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디즘이라는 낯선 경험

by 레인메이커



그 자리에 가기로 한 것이 용기였는지, 아니면 그냥 질문을 더 이상 머릿속에만 두기 싫었던 것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장소는 도심에서 꽤 벗어난 곳이었다. 차를 세우고 걸어 들어가는 동안, 나는 이상하게도 날씨 생각을 했다.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고, 공기는 가을 끝자락 특유의 서늘함을 품고 있었다. 그 서늘함에 집중하는 것이 다른 생각들을 잠시 밀어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

사람이 긴장하면 엉뚱한 것에 눈길이 가는 법이다.


문 앞에서 잠깐 멈췄다.




안으로 들어섰을 때 먼저 느낀 것은 시선이 아니었다.


공기였다. 실내인데도 바깥의 서늘함이 얇게 배어 있었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낮고 고르게 깔려 있었다.

예상했던 것과 달리 그 자리는 소란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했다. 도서관처럼 조용한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 자리에 있는 사람들 특유의 조용함.

서로를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그런 결의 조용함이었다.


옷을 입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받아들이는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긴 간격이 있었다. 나는 그 간격 안에서 잠시 멈춰 있었다.




옷을 벗는 일은 생각보다 천천히 이루어졌다.


서두르는 사람도 없었고, 누가 지켜보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 행위가 얼마나 많은 습관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나는 그때 처음 몸으로 알았다. 옷을 벗는다는 것은 단순히 천을 내려놓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어떤 방식을 잠시 내려놓는 일이었고, 그 방식이 얼마나 깊이 몸에 배어 있었는지를 벗고 나서야 비로소 느꼈다.


처음 옷을 벗었을 때, 자유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서늘함이었다. 살갗이 공기에 닿는 감각이 평소보다 훨씬 선명했다. 그다음은 어색함이었고 그건 수치심과는 달랐다. 오랫동안 해온 방식이 갑자기 멈추었을 때의 공백감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몸이 잠시 잊어버린 것 같은 그 감각.




그리고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서로의 몸을 보지 않았다. 정확히는, 보되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것은 의도적인 외면이 아니었다.

볼 이유가 딱히 없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무관심에 가까웠다. 모두가 같은 조건에 놓여 있을 때, 비교는 설 자리를 잃는다. 직업도, 어느 동네에 사는지도, 무엇을 걸치고 왔는지도 우리가 평소에 서로를 가늠하는 데 쓰는 단서들이 그 자리에서는 처음부터 없었다.


대화는 예상보다 수월했다. 아니, 수월했다는 표현도 정확하지 않다. 다만 평소와는 결이 달랐다. 무언가를 증명하거나 설명하려는 기색이 없었고, 그래서인지 말들이 조금 더 제 무게로 놓이는 느낌이 있었다.


그것이 옷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그런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성향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 경험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한동안 생각했다.


해방이라는 말은 맞지 않았다. 무언가로부터 풀려난 느낌이 아니었다. 치유 같은 말은 더욱 맞지 않았다. 그것은 그보다 훨씬 작고 조용한 경험이었다. 다만 한 가지는 남아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꽤 오랫동안 내 몸을 점검하지 않았다는 것. 어떻게 보이는지를 헤아리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그 자리에서만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도 가능한 것인지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그날 이후로, 사람들이 몸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전과는 조금 다른 질문을 품게 되었다.


우리는 왜, 타인의 시선이 없을 때조차

자기 몸을 그렇게 쉽게 놓아주지 못하는 걸까.