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루팡인 건 아니에요
한국에서는 시니어가 되면 일은 주니어들에게 떠넘기고 일을 적게 하는 사람이 많은데
예전에 근무했었던 국내 기업에서는 위로 올라가면서 사람이 줄어드는 피라미드 구조였기 때문에 딱히 시니어 레벨이 없었다. 그 정도 짬이 되면 파트장이나 부서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회사로 이직을 하고 나서 보니 (몇 년째 신입사원 채용이 거의 없다시피 하는 회사들은 다 비슷하리라), 누가 퇴사를 하면 그때 그때 필요한 인력을 채용하는 시스템이라 신입사원보다 시니어 직원이 많은 역 피라미드 구조였다. 내가 속했던 조직만 해도 내가 과장이 될 때까지 우리 팀에 신입사원이 없었다.
조직 구조가 역 피라미드가 되면 어떤 일이 생기는고 하니 어지간한 일은 R&R이 정해져 있어서 일 자체를 떠넘기기는 쉽지 않으나 부서에 새로운 업무가 추가되는 경우 시니어보다는 (만만한) 주니어들에게 배정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시간이 지날수록 주니어들의 업무가 점점 늘어나게 된다. 여기서 어떻게 업무 분장을 하느냐에 따라 기존 구성원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도 있고, 서로 간의 감정의 골이 깊어져 모두 도망가고 팀이 박살 나는 수도 생긴다.
그렇다면 해외는 어떤가?
해외도 사바사. 정말 정년이 코앞인데도 새로운 프로젝트에 뛰어들어서 본인의 노하우를 모두 알려주고 가겠다! 며 후배직원들에게 영감을 주는 선배들도 있지만, 새로(최소 10년 전) 바뀐 시스템에 적응하지 않고 KPI는 나 몰라라 하고 조금만 '격려'해도 번아웃이 왔다며 몇 주간 병가를 내는 빌런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한테는 애초에 새로운 업무를 맡기기엔 리스크가 많기 때문에 기존 멤버들에게 업무가 쏟아진다. 부서마다 헤드 카운트가 정해져 있으니 새로 사람을 뽑는 것도 쉽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이 빌런을 해고하는 것도 쉽지 않다(프랑스는 정말 채용도, 해고도 쉽지 않다). 그리고, 이런 경우는 다른 부서에서도 함께 일하고 싶어 하지 않으니 다른 부서로 전배도 쉽지 않다. 팀에 이런 빌런(꼭 시니어는 아님)이 하나 있으면 전체적으로 사기도 저하되고 분위기도 삭막해진다.
결국은 사람에 따라, 회사에 따라 다른 것 같다. 국내도 우리 회사는 매니저가 아닌 시니어들이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근무하다가 퇴사하는 경우도 많은데 수십 년 동안 직장 생활하면서 꾸준히 자기계발을 하고 격변하는 시기에 신기술을 (요즘 특히 AI) 받아들이는 선배님들을 보면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나도 직장 때려치우고 나가서 사업할 생각은 없으니 저렇게 나이 들어야지 하다가도 루팡인 선배들은 보면 한숨은 나오지만 또 그 입장이 이해도 되고 그렇다.
결론은 뭐다? 내가 마음 가는 대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