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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Jul 06. 2024

욕심많은 여자는 돈벌고 욕심없는 남자는 집안일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천생연분

비가 오기 전 꿉꿉하지만 에어컨으로 집안은 선선한 주말 오후, 느지막이 아점을 먹고 씻고 나온 나의 시야에 신랑의 기분좋은 미소가 들어온다. 거의 흘러내릴 것처럼 눕듯이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남자. 왠지 집중할 때면 입을 쭉 내밀고 휴대폰을 하는데, 그 모습이 더없이 사랑스러운 내 남자.



나는 저렇게 누우면 허리가 아프던데 어쩜 저렇게 편안하고 행복해보이는지 신기했다. 사랑스럽다고 생각한 것과 달리 말은 조금 달랐다. “자기 이제 입이 코보다 더 나오네?ㅋㅋㅋ“



분명 전에는 입을 아무리 내밀어도 코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연애시절, 우- 하고 내민 입술이 거의 나오지 않기에 신기해했더니, 늘려보겠다고 다짐했던 게 2년 정도 되었을까. 결국 코를 넘어선 입을 만드는데 성공해버린 신랑이다. 나의 말 한마디에 입 내밀기를 연습하더니 이제는 입을 꾹꾹 누르며 다시 돌리려고 하는 게 왜 이리 귀여운지.



나이들면 탄력도 떨어지는데 굳이 늘렸다가 다시 넣으려고 하니 웃음이 나왔다. 슬쩍 보니 이미 늘어나버려서 넣기는 쉽지 않아 보이는데. 머리를 말리며 속으로 다짐했다. 돈 많이 벌면 피부관리도 받게 해줘야겠다. 탄력을 잔뜩 만들어줘야지.



그리곤 신랑을 다시 한번 쳐다봤는데, 여전히 기분 좋은 표정으로 휴대폰을 토도독 두드리고 있는 신랑. 아까와 달리 손으로 입을 꾹꾹 누르는 것만 추가됐다. 문득 어떻게 저렇게나 행복할까 궁금해졌다.




자기는 왜 이렇게 행복하지?
욕심이 없어서 그런가, 왠지 좀 부럽네


나는 욕심이 많아서 힘든 사람이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데, 다 잘하고 완벽하게까지 하고 싶어서 늘 힘든 사람. 생각은 많은데 행동은 생각을 못 따라가고, 겨우겨우 행동을 해도 결과가 행동을 못 따라가고, 어떻게 결과를 만들면 또 욕심이 생겨서 생각이 앞서나가며 엎치락 뒤치락 하는 모양이랄까.



반면 이 남자는 정말이지 욕심이 없다. 여름이면 티셔츠 한두 장 사고 빙수 한 번이면 충분해하고, 겨울에는 집에 콕 박혀서 넷플릭스와 귤/고구마만 있으면 끝. 물론 2-3일에 과자 한 봉지씩 먹어주면 더할 나위 없다고.



가끔 뭘 욕심부리며 사고 싶어하는 것들은 다 우리 모두를 위한 것들이다. 밖에서 먹는 카레는 비싸니까 직접 만들겠다며 카레 가루들을 사고, 빙수도 먹다보니 재료는 크게 다를 것 없는데 서비스 비용이니까 해먹자며 빙수기계를 사고. 그마저도 전혀 큰 돈이 들지 않는 것들이다.



이런 성격에 맞게 나는 돈을 벌고 신랑은 집안일을 한다. 서로 마음도 안정되고 각자의 일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분명 좋지만, 내 마음 한 켠은 언제나 더 돈 벌어야 되는데!!! 라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다. 벌어도 벌어도 욕심이 날 것 같아서 내 욕심이 가끔 두려울 때가 있다. 그런 내게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가 말했다.




욕심없는 사람 둘이 살면 망해ㅋㅋㅋㅋ


생각해보니 그랬다. 둘다 지금의 생활에 계속 만족하고 무언가를 하지 않다보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사실 나의 생각도 근거가 없는 게, 지금 둘이서 먹고 살기도 빠듯하기 때문에. 아주아주 쓸데없는 걱정인 것. 그런데 이 사람은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말 대신 욕심을 가져도 된다고 하는 것 같았다.



욕심있고 또 그 욕심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나와 있기 때문에, 자신은 좋아하는 집안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면서. 자기 일하러 가기 싫으니 열심히 돈 벌어오라고 하는 남자. 매일 어떻게 하면 더 맛있는 요리를 만들지 고민하고, 어떻게 꾸미면 더 예쁜 공간에 살 수 있을까 고민하는 남자. 나는 이 남자가 정말이지 너무 좋다.






서른이 넘고, 결혼을 하고, 삶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더 느낀다.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내 주관을 더 단단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을.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끊임없이 의심하면서도 내가 가는 방향을 믿어야 세상의 풍파에서 흔들리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내 곁을 지켜주는 건 역시나 배우자라는 것을 말이다.



토요일인 오늘도 나는 욕심에 충실하게 컴퓨터 앞에 앉아 평일에 못다한 일을 하고, 신랑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커튼을 세탁하고 집안의 인테리어를 바꾸는 중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책상을 옮기면서도, 내가 더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겠다며 재밌다며 웃는다.



아무래도 오늘은 이 사람이 좋아하는 햄버거를 먹어야겠다. 제일 비싼 걸로 사줘야지 :)




저의 사랑스러운 남편은 어엿한 3년차 주부인데요. 요리, 청소, 빨래부터 인테리어까지 못하는 게 없는 남편이 주부로 살게 된 이유는 아래 글을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본 매거진에서는 일하는 아내가 보는 주부 남편에 대한 시선을 담습니다. 이번 글이 즐거우셨다면 구독, 좋아요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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