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주말
주말이면 조카 1호가 놀러 온다. 시간이 되면 금요일 저녁에 동생부부가 퇴근을 하고는 짐을 싸서 우리 집에 데려다준다. 그렇지 않으면 토요일 아점을 먹고는 짐을 싸서 우리 집에 데려다준다. 짧으면 하룻밤을 자고 연휴가 있으면 3박 4일 정도 우리 집에서 나와 함께 지낸다.
언제부터 우리 집에서 잤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마도 조카1호가 6살쯤부터였던 것 같다.
갓난쟁이일 때부터 내가 재웠지만, 그래도 자기 집이 아닌 고모집에서 잠을 자는 건 힘들거라 생각했는데 처음 우리 집에서 잤던 날도 아무렇지 않게 잘 잤던 것 같다.
주말이면 조카 1호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느라 장을 보고 조카와 저녁을 먹고 조카 1호가 씻는 동안 난장판이 된 거실을 정리하고 잠자리를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고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인다.
조카 1호는 영화를 참 좋아하는데, 저녁이면 간식과 함께 영화를 한 편 본다. 조카 1호가 영화를 볼 때면 같이 앉아 영화를 보기도 하고 그 시간에 내가 씻기도 한다.
조카 1호를 재우다 보면 나도 어느새 스르르 잠들어 버리고 아침 일찍 일어난다. 이젠 잠이 줄어든 나는 아른 아침 거실로 나와 책을 읽고는 아점을 준비한다. 전날 조카 1호가 주문한 대로 바삐 움직인다.
"고모 내일은 밥으로 줘."
"고모 내일은 오믈렛 먹고 싶어."
"고모 내일 아침엔 빵으로 줘."
구체적인 듯하면서도 구체적이지 않은 주문에 늘 메뉴를 고민한다. 아점을 먹고 준비해서 도서관에 다녀와선 같이 동네 단골카페에 가서 책을 읽거나 주중에 해야 하는 숙제를 다 못했을 경우, 주말에 나와 함께 밀린 숙제를 한다. 그러다 보면, 동생부부가 집에 들러 조카 1호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간다.
주말마다 오던 조카 1호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방문으로 이번 주말에는 우리 집에 오질 않았다. 조카 1호가 오지 않은 이번 주말은 평일의 우리 집처럼 아무 소리 나지 않는 조용한 집이 된다.
아침 일찍 떠진 눈을 애써 외면하며 침대에서 뒹굴다 다시 스르르 잠이 든다. 한 시간 남짓 더 자고는 결국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늦은 운동을 다녀와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혼자서 도서관에 다녀오고 혼자서 단골 카페에서 책을 읽는다.
비가 오는 오늘은 창틀을 닦고 온 집을 손으로 물걸레질을 했다. 라디오처럼 틀어 놓는 유튜브도 껐다. 다음 주엔 크림파스타를 주문했으니, 열심히 평일에 일하고 운동하고 책 읽고 주말엔 조카 1호와 신나게 싸우고 웃고 해야겠다. 조카 2호도 불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