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
가을방학 전 읽었던 책에서 경제적 자유, 즉 나에게는 퇴직의 명분이라고 말하고 싶은 그 꿈을 위해서 블로그를 시작하라는 내용의 글을 읽었다. 나름 일리가 있는 말 같았다. 10년 전에 하던 블로그를 오랜만에 로그인을 했다. 근데 뭘 쓰지?? 작년 이맘때쯤 블로그를 시작했다고 말한 회사 동생이 생각이 났다. 세일즈팀으로 입사한 5살이나 어린 동생이었던 회사 친구 M은 성격이 진짜 좋았다. 코로나가 터지고 한창 모두가 힘들었을 무렵 M은 팀장 때문에 더욱 힘들어했다. 결국 M은 회사를 떠났다. 우리는 가끔 카톡을 주고받던 사이었다. 그러다가 회사에서 친해진 친구, J가 집으로 초대를 하여 M을 다시 만났다. 그렇게 좀 더 친해졌고 더 자주 연락을 하는 사이가 되었다. 블로그 하면 생각이 나는 그녀에게 카톡을 했더니 M은 베트남 다낭을 여행 중이라고 했다. 블로그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었다. 모처럼 한 여행일 텐데 M의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아 서울에 돌아오면 보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용산에서 만났다.
우리를 집으로 초대해 줬던 J와 또 현회사 동료이자 J와 M과 친분을 만들어준 회사 언니, K 이렇게 40대 싱글 여자 넷이 용산에서 오랜만에 만났다. 1년 동안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블로그를 하던 M은 파워블로그까진 아니었지만 하루에도 수백 명이 방문해서 글을 읽는 블로그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나에게 그녀는 슈퍼블로거였다. 용산에서 조금은 한적한 카페에 앉아 M의 블로그 강의를 들었다. M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에 감탄했다. 너무 멋졌다. 늘 작심삼일일 뿐만 아니라 말만 뱉어내는 나와는 다른 유형의 사람이었다. 늘 내가 부러워하고 따라 하고 싶어 하는 그런 유형의 사람. M의 명강의를 듣고 나도 조금은 용기가 났다.
그렇게 며칠 뒤에 블로그를 재정비하고 글을 올렸다. 그리고는 우리 넷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방에 링크를 올리면서 나는 드디어 블로그를 시작했다는 것을 알렸다. 나를 시작으로 K 언니도 블로그를 개설하고 포스팅을 올리기 시작했다. 회사일에 치여 하루하루 버텨내는 J는 묵묵히 우리를 응원해 줬다. 일주일이 지나고 나는 블로그라는 것과는 좀 맞지 않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너무 짧은 시간이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블로그는 대부분 맛집, 여행 등의 리뷰가 많았는데 나는 책을 읽거나 밥을 해 먹거나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하루인 것 같았다. 특별한 요리 레시피가 있지도 않았다. 요리를 하는 중간중간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번거로운 일이었다.
나는 다른 방법을 생각했다. 그래서 스마트폰을 고정해 놓고 촬영할 수 있는 거치대를 구매했다. 물론 이 거치대의 리뷰도 성실하게 블로그에 올렸다. 아마 마지막 글이었던 것 같다. 새로운 글을 올리나 올리지 않나 방문자수는 늘 한자릿수였다. 나보다 며칠 늦게 시작한 K언니는 나의 10배 이상의 방문자수가 금방 늘었다. 그리고 언니의 글은 너무나도 블로그에 맞춤형이었다. 자세한 설명을 하는 것이 회사 업무 내용 중 하나였던 언니는 십여 년간 회사에서 쌓은 노하우를 마음껏 블로그에 펼쳐냈다. 마음 깊은 곳에서 K와 M에게 박수를 쳤다. 그녀들은 성실했고 부지런했다. (정말 나와는 다른 인류였다.) 블로그를 하겠다는 결심은 그렇게 나에게 스마트폰 거치대를 남겼다.
나는 방학중이고 뭐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할 것도 없는데 그동안 만들어 보고 싶었던 빵이나 좀 구워볼까? 요리를 하면서 유튜브를 틀어놓는 나에게 소리 없는 순간을 주고 싶었다. 아! 나 거치대 있지! 촬영을 시작했다. 스마트폰은 촬영을 하고 있으니 유튜브의 소리가 없었고 촬영 중이니 나는 조용히 요리에 집중을 했다. 빵을 만드는 중간중간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되었다. 그냥 모든 과정을 촬영하고 편집하면 그만이었다. 반죽하지 않아도 되는 쉽다는 덴마크빵이 오븐밖으로 나왔다. 좀.. 탔다. 그리고 조금은 망쳤다. 물론 좋은 밀가루를 썼고 맛도 나쁘지 않았지만,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올라오는 멋진 빵과는 거리가 멀어도 아주 멀었다. 내가 일상을 올리고 있는 인스타그램은 유명하지도 않고 친구들이나 사부작 보는 그런 거니까 나는 크게 고민하지도 않았다. M이 알려준 어플을 이용해서 영상을 편집했다. 많이 고민하지도 않고 그냥 대충 쓱싹쓱싹 편집을 했다. 그리고는 내 계정에 업로드를 했다. 생각보다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과정이 재밌었다. 귀찮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귀찮지가 않았다. 그러고는 책을 읽었다.
한 참뒤에 심심해서 들어간 인스타그램에는 알람이 떠 있었다. 내가 올린 릴스가 조회가 2천 명이 넘었다는 것. 아무것도 아닌 이걸 2천 명이 넘게 봤다고? 물론 유명 인플루언서나 팔로워수가 많은 계정들에게는 별거 아닌 조회수겠지만 친구들만 보는 내 인스타그램의 릴스 조회수 입장에서는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알다가도 모를 알고리즘의 세계다.
가을 방학 중에 내가 재밌어하는 일을 또 하나 찾은 것 같다. 이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방학을 보내고 있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