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빛 푸른 ‘은’에 밤·여물다 ‘율’>

1. 당신에게 밤은 어떤 의미인가요?

결혼하고 꽃송이와 백호, 둘이서 지내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다. 여러모로 마음이 편하지 않은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아빠는 건강이 안 좋아져서 투병 생활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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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나와 띠동갑으로 두 바퀴 차이가 났다. 약 2년간의 투병 끝에 2014년 4월 22일, 아빠는 돌아가셨다. 2014년은 우리 가정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에 참혹하고 가혹한 한 해였다. 아빠의 부재는 나에게 매우 큰 슬픔이었고 그 슬픔에 흠뻑 젖은 채 꽤 긴 시간을 흘려보냈다.


1년 뒤.


꽃송이가 임신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기쁜 소식이었다.

병원에서 임신을 확인하고 초음파 사진을 받아 들었다. 신기한 듯 사진을 보던 중 흰 테두리에 적힌 출산 예정일을 보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2016년 4월 22일. 하늘나라로 간 아빠가 우리에게 보낸 마지막 선물 같았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오묘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눈물을 가슴으로 삼키며 감사 기도를 드렸다.


아이의 태명은 ‘콩콩이’(꽃송이가 임신 전에 두유를 많이 마셨다.)

너무나 조심스러웠기에 임신 안정기에 들어서기까지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출산이 다가왔고 자연주의 출산을 원했던 꽃송이 덕분에 콩콩이가 태어나자마자 가족 병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갓 태어난 콩콩이를 가슴에 안고 심장과 심장을 맞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속삭였던 가슴 뛰는 따뜻한 기억이 있다.


4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벚꽃 눈이 흩날린 후 수수꽃다리꽃(라일락)의 진한 향기가 코끝을 찌른다. 콩콩이를 기다리던 시간 때문인지, 매년 수수꽃다리꽃이 피는 곳을 찾아 진한 꽃향기를 맡으려 숨을 더 크고 깊게 들이마시곤 한다.


콩콩이를 기다리고 또 꽃송이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 갈 때 ‘어떤 의미를 가진 이름을 지을까?’ 고민했다. 교회 관련 이름이나 돌림자, 한글 이름, 사주에 따른 이름은 필요 없었다. 내가 고민해서 직접 이름을 지어주기로 마음먹었다.


꽃송이와 이야기 한 건 ‘율’이 들어가고 중성적인 느낌의 이름이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은율이 어때요? 이은율."

"괜찮을 것 같아요."


한자를 찾아보니, 풀빛이 푸르러지는 뜻을 가진 '은(誾)'과 밤이 단단하게 여물다는 뜻의 '율(律)'을 찾았다.


‘풀빛 푸른 때에 태어나 단단하게 여물어 가는 아이’


풀빛 푸른 봄에 태어나, 밤이 단단하게 여무는 가을과 겨울을 지나며 내실을 다지고 단단하게 여물어가기를 반복하며 굵고 알찬 삶을 살기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은율’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그렇게 은율이는 이름의 뜻대로 매년 단단하게 여물며 살아가고 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흐른 시간 속에서 주변의 많은 분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활동적이고, 사람을 좋아하며, 뛰어노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야무진 손놀림으로 접고 만들고 그리는 것을 즐기고, 자연 속에서 생명을 존중하고 생물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관심 있는 것에 대해서는 몰입해서 스스로 배우고 연습하며 잘하는 아이로 성장하고 있다.


아이의 성품과 성향에 따라 성장해 가는 면도 있지만, 은율이의 고유한 빛깔대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편안하고 안전한 삼각산재미난학교에서 돌봄과 배움이 어우러진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은율이가 지금 모습대로 커가길 바란다. (욕심일지는 좀 더 내 마음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지만) 그리고 따뜻하고 선한 영향력이 지닌 사람으로 커가길 소망한다.


'너가 살아갈 세상살이, 그 옆에서 지지하고 응원하며 함께 걸어갈게. 너의 힘을 단단하게 키워가며 너만의 삶을 만들어 가길. 아빠가.'


+ 4월 22일은 은율이의 생일이자 아빠의 기일이기도 하다.

진심으로 기뻐하며 축하하고 그윽하게 그리워한다.


++ (초중등대안) 삼각산재미난학교 구성원들은 별칭을 사용한다. 아내는 꽃송이, 나는 백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