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최근에 한 소비 중 가장 만족한 것을 이야기해 주세요.
꽃송이는 게임을 하지 않는다. 오락실 '펌프' 위에서 좀 뛰었다 하는데, 내가 직접 본 적 없으니 믿거나 말거나. 아무튼.
백호는 소싯적에 학교가 파하고 오락실 가는 것보다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것을 더 좋아했다. 스타크래프트 열풍이었던 20대 때에도 PC방 대신 농구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지금도 스마트폰에는 게임 앱 하나 없다.
부모가 게임을 소 닭 보듯 하니, 소년도 게임을 할 수 있는 환경과 저만치 떨어져 있다. 가끔 친구 집에 놀러 가서 게임을 접하고 오면 부러운 듯 게임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소년이 말한다.
“나도 스마트폰 있으면 좋겠다. 엄마, 스마트폰 언제 사줄 거야?”
“(말이 안 되지만) 스무 살 되면 사줄게. 동희형(사촌)도 중3인데 없잖아.”
“음…. 빨리 스무 살 되면 좋겠다.”
꽃송이의 대답을 듣고 나면 부아가 치밀 만도 한데, 소년은 생떼를 부리거나 투덜대지 않는다.
며칠 전 수영하러 난나에 가서 소년이 툭 던진다.
“아빠, 나도 난나 숲 가고 싶어. 영희도 가.”(난나 숲은 청소년 전용 공간이다)
“그래? 은율이도 게임하고 싶어?”
“응.”
‘부모가 게임을 하지 않으니 아이도 게임을 할 기회가 없구나. 아이는 부모와 별개의 존재인데, 게임을 하고 싶은 건 호기심이기도 하고 자연스러운 거겠지?’ 평소에 가지고 있던 내 생각을 소년이 꺼내어 주었다.
“은율아, 아빠랑 오락실 가자. 서울에 옛날 오락실이 있다고 인터넷에서 본 거 같아. 아빠가 찾아볼게. 학교 안 가는 토요일에 아빠랑 가자.”
“정말? 응. 좋아.”
소년이 수영하러 들어가자마자 스마트폰 검색창에 '서울 옛날 오락실'을 쓰고 돋보기 모양을 눌렀다.
「옛날 오락실. 그 시절 100원으로 오락을 할 수 있는 곳. 청량 오락실」
'우와. 100원이라니. 여기다. 여기 가야겠다.'
수영 끝나고 나온 소년에게 자랑스럽게 "은율아, 아빠가 오락실 찾았어. 지하철 타고 가면 되고 한 게임에 100원이래. 이번 주 토요일에 가자."
짜잔. 오락실 가는 토요일.
소년도 자기 용돈을 챙기고 나도 현금을 준비해서 지하철을 타고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500m 정도 걷는 동안 소년의 발걸음은 설렘과 기대 그 자체였다. '콤퓨타 게임장, 지능개발'이라는 어색한 외래어 표기법과 복고 감성의 단어 조합이 우리를 반겼고 빼곡한 백열전구 불빛으로 치장한 '청량 오락실'로 걸어 들어갔다.
포장마차 빨간색, 파란색 의자와 짝을 맞춘 추억의 거대한 오락기들.
'1943, 라이덴, 철권, 스트리트 파이터, 테트리스, 스노우맨, 보글보글…. 그리고 펌프'
1000원짜리 5장만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동전을 교환했다. 그저 목표였을 뿐이다.
소년이 하고 싶은 건 비행기 게임.
'1943' 2인용으로 시작. 게임을 안 해 봤으니 조이스틱 조작이나 버튼을 끊기지 않게 눌러야 하는 기술이 있을 리 만무했다. 1라운드가 끝나기 전에 비행기 3대는 공중에서 상대의 공격에 무참히 폭발했다. 소년의 당황한 표정에 웃음이 났지만 애써 안으로 삼키며 처음 해보는 그것 치고는 잘했다고 칭찬했다. 많이 해보면 실력은 는다며 우쭈쭈도 빼먹지 않았다.
'라이덴'도 '1943'과 별반 다르지 않아 상대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100원짜리는 계속 오락기 뱃속에 들어갔다. 그래도 '보글보글'은 8라운드까지 도달했으니, 효능감도 있었고 효율도 높았다고 위안을 삼고 싶었다.(보글보글에 집중해야 했나?ㅋ)
주머니 속 동전 소리가 나지 않을 때 비로소 게임은 끝이 났다.
"은율아, 재밌었어? 아빠는 은율이랑 오니깐 좋더라고. 또 은율이랑 같이 게임을 하니깐 더 재밌었어. 고마워."
"응. 재밌었어. 또 오고 싶어."
"그래. 또 오자. 1년에 몇 번 올까?"
"2번."
"2번? 두 번은 너무 적지 않아? 4번은 와야 하지 않을까?"
"4번? 좋아 좋아."
내심 '한 달에 한 번은 와야 눈곱만큼이나 마 실력이 늘지 않을까.' 했는데 소년은 일 년에 두 번만 와도 게임 실력이 늘 거로 생각했나 보다. 풋. 무슨 자신감인지.
어릴 적에는 500원어치 게임만 해도 많이 쓴 거 같았는데 소년과 5,000원어치를 넘길 만큼 게임을 했지만, 소비를 과하게 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음에 아빠랑 5,000원어치 오락을 하고 편의점에서 튀김우동까지 먹으면 소년의 효능감은 더 커져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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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속 아들을 '소년'이라는 애칭으로 불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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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현재는) 200원으로 가격인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