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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Nov 28. 2023

자연스러운 미라클 모닝을 할 수 있는 도시

특히 한국인 맞춤형

우리 부부는 치앙마이에서 두달살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치앙마이에 오고 나서 변한 것들이 많았지만 그 중 가장 건설적이었던 건 누가 뭐래도 미라클 모닝. 사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효과라서 우리도 당황했는데, 의외로 많이들 꼽는 치앙마이의 장점에 충분히 더할 수 있는 좋은 점인 것 같다는 생각이다.



치앙마이에 오기 전 우리 부부의 생활은 꽤나 게으른 편에 속했다. 나는 100% 집에서 근무하는 재택 근무자이면서, 동시에 일의 양은 정해져 있지만 시간의 제약은 비교적 적은 일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편의에 따라 기상 및 취침 시간이 달라졌는데, 추위를 많이 타다보니 여름에는 그래도 9시 정도면 일어났지만 겨울이 될수록 밍기적거리다가 10시에서 11시까지도 늦잠을 자곤 했다.



신랑은 주부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나에게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것 같았다. 초반에는 따로 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해보겠다고 했지만 옆에서 쿨쿨 자고 있으니 일어나기 쉬울 리가 없었다. 나는 괜찮으니 다른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해도, 소리를 내면 깰까봐 무얼 못 하겠다며 지레 포기한 것들도 많았다. 점차 신랑도 나의 업무 패턴에 맞춰 생활하게 되었고, 아침을 먹는 시간이 곧 기상 시간이 되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출근하는 친구들 이야기는 우리에게 먼 나라 이야기였다. 신랑은 10년 동안 직장인으로 생활했지만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나도 대체 3교대 근무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가끔 친구들이 주말 오전에 약속을 잡으려 하면 난감하기도 했다. 일어날 자신이 없어서.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지 종종 고민이 들 때였다.










그러던 차 우리는 치앙마이에 오게 되었다. 치앙마이에서 우리는 꽤 부지런한 사람들이 되었다. 그 이유는 바로 바로 시차 때문. 태국과 한국의 시차는 2시간인데 경험해보니 2시간은 생각보다 적은 시간이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새벽 3시에 자던 우리도 이곳에 오니 새벽 1시에 자는 사람이 되었고, 한국에서는 오전 10시에 일어나던 우리가 오전 8시에 일어나는 사람들이 되었다. 밥 시간도 직장인 친구들보다 2-3시간은 늦춰져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치앙마이에서는 제때 밥 먹는 사람들이 되어버렸달까.



초반에는 시차 때문에 얼떨떨한 순간들도 많았다. 아침에 일어나 너무 배고프다며 시간을 봤는데 고작 8시밖에 안 된 상태였다. 배꼽시계는 한국에서처럼 울리는데 시계가 앞당겨진 느낌이었다. 게다가 아침을 먹고 바깥을 산책하고 업무를 봐도 여전히 오전 11시라는 게, 정말이지 하루를 길-게 쓰는 것만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미라클 모닝을 하려고 애쓰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미라클 모닝이 되어 톡톡히 효과를 누리는 것 같았다.




3시반에 마감하는 우리가 애정하는 카페



치앙마이가 미라클 모닝을 하기 좋은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더운 날씨 때문인지 몰라도 치앙마이의 유명 카페나 맛집들은 굉장히 문을 일찍 닫는 편이다. 어느 정도냐면 도넛 집은 2시에 닫고 카페는 3시30분에 닫으며 맛집도 4시30분이면 닫혀있는 곳이 많은 정도. 심지어 재료 소진으로 닫게 되면 찾아가도 발길을 돌려야 할 수 있으니, 유명한 맛을 보고 싶다면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해야 하는 게 당연한 도시다.



아무래도 치앙마이에 가는 한국인들은 대체로 취직이나 일을 하러 가는 사람보다는 휴양이나 여행 목적일 것이기 때문에, 먹고 마시는 장소들은 하루의 일정에 꽤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 그래서 맛집과 카페의 영업 시간도 하루를 부지런히 시작하게 하는데 한 몫 하는 느낌이랄까.



이렇듯 유명 맛집과 카페들이 빨리 문닫기 때문에 4년 전 혼자일 때는 못 가본 곳들이 정말 많았다. 어디를 가야지, 하고 마음을 먹어도 조금 늑장부리다 보면 문이 닫혀 있었다. 그때의 나는 스스로 맛집과 카페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간 곳이 거의 없다. 정말 좋아한다면 혼자서도 할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때의 나는 어떻게든 갈 마음이 도통 생기지가 않았다.



신랑과 나



그런데 신랑과 함께 오니 더 많은 걸 보여주고 싶고 더 많은 걸 함께 하고 싶어서 어떻게든 일어나게 된다. 이 사람은 정말 어디를 가자고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만 치앙마이 살이를 마무리할 수도 있는 사람이라서. 이왕 미라클 모닝을 할 거라면 더 뜻깊게 써야 하니까. 어쩌다보니 열심히 놀기 위해 부지런해지고 있지만 뭐든 부지런하면 좋을 거라는 생각으로 덮어본다.



나는 누군가와 맛있는 것을 함께 먹는 기쁨이 더 큰 사람이라는 걸, 또 함께 하는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게 즐거운 사람이라는 걸, 4년이 지난 이제야 깨닫는다. 어쩌면 이게 여행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내'가 아닐까 싶다.










글을 마무리하다 보니 머리 위로 비행기 한 대가 지나간다. 이왕이면 비행기 소음이 적은 지역들 위주로 숙소를 잡았지만 그럼에도 도시 어디나 공항이 참 가까운 치앙마이. 잠귀가 밝은 사람이라면 오전 6시부터 오후 12시까지의 시간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가 있다. 어쩌면 비행기 소음조차도 치앙마이에서 미라클 모닝하기 좋은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좋게 생각하면 비행기 뜨고 내리는 시간에 맞춰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물론 우리는 그렇게까지 잠귀가 밝지 못해서 못 하겠지만 말이다 :)



여하튼 치앙마이는 한국인들이 미라클 모닝하기 가장 좋은 도시가 맞는 것 같다. 시차가 2시간 난다는 점에서 태국의 전역이 포함되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미라클 모닝이라 함은 왠지 고요하고 푸릇푸릇한 공간에서 해야 할 것만 같으니까. 눈을 뜨면 커다란 수영장과 푸르른 하늘이 보이고 키큰 나무들이 반겨주는 곳에 있으니, 누가 뭐래도 치앙마이라서 좋다는 느낌.



사실 이렇게 살다가 한국에 돌아가면 어떻게 될지 가끔 걱정이 몰려오곤 한다. 여기서는 미라클 모닝이라도 한국에서는 늦잠일테니, 자칫 여기서 게을러지기라도 한다면...? 하하, 아직 돌아갈 날은 멀었으니까 여기서만이라도 지금의 루틴을 지켜보고 싶다. 우리는 오늘도 오늘의 치앙마이를 더 마음껏 즐길 예정이다.





✨본 브런치북은 신랑과 함께 하는 치앙마이 살이를 담고 있습니다. 발행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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