가 윈저궁에 설립하려던 채플(Chapel of Revealed Religion)을 장식하는 프로젝트에 30년을 매달렸다. 35점의 대형 성서화를 완성했지만, 프로젝트가 중단되며 웨스트의 작품은 여기저기로 흩어져 버렸다. 마치 고생의 여정은 다하고 목적지에 들어가지 못한 모세의 운명처럼, 미술 프로젝트도 후원자의 재정과 지원이 끝까지 지켜지지 않으면 원래의 맥락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     


“저것이 내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너의 후손에게 저 땅을 주겠다.’ 하고 맹세한 땅이다. 이렇게 네 눈으로 저 땅을 바라보게는 해 주지만, 네가 그곳으로 건너가지는 못한다.” (신 34, 4)



알렉상드르 카바넬, <모세의 죽음>, 1851년, 캔버스에 유채, 279.4 x 391.2cm, 다헤시 미술관, 뉴욕


프랑스의 고전주의 화가 알렉상드르 카바넬(Alexandre Cabanel, 1823~1889)은 모세의 마지막을 거대한 캔버스에 담아냈다. 산 꼭대기에 모세는 거의 누웠고, 주변에 두 천사가 그를 붙잡고 보살핀다. 모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천사들과 함께 등장한 하느님이 약속의 땅을 가리킨다. “이렇게 네 눈으로 저 땅을 바라보게는 해 주지만, 네가 그곳으로 건너가지는 못한다.”(신 34, 4)는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수용하듯, 모세는 두 팔을 벌리고 있다. 위용을 드러낸 하느님과 그를 둘러싼 천사들의 모습은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에 그린 아담을 깨우는 창조주의 모습과 유사하다. 더불어 라파엘로의 <에스켈의 환상>에서 천사를 대동한 하느님을 인용한 것으로도 지적된다.


이 작품은 카바넬이 1845년 아카데미 최고의 영예인 로마상을 받고 5년간 이탈리아에서 작업하며 그의 예술적 성취를 증명하기 위해 제출한 마지막 작품이다. 화가는 형제에게 쓴 편지에 3, 4m에 달하는 거대한 캔버스에 모세의 죽음을 다룬 작업이 엄청난 부담이자 어려운 도전이었다고 고백했다. 카바넬이 여기에 담아내고자 했던 것은 ‘하늘과 지구의 영원한 주인인 하느님의 이미지였고, 그 옆에 최상의 창조물인 모세가 하느님과의 대면을 견뎌내는 것’이었다. 언급한 바와 같이 카바넬은 로마와 피렌체에서 본 르네상스 대가들의 성화와 유사한 데다가 희미한 아기 천사들, 형체가 뒤엉킨 구성으로 인해 비평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막 떠오르는 20대의 화가가 가슴으로 이해하고 표현하기는 어려운 장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카바넬은 신과 모세가 마주 보는 독특한 구성에 화려한 색채의 조합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더했다. 수평선에 번지는 석양빛은 그늘 속에 있는 모세의 저무는 운명을 암시한다.

 



모세를 통해 하느님 나라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유케 되었고 율법이 세워졌으며 약속된 땅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그 여정에서 명령에 따르지 않았을 때 야훼 하느님은 가차 없이 벌하시고 인간처럼 진노하셨다. 동시에 고통에 울부짖는 이들의 소리를 듣고 불쌍히 여기며 그들을 위해 직접 싸우시기도 했다. 고대 근동의 신들은 위계가 엄격했고 감히 인간이 만나기 어려운 존재였지만, 모세의 유일한 하느님은 인간과 교제하고 돌보시며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하시는 독특한 신이다.  


모세는 구약을 대표하는 지도자이자 창세기에서 신명기에 이르는 모세오경의 기록자이며, 신과 인간 사이의 첫 중재자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특별한 인물이 아니었다. 소심한 데다 불끈하는 성격에 말도 잘 못했다. 하지만 하느님이 선택하셨고 고난의 시간을 통해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갖춰가게 되었다. 버려졌지만 운 좋게 이집트 궁정에서 교육을 받았고, 분노를 이기지 못한 살인으로 광야로 도망쳐 40년을 목자로 지낸 후 하느님을 만나 소명을 받는다. 이집트 탈출과 가나안으로의 여정을 이끌며 백성들의 죄로 40년을 광야를 떠돌다가 모세는 약속의 땅을 목전에 두고 사망한다. 굴곡진 삶을 살았지만 모세는 ‘주님께서 얼굴을 마주 보고 사귀시던 사람’(신 34, 10)으로 놀라운 위업을 이룬 복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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