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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얀 Mar 14. 2023

고감독님 거장 타이틀 압수 - <브로커>

정상 가족 신화에서 벗어난 척하는 이야기

(스포일러 주의)

(반박시 당신이 맞습니다)

(관람일 : 22년 6월 21일)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어느 가족> 등 가족의 탄생과 해체를 다룬 영화로 정평이 나있는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하 고감독)의 신작. 거기에 송강호의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까지. 그런데 <브로커> 개봉 후에 들려오는 평들은 명성이 무색하리 만큼 별로였다.  그래서 기대를 최하로 낮추고 봤는데도 너무 별로!여서 같이 본 애인과 생각 날 때마다 이 영화를 놀려먹는 중이다. 역시 별로인 콘텐츠를 보면 할 말이 많다.


영화를 재밌게 보신 분들에게는 정말 죄송하지만

저의 한줄평은 : 불필요하고 얄팍하고 가짜같다



불필요하다


 진행 시켜, 선수 입장, 이런 대사와 더불어 내가 극혐하는 류의 대사가 있다. 분명 그 환경에 아주 오래도록 있었을 등장인물들이 마치 ‘처음’이라는 듯 어떤 사건을 대하는 대사다. 특히 초반의 동수&상현의 대화, 수진&이형사의 대화가 그러하다. 인물의 배경을 경제적으로 설명하기 위함 (ex. 편지 써놓고 찾으러 오는 엄마 없다는 동수의 대사)도 있고, 인물의 가치관을 보여주기 위함도 있는데 너무 대사로 해결하려는 것이 촌스러웠다. 

 이 영화의 전반적이고 고질적인 문제를 요약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자장가 바로 다음 장면이었다. 소영이 벤에서 떠난 뒤 이형사와 수진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노래 불렀는데요?” “무슨 노래?” “자장가요 관객들이 아주 똑똑히 클로즈업으로 대문짝만하게 본 장면을 왜 대사로 또 말하지..?...일본식 개그인가? 허술한 일본식 형사 콤비의 재질을 갖추도록 하고 싶었던 건가? 차라리 이형사가 “진짜 엄마 맞나봐요” 한 줄만 말하고 다음 컷으로 넘어갔으면 담백 했을듯 싶다. 여정의 초반에서 이형사가 ‘진짜 엄마 아닌 거 아녜요?’ 했었으니까…. 아쉽게도 이 영화는 담백함이라고는 모른다. 충분히 ‘보여주기’로 가능한 영역의 것들을 굳이 ‘말하기’로 한 번 더 말한다. 

 불필요하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너무 기능적이라는 뜻으로 바꿔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사들도 매우 매우 매우 기능적, 캐릭터도 너무 기능적.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든가, ‘우산’ 비유라든가, 해진의 역할이라든가, 이형사(정리정돈 역할), 죽은 남자의 아내 등. 왜 넣었는지 너무 티가 나거나, 아니면 대체 왜 넣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두 가지로 나뉘었다.


문제의 <태어나줘서 고마워> 장면..이 아니라 에반게리온의 <오메데또>


 특히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말을 구두로 직접 해서는 안 됐다. 그런 말을 듣고 싶었던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지언정, 영화의 완성도를 해치면서까지 그렇게 떠먹여주는 게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장이라는 영화감독이 이렇게까지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촌스러운 장면을 만들다니. 그렇게 대놓고 말하면 영화를 통해 말을 건네고 싶은 감독의 ‘진심’보다, 어떻게 해서든 메시지를 명확하게 던지려는 감독의 ‘조바심’이 더 많이 느껴진다. 가뜩이나 떨어진 개연성과 어색한 대화로 인물들에 감정이입도 못 한 상태였는데,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말을 진심으로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가짜 마음처럼 느껴졌다.

 '태어나줘서 고마워' 장면에서는 형식상으로든 상황적으로든 유사했던 에반게리온 엔딩이 생각났다. 더 많은 이야기는 스포일러라 여기서 할 수는 없지만, 두 장면 모두 감독의 의도가 다분히 묻어났고, 인물들의 존재를 긍정한다는 점에서 결을 같이 한다. 다만 에반게리온은 어느 정도 현실과 유리된 이야기여서, 같은 오렌지 주스라도 어떤 컵에 담느냐에 따라 달라보이는 것처럼 각자가 소화하기 나름이다. 그러나 브로커처럼 현실에 발 붙이고 있는 이야기에서 대놓고 이래서는 안 됐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얄팍하다


고감독의 인터뷰를 보니 이 영화를 관통하는 감독의 큰 줄기는 다음의 두 가지인데

1) ‘모성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는 말에 통렬한 반성을 했다

2) 보육원 출신 아이들의 존재를 긍정해주고 싶었다 (그들을 향해 '말하고' 싶었다)

고 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모두 그려내는 데에 아주 처참히 실패한 것 같았다. 


1) 모성에 대한 환상을 비판적으로 보는 거라면

1-1) 모성? 없어도 괜찮아! -> 이 얘길 하려는 것도 아니었음. 소영이 중심인물인 이 여정의 상당 부분이 우성이를 위한 일로 귀결된다. (“살인자의 아이로 만들고 싶지 않았던 거지..”라는 동수의 대사) 그래서..차라리 소영이 로드트립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하고 가정을 하보게 된다.

1-2) 모성? 타고 나는 게 아니야! -> 이 얘긴 딱 설정과 한 줄의 플롯만으로 충족된다. 친모 본인이 브로커가 될 수 있다는 한 줄의 설정 & 버릴 거면 왜 낳냐는 말로 일관하던 수진이 뭔갈 깨닫고 애를 받아서 키움 (이게 가능? 여부를 떠나서 너무 알레고리적임) 


 한 술 더 떠, 옥상에서 수진, 소영, 이주영 세 명이 대면하는 장면이 있다. 여성 배우를 스피커 삼아 이런 얘길 하는 게 맞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아이를 태어나기 전에 죽이는 게 낳은 후에 버리는 것보다 죄가 가볍냐?” 이 대사가 이 영화를 너무나도 얄팍하게 만들어 버려서 기가 탁 풀려버렸다. 저 대사는 ‘아, 소영이 참 기구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 전에 이 모든 상황을 낳아서 버리는 죄 vs 생명을 지우는 죄(?)로 양분 시켜버린다. 임신중절은 여성의 당연한 권리라는 얘기는 차치하더라도, 임신중절 vs 영아 유기, 여성한테 이 두 가지 끔찍한 선택지 밖에 주어지지 않은 상태를 인지하지만 고민이 깊이까지 뻗어나가지도 못한다. 살인을 저지른 성매매 여성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많지 않은 선택지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 당한다. 소영이 아이를 낳고 싶어했다면 아동을 유기할 수 밖에 없는, 복지 안전망이 부재한 사회에도 책임이 있고, 애를 중절해야 했다면 그건 죄를 물을 수가 없는 것이다. 감독이 버림 받은 아이들에게 진정 말을 건네고 싶었다면 여성을 중심인물로 두면 안 됐다. 차라리 해진 캐릭터에 개연성을 더 부여하여 비중을 늘려 아예 해진의 시각에서 일련의 사건들을 바라보거나, 동수 비중을 더 크게 뒀어야 했다.

 ‘사람들은 맨날 아빠는 놔두고 엄마 탓만 한다’는 대사가 딱 한 줄 나오기는 하나, 영화 전체를 덮는.. 어쩔 수 없는.. 따수운 시선의 탈을 쓴 모성숭배 때문에 쏙 들어가고 만다. 얘기는 결국 생명소듕 쪽으로 흘러가버리고 만다. 아빠 탓은 둘째 치고, 양육자에게 보다 많은 선택지가 주어지고 선택한 상황 속에서 ‘아이’를 우선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사회가 마련되어야 하는 건 자명한데 말이다.

 영화가 해결책을 내놓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문제의식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생명’에 국한되어있고 여전히 ‘모성’을 강요하는 시각에서 진일보 되어있지 않다. 배두나가 애기 대신 키워주는 거로 퉁 치려고 하지 마라.. 배두나 캐릭터 백 번 이해해도 고감독의 메시지는 절대 이해 못 함. 차라리 '도희야'에 나오는 배두나와 김새론에게서 가족의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 이 얘기를 고감독 전작을 본 애인에게 말했더니 “사실 전작(ex.아무도 모른다)들도 소재에 비해 그렇게까지 고발적인 영화들은 아니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애초에 여성문제를 건드릴 생각이 없었던 영화에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더 따뜻한 곳이었으면 하겠지… 다만 그 세상이라는 것이... 부모가, 미혼녀가, 미혼부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 누구도 지랄하지 않는 세상은 아닌 것 같다. 생명이 존중받는 세상, 여기에서 얄팍하게 멈춰있는듯. 생명의 소중함을 이야기할 때 임산부 얘기하는 것은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그런데 살인자를 대하는 감독의 태도는 또 미묘하게 다르다는 점이 웃음 포인트였다.


 차라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뉘앙스가 더 강하게 느껴졌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것이야말로 오히려 생에 대한 예찬에 가깝다. 물론 그런 희망은 결말에 수진이 우성의 양육자가 되면서 심어지긴 하나 존재긍정이 밥 먹여주는 게 아니니까. 그럼에도 이 영화가 감동적이라고 느낀 사람들은 존재 긍정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일 테다.



가짜 같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왜 이렇게 가짜같지?” 였다. 적당히 마무리하는 엔딩과 부족한 개연성, 어딘가 어색한 대사 탓에 이 영화는 ‘핍진성’을 지니지 못한 가짜 같은 영화였다. 특히 대사는 보는 내내 차라리 일본어로 듣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 중 우산 대사는 너무나도 별로였는데, 별로여서 기억에 너무 잘 남아서 짜증이 났다. 인스타 감성글귀의 ‘우산’의 비유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못한 하나마나한 비유. 차라리 그 대사를 넣고 싶으면 후반에 넣었더라면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이유가 비 쫄딱 맞을 때 동수가 아무말 없이 우산을 씌워주는 것을 보여주기만 해도 충분했을 것이다. 사실 그 외에도 동수&소영 대화하는 모든 장면의 대사가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모-강동원-이지은-우성’으로 연결되는 비유까지는 좋은데 그걸 말하고 싶어서 전전긍긍하는 게 느껴졌다.

 해진은 배우가 연기를 귀엽게 하는 것과는 별개로 너무 가짜 같았다. 정말 기능적인 인물이다. 남성, 여성, 그리고 아이로 이루어진 집단을 구성해 그들이 ‘가족’처럼 보이게 하는 장치다. 잠시나마 등장인물들에게 ‘우리..가좍이 될 수 있을지도?’하는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해주는 장치. 우성이 너무 아기인 탓에 그가 할 수 없는 말을 해진이 대신 해준다. 그 외 어른들이 감히 하지 못 하는 대사도 해진이 팅커벨처럼 뾰로롱 뿌려준다.

 인물들한테도 잘 이입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에 나온 부부 중 여자가 우성이에게 젖을 물릴 때, 한 시간동안 메말라 있던 눈이 촉촉해졌다. 오직 그 한 장면으로 아이를 사산한 뒤 불법 인신매매를 해서라도 아이를 양육하고 싶어했던 부부의 과거가 주마등처럼 펼쳐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컷에서 소영이 자기 가슴에 손 올리는 장면은 참 별로였다.

 그 외에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1) 상현은 대체 깡패 수하인을 왜 죽였는가. 예전에도 같이 일했던 사람이고, 그 사람을 죽인다고 해서 우성의 안전이 보장되는 상황도 아니고, 비용도 리스크도 너무 큰 짓인데 대체 왜? 경고를 주고 싶었던 건가. 깡패들이 본인을 위협했듯, 자신도 그들을 위협하고자 아예 죽여버린 것일까?생명이 그렇게 가벼운가? 2)소영이 죽인 성매수남인지 불륜남인지의 와이프를 왜 굳이 넣었는가….



그 외


 기억에 남는 미장센이 없다. 그래도 꼽아보자면 동수와 동수의 보육원 동생이 야밤에 깡통차기를 하는 장면이 생각난다. 무심하게 툭툭 점수를 카운트하면서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이 좋았다. 상현이 딸과 만나서 ‘이거 빨대가 하트네’하는 장면도 짠하고 좋았다. 그 외의 장면에서는 관객이 생각할 수 있는 틈을 주지 않았다. 

 아이유 하악질하는 고양이 같았다. 후반부에 형사들 만나고 모텔방으로 돌아와서 우성이 보살피기 스케쥴 정하고 있을 때 옅은 미소 띠고 있던 그 장면의 아이유는 참 좋았다. 송강호 연기도 사실 송강호 출연작의 조각모음 같았고, 강동원은 거슬리는 것은 없었다. 배두나도 배두나, 이주영 비중은 너무 적었고, 해진은 능청스럽게 잘 하지만 정말 필요할 때 뿅하고 나타나는 대사의 요정이었다. 사실 이 작품 속 최고의 연기자는 그렇게 얌전할 수가 없는 전설의 아기 우성이었을지도.



 끝으로


 감독은 자신이 영화인으로서, 영화인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을 것이다. 부모로부터 버림 받은 아이들에게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면 차라리 <브로커> 찍을 돈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아카데미>를 만들어서 영화학도의 꿈을 가진 보육원 아이들을 지원하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장이라 불리우는 어느 감독의 얄팍한 위로보다 버림 받은 아이들 본인의 목소리가 훨씬 더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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