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안감 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이기까지
부모님과 함께 지내던 대학생 시절 내 가방은 마치 유목민의 그것과 같았다. 한 번 외출하면 최대한 오랜 시간 밖에서 혼자 조용히 머물며 카페에 앉아 할 일을 하나하나 해치워야 하기 때문이다.
LG 그램 같은 값비싼 분은 모실 수 없었기에 꽤나 묵직한 18인치 노트북을 우선 넣어 기둥으로 세운다. 판판한 노트북 앞면이 옆구리에 닿도록 배치 후 그 앞에 또 이것저것 집어넣는다. 배터리 용량이 한정되어 있으면 쫓기는 듯한 기분에 불안하여 작업에 집중할 수 없으므로 충전기 추가, 터치 패드는 답답하니 마우스도 주섬주섬 담는다. 굴러다니는 건 질색이니 또 어디선가 거대한 패브릭 파우치를 구해 충전기와 마우스는 전자기기용 파우치에 쏙. 아, 여기에는 아이폰 충전줄도 필수이다. 수업 시간에 필요한 출력물과 필기구도 담고, 거기에 어쩌다 약속이 있으면 메이크업 파우치까지…. 가방 무게는 이미 적정량을 초과했다.
척추 측만증 증세가 악화되고, 나이를 먹어 근력이 점차 부족해지며(?) 어쩔 수 없이 가방에 담는 물건을 하나, 둘씩 줄이기 시작했다. 허리가 아파 밖에서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질색이니 보습용 립밤, 핸드크림, 에어팟을 작은 파우치에 담고, 마지막으로 지갑과 안경을 넣으면 끝이다. 얼마 되지 않는 짐에 가방 안감이 바닥까지 들여다보이다니 신기하기까지 했다.
무거운 가방을 끙끙거리며 지고 다니지 않게 되니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길에서 쪼르르 걸어 다니는 고양이들. 가방 빈자리에 지퍼락에 담은 사료와 빈 햇반 통을 담았다. 빈 공간에 끼워 세울 수 있는 츄르도 몇 개 챙겼다. 가방 빈자리에는 그렇게 고양이가 자리 잡았다. 집 밖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고양이 친구를 만나면 봉지를 뜯어 밥을 주고 햇반 통에 물을 부어주었다.
머릿속 생각이야 늘 이리저리 갈팡질팡하며 이것저것 굴린다지만, 그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머릿속 생각 어딘가에도 내가 미치지 못하는 무의식의 세계와 맞닿는 경계선은 있을 테고, 그렇다면 그 선을 따라 그으면 공간이 수렴하는 형태의, 가방 주머니 같은 모습이 되지 않을까 문득 생각해 본다.
이전에는 꽉꽉 찬 가방 속에 나를 위한 물건만 한가득 싣고 다녔는데, 이제는 나를 덜어내고 나 이외의 존재를 위한 물건도 담아본다. 오로지 자신만을 관찰하며 필요한 것을 챙겨주다 이제는 한 걸음, 한 걸음씩 멀리 떨어져 나 이외의 존재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그런 여유가 생긴 것일까. 시간이 흘러 걸음에 궤적이 생긴다면 그때는 정확히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