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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초 Jan 25. 2022

세탁기 없는 설움

캐나다의 공용 세탁실 문화


캐나다에 정착한 지 어느새 5년 차,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적응하지 못한 게 한 가지 있다. 바로 공용 세탁실 문화이다. 캐나다에서 지금까지 총 3번 정도 이사하는 동안 세탁기가 집안에 있는 곳은 없었다. 세탁기를 사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겠지만 비교적 옛날에 지어진 대부분의 캐나다 아파트는 가구 내 개인 세탁기 반입을 금지한다. 세탁기 물이 넘치게 되면 건물 전체에 손상을 줄 수 있어 그렇다고 한다. 


또한 화장실도 한국과 같은 습식 바닥이 아니고 건식 바닥인지라 화장실에 개별 세탁기를 놓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 건물 내에 마련된 공용 세탁실 혹은 빨래방을 이용한다. 



실제 우리가 사용 중인 공용 세탁기



상상이나 했겠어? 세탁기 없는 삶


한국에 있을 때는 세탁기 없는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다. 캐나다에 와서야 집에 세탁기가 없다는 게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태어나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더군다나 지나가다 가끔 인사만 나누는 이웃과 세탁기를 공유한다는 건 생각보다 꽤 찝찝한 일이다. 군대에 있을 때 세탁기를 공용으로 사용해 본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그때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총 20가구 정도가 살고 있어 시간대를 나누어 세탁실을 이용한다. "FREE"라고 써져있는 시간대는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인데, 주말 황금 시간대에는 경쟁이 다소 치열하다. 



세탁실 시간표



세탁 한번에 2시간 순삭


무엇보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층은 2층이고 세탁실은 1층에 있어 무거운 세탁물을 들고 계단참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꽤나 귀찮다. 속옷 차림으로 갈 수도 없으니 항상 옷도 차려입고 가야 한다. 또 건조기라도 돌리는 날에는 총 3번을 왔다 갔다 해야 하니 세탁 하나만으로 2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한 번은 세탁기를 돌리고 알람을 맞춰 놓는 것을 깜빡해 다음날 찾으러 간 적도 있다. 누군가가 내 빨래를 세탁기 밖으로 빼놓은 걸 보고 어찌나 민망했는지 모른다. 젖은 채 방치된 빨래에서 쉰내가 나서 다시 세탁기를 돌려야 했던 것은 물론이다. 


물론 세탁기가 집안에 있는 곳으로 이사 갈 수만 있다면야 만사형통이겠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대략 지금 월세의 1.5배에서 2배 정도는 더 내야 가능한 일이다. 아파트 렌트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에 가보면 서치 옵션에 가구 내 세탁기 유무를 선택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정도로 집에 세탁기가 있다는 것은 엄청난 혜택인 것이다. 



여보, 다음 집은 무조건 세탁기 있는 곳으로 알아볼게


아내에게 다음 이사 갈 집엔 무조건 세탁기가 집안에 있는 곳으로 가겠다고 약속했다. "아무 때나 편하게 빨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평범하지만 행복한 상상을 하곤 한다. 새삼 아무렇지 않게 누려왔던 평범한 것들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캐나다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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