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남편 말이에요...
저의 남편은 다정한 사람이에요. 사람마다 다정함을 느끼는 일상의 조각을 다를 테지만요. 저에게는 남편의 다정함이 사랑의 마음을 일상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느껴요.
언제고 묵묵히 저의 감정이나 상황들을 기다려주고, 세심하게 필요한 것을 캐치해서 말하기도 전에 준비해 주는 사람. 평생 내가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왔던 삶을 더욱 밝혀주는 사람. 각자가 잘하는 것을 하고 살면 된다고 하면서도 궂은일은 온통 자신이 해치우는 사람.
음식물 쓰레기를 비롯한 쓰레기를 한 번도 버려본 적이 없다거나 청소, 빨래, 설거지를 안 하는 것으로 다정함을 말하기에는 제가 누리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먹고 싶은 요리는 언제든지 다음날 먹을 수 있는 밍슐랭(제이름 한 글자를 본떠 넣었습니다) 레스토랑이기도 하고, 깔끔하고 잘 정돈된 집을 최대한 저의 동선에 맞추어 늘 수정해서 매일 더 편안한 삶을 살 수 있기도 해요.
그런데 이렇게나 완벽한 남편이 딱 하나, 돌변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어요. 방금 제가 쓰는 글을 보고 가더니 남편 욕하지 말라며 장난스레 찌르기(?)를 하고 갔는데요. 그래도 돌변은 맞으니까 꿋꿋이 써 봅니다.
남편은 요리할 때면 유독 예민해져요.
평소에는 배를 만지며 장난치거나 갑자기 안으면 놀라긴 해도 순순히 있거든요. 제가 그동안 그렇게 교육시킨 것도 있겠지만요? 그런데 요리할 때는 움찔할지언정 조금은 딱딱한 어투로 이렇게 말해요.
저리 가~
사실 평소에도 대답을 워낙 단답으로 하는 사람이라 문제 될 것은 없긴 하지만요. 오히려 항상 짧게 말하기에 남편말해석 1급 자격을 보유하는 사람으로서 말속에 섞인 뜻을 간파할 수 있어요. 분명 엄~청나게 귀찮아하고 있다는 거죠.
하지만 저희는 서로의 사랑을 종종 시험하곤 해요. 가장 귀찮을 상황, 남편은 요리하고 저는 일할 때, 서로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져주는지 보는 거죠. 보시는 분들마다 다르게 생각하실 수 있지만, 저희는 정말 이렇게 살면서 행복하거든요.
아무튼 남편이 귀찮아하며 딱딱하게 말하면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다정하게 해 줘야지!
저희 부부의 규칙 중 누구 한 편이 다정하게 혹은 친절하게 해 달라 요구하면, 무조건 들어줘야 하는 게 있어요. 희한하게 아예 규정한 게 아님에도 무언의 약속처럼 되어버렸달까요ㅎㅎ 요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더라도 예외는 없는데요. 그러면 한창 요리에 집중한 남편이 하는 말이 또 재밌습니다.
저리 가야지? 위험하니까 저리 가라고 했지~ 위험하다고 말했잖아요?
왠지 이 악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조용히 자리는 피했지만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처음에 말한 '저리 가'와 크게 다를 것 없지 않나요?ㅋㅋㅋ 남편은 하나를 말하면 정말 하나만 듣는 사람이거든요. 입력을 하려면 명확한 단문으로 짧게 머릿속에 넣어줘야 합니다. 이번에는 입력을 좀 잘못 했던 것 같긴 하네요 :)
이런 반응이 재미있어서 자꾸 건들고 관심을 달라 요청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한데요. 물론 저도 바쁘고 위험한 상황에서는 절대 귀찮게 하지 않아요. 하지만 앞으로 서로에게 집중을 못할만큼 바쁘고 위험할 상황은 아예 없기를 바라는 욕심도 조금은 있네요ㅎㅎ
저희 부부는 결혼 3년 차로 여전히 행복한 신혼인데요. 서로의 관계가 좋아서인지 이렇게 남편과의 이야기를 쓰는 게 정말 재미있어요. 글 쓰면서 이 사람에 대해 다시 한번 알아가고 또 생각하게 되는 것 같고요.
앞으로의 삶이 어떨지는 모르지만요. 가끔 식당에서 성인 자녀가 있어도 애정이 묻어나는 중년 부부들을 보다 보면, 또 자신감이 생기기도 합니다. 저희는 평생 오래오래 함께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 거고요♥
# 저의 남편은 주부로 살고 있습니다. 아래의 매거진에는 남편이 주부가 된 이유, 그리고 주부 남편을 보는 가장 아내의 시선을 담은 글을 연재 중입니다. 관심 있으시다면 구독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