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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Mar 06. 2024

사랑하는 그를 만나기 일 년 전부터 30초 전까지

치앙마이와 함께한 인연, 우리의 러브 스토리 - 시작


연애할 때부터 결혼한 지금까지, 주변 지인들에게 우리 부부가 만나게 된 이야기를 하면 대체로 놀라는 반응이 많았다. 더 정확하게는 신기해한다는 말이 맞으려나.  


어머, 완전 자만추다~
일부러 그렇게 만나려고 해도 못 만나겠는데?
요새는 소개팅도 자만추고 어플도 자만추인 시대야, 그래도 부럽긴 하네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우리의 만남이 굉장히 자연스럽다(?)는 반응이 많았는데. 우리 부부는 둘다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다보니 자연스러운 만남이었던 것만은 확실한 것 같았다.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나 자연스럽게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됐을까. 이야기는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와 신랑이 만나게 된 건 글쎄, 역시 나의 진로에 대한 고민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아마 병원에서 퇴사하지 않고 쭉 일했다면 절대 만날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하니까. 2019년은 내가 간호사로 일한지 3년차가 되는 해였다. 신규일 때는 내가 힘들어서 환자들의 처치를 잘 이행하는 것에만 급급했지만, 조금씩 일에 적응해가면서 그들의 아픔까지도 자꾸만 마음을 후비는 시기였다.



중환자실에 오게 된 건 탄탄한 경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보람찬 경험을 많이 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정말이지 가벼운 생각 때문이었다. 가족 중 중환자를 본 적도 없는 내게 일하기 시작한 첫날부터 펼쳐진 중환자실의 풍경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마주한 죽음은 또다른 급한 환자의 병상으로 대체되었고, 나에게는 전문직으로서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 황망해할 여유조차 없었다. 4학년 실습 조교 선생님이 죽음에 대해 익숙해지는 나 자신을 보고 놀라게 될 거라고 했는데, 희한하게도 나는 시간이 지나도 죽음이 좀처럼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익숙한 일이라면 더욱 완벽에 완벽을 기해야만 하고,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면 감시받으며 일하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환경 속에서 나는 지쳐갔다. 치료 계획이 고통스럽더라도 깨어 있어야 하는 환자가 진통제 좀 달라며 몇 시간을 울어도 해줄 거라곤 함께 우는 것밖에 없어서, 환자 방에서 커튼을 치고 환자와 함께 울기도 했다. 간호사 한 명으로서의 몫을 수행해가면서 내게 돌아온 건 무력감에 몸서리치며 일하는 것뿐이었다.



하루하루 버티기에 급급했던 나날들


퇴사만 고민하던 때, 공교롭게도 내가 일하던 병원에서는 큰불이 났었다. 마취중이지 않은 환자들 중 몇몇은 병원 방송을 듣고도 초탈한 듯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고, 정성들여 간호한 환자들 중 몇몇은 당장 중환자실을 나가도 산소통이 부족하여 몇 시간 안에 사망할 것이 확실해 보였다. 검댕이를 잔뜩 묻힌 소방관이 방화문 너머로 얼굴을 확인하고 지나갔고, 병동 간호사들은 환자들과 병원을 탈출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들었지만 중환자실의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간호사는 죽어도 환자 옆에서 죽어야 한다는 선배 간호사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었다.



사실, 나는 살고 싶었다. 간절하게 살고 싶었다. 죽더라도 가만히 앉아 죽음을 기다리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에 사로잡혀 못내 괴로웠다. 다행히 화재는 저층에서 진압되어 무리없이 종료되었지만 이 생각은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았다. 어쩌면 진짜로 죽을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퇴근 후 함께 일했던 중환자실 동기와 병동 동기까지 함께 만나 살아있음을 자축했지만,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일을 하면 할수록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반복할 때였다. 먼저 그만두겠다는 말을 할 용기는 차마 없어서, 차에 치여도 괜찮을 것 같고 어딘가를 다쳐도 좋을 것 같았다. 생각이 씨앗이 되었을까. 새로 온 환자를 병상으로 옮기던 중 허리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그날 저녁부터 걸음이 이상해진 나는 다음날부터 아예 걷지 못했다. 혼자 울면서 택시를 타고 응급실에 도착했고 진료를 기다리면서도 휠체어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병가를 허락받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거쳐 나는 입원했고 자연스럽게 생각할 시간이 더 많아졌다. 그제서야 자발적으로 퇴사를 마음 먹었다.








어딜 가도 여기보다는 나을거라고 생각하고 뛰쳐나왔건만 현실은 냉혹했다. 간호사 면허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스물 일곱 살이 일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대학원도 가보고자 했으나 다시 간호사를 하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고, 일하고 싶은 회사들은 사실상의 무경력인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나는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간호사가 되기 위한 취업 준비는 학교에서 해주었기에, 내 스스로 하는 취업 준비는 처음이었다. 엑셀을 처음 배웠고, 포토샵을 배웠다. 자격증 종류는 왜 이렇게 많은지 무얼 배워야 하는지를 선택하는 것부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즐거웠다. 내 삶의 모든 걸 내가 선택하고 있었으니까.



공부를 하면서도 생각은 많았다. 병원에 있을 때는 안 좋은 기억들만이 나를 찾아왔는데 병원을 그만두자 좋았던 순간들도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좋은 순간들도 있었다. 죽음이 싫었을 뿐, 내가 마음을 주고 애정을 주었을 때 기뻐해주는 사람들을 보는 건 행복했다. 그건 분명 행복이었다.



짬이 날 때면 의식이 있는 환자분들과 대화를 나눴다. 주로 입에 인공호흡기가 있기에 손글씨로 대화하는 것은 꽤나 고수가 된 상태였다. 그날도 한 환자분과 조용히 수다를 떨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환자분이 요거트를 좋아하냐고 물으셔서 잘 알아들은 게 맞나, 했는데 알고보니 목장을 운영하신다고 하셨다. 본인은 무조건 건강해져서 퇴원할 테니까 나보고 꼭 놀러오라며, 정말 신선하고 정말 맛있다며 웃으셨는데. 그 맛이 정말 궁금했다. 이외에도 기억에 남는 환자분들은 수도 없이 많다. 늘 어떻게 하지 못해 미안해하며 울상인 내게 괜찮다는 듯 웃어보이던, 나보다도 의연하셨던 환자분들. 어쩌면 그랬기에 더욱 그분들의 죽음이 더 크게 다가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기억을 추억하며 시작된 생각의 결말은 이렇게 늘 좋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퇴사하고 여유가 생겨서일까. 점차 하고 싶은 일이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것 같았다. 아픈 사람들이 아프기 전에, 그들이 환자이기 이전에 건강한 사람일 때를 자꾸만 떠올리게 되었다. 그분들이 건강할 때 건강할 수 있게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한 스타트업에서 같이 일해보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예술치료를 취미 클래스로 제공하려는 스타트업이었다. 일상에서 취미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내가 생각하던 방향과 결이 맞아 보였다. 무엇보다 내게 기회를 준 곳이었다. 무척이나 일이 하고 싶은 상태였던 나와 타이밍까지도 잘 맞았달까. 그렇게 합류하게 된 나는 정말 단시간에 많은 일들을 배웠다. 파워포인트도, 엑셀의 활용도, 각종 SNS를 비롯해 국가 지원사업에 대한 개념 등등까지도.



일에 적응할 즈음 회사에서 야심하게 준비하던 프로젝트가 하나 있었다. 예술치료 클래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사용자들의 후기를 받는 것이었다. 뭐든 우리의 생각을 잘 전달하려면 미리 적용해보는 건 필요했으니까. 당시 SNS로 모집 공고를 뿌렸고 많은 분들이 지원해주셨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약 열분 남짓한 분들이 참여하게 되었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우리팀은 눈코뜰새없이 바빴다.  




대망의 프로그램 시작날

예정된 시간은 아직 한참 남았기에 조금이라도 미비된 사항을 체크하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슬쩍 들어와 기웃거리는 느낌이 들어 입구 쪽을 쳐다보았는데. 세상에나, 무려 40분을 일찍 온 사람이 있었다. 10분도, 20분도 아니고 무려 40분이라니. 그 사람은 엉거주춤 일어선 우리를 보고 머뭇거리다 희미하게 인사하고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모두 벙쪄서 저 사람이 우리 프로그램을 신청한 사람이 맞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잠시 가졌다. 아직 아쉬운 점들을 더 보완하려면 한시도 부족했기에 오래 생각하지는 못했지만.



곧 30분 전부터 도착한 분들로 인해 잠시 얼굴을 비췄던 그 사람은 잊혀졌다. 그러다 프로그램 시작 10분 전 그 사람은 다시 나타났다. 어디 갔다 오셨어요? 했더니 그냥 앞에서 좀 돌아다녔어요. 라고 말하며 괜찮다는듯 웃어보이던 그 사람.



그게 신랑과의 첫 만남이었다.




본 브런치북에서는 신랑과의 만남을 적어봅니다. 저희에게는 잊지 못할 기억을 글로 펼쳐내는 게 괜히 설레기도 하네요. 부디 즐겁게 읽어주시길 바랄게요. 다음 편은 매주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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