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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Nov 14. 2023

여행의 후유증은 다시 떠나고픈 마음이라서

결국 다시 치앙마이로 왔다

4년 전 10월 중순의 어느 날, 나는 노트북에 작은 캐리어 하나를 들고 훌쩍 치앙마이로 떠났다. 호기롭게 병원을 퇴사하고 숨가쁘게 산지 딱 1년 정도 되던 해였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지쳐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이십대 중반의 찬란하고 아름다운 시절이었건만, 나는 퇴사하고도 잘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에 무얼 해도 만족하지 못했다. 정부 지원을 받는 스타트업 팀에 합류하면서 쉽게 듣지 못할 교육도 받았고, 개인 프로젝트로 시작한 크라우드 펀딩도 성황리에 진행 중이었다. 크라우드 펀딩의 내용도 완성되어 퇴고만 남겨둔 상황. 그럼에도 마음은 한시도 편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나는 계속해서 다른 일을 찾았고 어떻게든 할 일들을 만들었다. 스타트업에서는 만들고자 하면 일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그 때 알았다.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일에 치이던 나는 문득, 떠나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간호사로 일하며 스케줄표를 받자마자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던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도망치고 싶다. 사라지고 싶다.



나를 필요로 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좋은데, 이상하게 그게 또 싫은 기분. 병원을 퇴사하면서 아무도 날 찾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감정이었다. 충분히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일을 시작해서였을까. 나조차도 내 마음을 알 수 없었다.



이런 내 마음을 읽은 건 알고리즘이었다. 주변에 한달살기를 가본 사람도 없고 이야기도 들은 적도 없었는데, 어느 날 나에게 한달살기라는 단어가 들어왔다. 4년 전에는 한달살기가 막 유행하기 시작한 때였고 아이들의 영어 교육을 위한 지역이 더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혼자인 여행자들의 선택지는 주로 치앙마이나 몰타 혹은 우붓이었다.



나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몰타가 싸다고 해도 유럽은 동남아보다 비싸니 제외되었고, 우붓은 사진만 봐도 완전히 숲속에 둘러싸인 곳이라 벌레가 많아도 너무 많을 것 같아서 탈락. 결국 내 선택은 치앙마이가 되었다. 몇 주 뒤, 정말 많은 것들을 마무리하고 나는 치앙마이로 떠났다.








내가 살았던 콘도



내게 치앙마이는 휴식이었다. 조금은 나를 내려놓고 편히 쉴 수 있었던 곳. 숙소를 잘못 구한 탓에 그랩 택시를 타지 않고는 시내로 나갈 수 없고, 가장 가까운 편의점도 15분을 걸어 나가야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에게는 오히려 좋은 위치였다. 숨어있기에 딱 안성맞춤이었던 공간.



그렇다고 집안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집에만 있고 싶을 때는 온종일 배달을 시켜 먹으며 콕 박혀 있었지만, 밖에 나가고 싶을 때면 노트북 가방을 이고지고 나가 12시간을 바깥에만 있기도 했다. 삼시세끼에 디저트까지 배달을 시켜 먹어도 하루에 만 원도 쓰기 어려웠고, 바깥에 나간다고 해서 크게 비싼 것도 아니었던 그때의 치앙마이.




혼자서 참 열심히도 다녔다 :)



혼자가 심심할 때즈음 작게 운영하던 블로그에 댓글을 달아준 분과 동행하기도 했다. 승무원을 퇴사하고 외국계 기업에서 비서 및 통번역 일을 하던 언니였는데, 간호사를 퇴사하고 다른 일을 해보려는 나와 너무나도 잘 맞았다. 언니는 일하며 여행 중이었기에 시간이 아주 많지는 않았고, 그래서 오히려 매일 보지 못하니 만날 때마다 반갑고 재미있었다.



아무리 쉬러 왔다지만 유명한 곳을 한 군데는 가야하지 않을까 고민하던 중 야경이 예쁘다는 곳도 가보기로 했다. 운좋게 온라인 카페에서 동행을 구하는 분들을 찾았고, 얼떨결에 생각지도 못한 몬쨈과 푸핀도이라는 유명한 곳들도 가게 되었다. 만나보니 내가 가장 나이가 많아 놀라기도 했지만, 썩 밝지 못한 상태였던 내게 활기를 불어넣어준 친구들이었다. 날씨 운도, 교통 운도 없었던 탓에 대부분의 일정이 사실상 망하긴 했지만 함께 한 시간과 도이수텝의 야경은 감히 환상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떠나오기 며칠 전 발목을 접질려 보호대를 차던 것마저 추억이 되었다



혼자 오롯이 한달을 보내는 여행이 외롭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생각보다 할 것은 많았다. 투어했던 친구와 러이끄라통 축제도 다녀왔고 언니의 동행들과 재즈펍도 다녀왔다. 우연히 펭수에 빠져 입덕 초기 밀린 영상들도 봐야 했고, 아직 펀딩이 진행 중인 책의 퇴고 및 디자인도 마무리지어야 했다. 연락이 오는 출판사들과의 전화 미팅도 있었고, 이후에 무엇을 하며 먹고 살지에 대한 고민을 할 시간도 필요했으니... 이만하면 꽤 바쁜 한달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정말 많이 했고 또 생각의 반 이상이 걱정거리였지만, 그럼에도 나는 치앙마이에서 행복감을 느꼈다. 맛있는 커피, 좋은 사람들, 저렴한 맛집들. 사실 한국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는 것들임에도 왜 그랬을까. 나는 분명 '치망마이에 있어서' 행복했다.



돌아와서 인스타그램에 적은 내용



너무나도 따뜻하고 충만하게 행복해서였는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맞은 한국의 가을은 몹시도 추웠다. 단풍이 너울너울 떨어지는데 그게 왜 이리 쓸쓸하던지. 바로 어제 반팔티를 입고 푸릇푸릇한 나무들 사이를 걷던 게 마치 꿈만 같았다.



뒤늦은 가을을 타던 내게 누군가의 인스타그램 속 문구가 눈에 들었다. 여행의 후유증은 다시 떠나고픈 마음이라고. 그 때 다짐했다. 절대 이 기분을 후유증으로만 남기지 않겠다고.








4년 만에 나는 치앙마이에 다시 왔다. 그사이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고, 신랑을 주부로 만들었으며, 공간의 제약없이 할 수 있는 일도 시작했다. 모든 걸 다 내던지고 오기에는 나이를 먹어버렸기에 다 들고 오는 여행을 하기로 했다. 여행의 기간은 지난 날의 아쉬움에 더해 두 달 반으로 늘렸고, 우리의 여행 중 은퇴하신 부모님도 한달살기를 오시기로 한 아주 꽉꽉 채워 떠나온 여행.



그렇게 한국에서의 생활을 모두 이고지고 온 치앙마이. 많이 달라졌지만 또 그렇기에 더 기대되는 치앙마이. 나는, 아니 우리는 치앙마이 여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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