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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Dec 05. 2023

비건은 아니지만 비건 레스토랑은 좋아합니다만

치앙마이에서 만난 나의 취향

나는 비건은 아니지만 고기보다는 채소를 좋아하고 즐겨 먹는 편이다. 어릴 때 편식이 심해서 고기는 먹지 않고 감자, 콩나물 등만 먹고 산 기간이 있었는데 어찌보면 비건으로 잠시 살았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식습관으로 빈혈이 심하고 생리불순이 심하는 등 문제가 있을 정도였지만, 몸이 아픈 이유가 고기를 먹지 않아서라는 의사의 판정을 받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고기도 잘 먹게 되었다.



아무튼 나는 비건은 아니지만 여전히 채소를 좋아하고 즐겨 먹는다. 고기의 육즙보다는 채소가 푹 익었을 때 나오는 채즙과 잘 익은 채소의 식감이 좋다고 해야 할까. 예를 들면, 생바질과 구운 바질과 볶은 바질은 정말 판이하고 어울리는 요리도 다르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모든 종류의 채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이 많은 맛을 품고 있는 것 같다. 내 기준 고기의 종류는 썩 다양하지 못하고 채소의 종류는 굉장히 다양하다. 나는 동물의 비계나 껍질류를 식감 때문에 못 먹는 사람인지라, 더 제한점이 많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불었던 비건 열풍은 비건이 되겠다는 생각보다도 비건 음식점이 많아질거라는 점에서 기대가 되었다. 실제로 하나 둘 비건 요리나 비건 메뉴가 있는 레스토랑이 많아졌다. 기대를 한아름 안고 가서 고르려 하면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거나, 조리법이 지나치게 간단한데 맛은 밍밍하거나, 듣도 보도 못한 재료와 조합해 고급 요리로 둔갑해있는 경우가 많았다. 진짜 비건인 사람이 일상에서 비건식을 먹으러 레스토랑에 올까 생각하면 고개가 저어지는 상태였다. 게다가 양은 또 어찌나 적던지 비건과 다이어트는 동일한 단어일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 그렇게 나는 스스로 집에서 해먹는 것으로 만족하게 되었다.









그리고 때는 4년 전 어느 날, 치앙마이 한달살기 중 현지식에 조금은 물린 시점이었다. 치앙마이에서 비건 레스토랑이 굉장히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단순히 구글 평점이 높은 식당들 위주로 보던 중 샐러드/비건식을 전문으로 하는 레스토랑들을 발견했다. 하나같이 평점이 좋았고 가격대는 치앙마이 물가 대비 저렴한 편은 아니었지만 메뉴 자체가 편하게 먹어보기 좋아보였다. 당연히 한국보다 저렴했고.



이 정도면 도전해볼만 하겠다 싶어서 가본 첫 비건 레스토랑은 정말 맛있었다. 단순 야채 볶음에 면을 추가한 것일 뿐인데 감칠맛이 정말 살아있었고 버섯이 주는 풍미가 대단했다. 고소하고 짭짤한 게 딱 맥주와 곁들이기에도 좋아서 곧바로 하나 주문했고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쫄깃하고 아삭한 각종 야채들과 갓 따른 시원한 맥주라니, 습기 가득 머금은 태국의 날씨에도 너무나 적절했다.





몽롱하게 반짝이는 바깥의 불빛들을 바라보며 한참을 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엄청난 양에 야채만 먹어도 절대 배고프지 않게 해주겠다는 주방장의 마음이 느껴졌다. 실제로 먹성 좋아보이는 사람들도 먹고 남은 것을 포장해가는 것을 여럿 보았다. 포장해갈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먹은 터라 차마 포장은 못하겠기에 어떻게든 잔뜩 뱃속에 집어넣고 나왔지만, 그곳에서의 기억은 여전히 아름답게 남아있다.



이날 비건 레스토랑에 빠진 나는 이후로도 비건식에 자꾸만 도전했다. 샐러드를 전문으로 하는 레스토랑이야 뭐, 샐러드는 사실 어느 정도 채소를 좋아한다면 맛없기가 어려우니까. 내가 좋아했던 건 샐러드와 함께 곁들이는 건강한 스무디였다. 아무래도 샐러드는 역시 재료가 신선해야 해서인지 스무디에 들어가는 재료마저 엄청난 싱싱함을 자랑했다. 분명 한데 섞여 갈려버렸음에도(?) 과일과 채소의 생생한 단맛이 느껴졌으니, 건강에도 좋았음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구글 평점만 보고 찾았는데 우연히 TV에 나온 레스토랑에 간 적도 있었다. 굉장히 오래 전, 그러니까 4년 전의 내가 몇 년 전이라고 기억할 정도이니 언제인지는 확실치 않다. 모델 한혜진이 투어식으로 연예인들을 데리고 가서 비건 레스토랑이라고 소개한 곳으로 기억한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휴업중이다



풍경이 달려 있어 바람이 솔솔 불어오면 종이 울리는 소리까지 분위기를 만드는 레스토랑인데, 분위기며 높은 구글 평점에 반해 혼자서 메뉴를 세 개나 시키기도 했다. 덕분에 다 먹느라 정말 오래도 먹었지만 그럼에도 맛이 너무나 뛰어났기에 힘들지는 않았다.



다 먹고 어둑어둑한 골목을 걸어나오는데 분명 세 접시나 되는 어마어마한 양을 먹었음에도 몸이 참 가볍고 기분이 좋았다. 과일만 먹고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한 과일 러버였는데, 그날부터는 채소만 먹고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과일과 채소만 먹고 살아도 전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달까. 정말이지 세상에 부러울 것 하나 없는 기분이었다.










이렇게나 채소를 애정하는 나와 달리 신랑은 채소를 잘 먹지 못한다. 정확하게는 소화를 잘 시키지 못한다. 원래도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크론병을 진단받은 이후 실제로 몸에서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니, 더욱 안 먹게 된 것은 물론이다. 신기하게도 신랑이 앓고 있는 희귀난치병인 크론병은 섬유질이 많은 채소를 소화시키는 장내 미생물이 없다고 들었다. 연애할 때는 쌀국수를 시켜서 면만 먹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적도 있었지만, 숙주 먹는 사이 면만 쏙 다 먹어버린 신랑을 보고 속이 상한 나머지 안타까움은 금방 사라지더라(ㅋㅋㅋ).



아예 채소를 먹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채소가 익었을 때의 흐물흐물한 식감과 특유의 향을 어려워하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나를 만나기 전의 신랑은 채소라고는 입에 대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 신랑의 병에 대해 공부하면서 채소를 안 먹는 것보다는 푹 익혀서라도 조금씩 먹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구슬려서 먹였다. 그렇게 3년이 지나고 결혼을 한 지금의 그는 꽤 채소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고 생채소를 자꾸 먹으려 해서 말려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 당연히 채소를 먹고 배가 아프지도 않게 되었고.





그런 그와 함께 이전에 행복하게 먹었던 곳을 다시 찾은 것은 물론이다. 추억을 곱씹고 싶기도 했지만 그에게도 내가 행복했던 경험을 시켜주고 싶었다. 운좋게도 내가 좋아했던 비건 레스토랑은 우리의 두 번째 호텔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위치했고, 여전히 4년 전의 외관과 내부를 유지하고 있었다. 코로나 이후 애정했던 공간이 그대로 유지해주는 것을 보면 괜히 반가우면서도 고맙다. 게다가 여전히 엄청난 대접에 서빙해주시는 요리들까지 그대로였다.



우리가 주문한 건 예전에 맛있게 먹었던 것과 조금 다른 종류였지만 충분히 맛이 좋았다. 평소 잘 먹지 않는 채소들이 듬뿍 담겨 맛있는 양념으로 볶은 요리는 그에게는 색다른 맛이었던 것 같았다. 몇 가지 조심스레 먹어보더니 맛없다고 골라내는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웃겼다. 이제는 비건 레스토랑에도 먹을 게 있음을 알고 올 수 있고, 또 편히 먹을 수 있는 게 많다는 게 너무 좋았다. 못 먹는 게 아니라 이제는 안 먹는 거니까.










나는 분명 비건은 아니다. 때때로 고기가 먹고 싶고 매일 유제품을 달고 사는 요거트 러버인데다 신랑이 해주는 제육볶음을 포기할 수는 없달까. 하지만 그럼에도 언제든 바깥을 나가면 접할 수 있는 삼겹살처럼 편하게 와구와구 먹을 수 있는 비건식을 먹고 싶을 때가 많다. 고기를 먹거나 양념이 과다한 음식을 먹게 되면 속이 더부룩하고 불편한 느낌이 드는데, 희한하게도 비건식은 그렇지 않아서. 많이 먹어도 소화가 잘 되고 불편하지 않은 느낌. 비건이라는 뜻에 양념을 하지 말라는 말은 없는 것 같지만(잘 모르는 분야라서 실제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내가 먹어본 비건식은 대체로 간이 세지 않고 양념도 과다하지 않았다. 



아쉬운대로 직접 버섯 전골이니 채소 볶음이니 만들어 먹지만 또 남이 만들어주는 건 달라서. 남이 해주는 비건식이 가장 맛있는 건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치앙마이처럼 길을 가다 흔히 비건 레스토랑을 볼 수 있다면 좀더 자주 먹게 되고, 또 먹다보면 비건식의 매력에 빠져 주기적으로 먹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비건이 아님에도 비건 레스토랑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맛있으니까, 그뿐이다.



앞으로도 그와 치앙마이에 머무는 동안 비건 레스토랑에 자주 다니고 싶다. 현지 일반식보다는 비싸다는 점이 아쉽지만 그럼에도 한국보다 충분히 저렴하니까. 또 신랑이 이제야 먹을 수 있게 된 채소들을 이왕 외국에 온 김에 더 다양하고 다채로운 요리들로 맛보면 좋으니까. 물론 요즘의 신랑은 무카타(그릴과 샤브샤브를 함께 먹을 수 있는 태국식 요리)를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고 있어 무카타가 우선순위가 되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이래서 삼겹살집이 더 많고 비건 레스토랑은 적은 것일지도 :)





✨본 브런치북은 신랑과 함께 하는 치앙마이 살이를 담고 있습니다. 발행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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